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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주 Jan 12. 2022

황혼 이혼

황혼은 대체 몇 살부터?

갑자기 이야기가 왜 그쪽으로 튀어갔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사장님이 황혼 이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다. 40대에 미리 준비해 두는 황혼이혼이라... 뜬금없 하지만 이런 신박한 화제를 던져주는 이는 늘 필요 것 같다.

나는 호기롭게 망설임없이

"찬성이요~ 나는 황혼이혼할 의사가 100프로." 하고 흡족하게 웃었다.

"그죠? 저도 60살쯤?그 언젠가는... 쯤에는..." 하며 끝을 적당히 예의있게 얼버무리는 대답에 정여사는 눈을 동그랗게 치켜 뜨며

"엥? 진짜? 다 늙어서 말라고? 그때되면 더 외롭고 쓸쓸할 텐데... 이짓껏 는데... 굳이 늙어서 혼자 머러. " 하며 미간을 찌뿌리며 이 황혼 이혼, 난 반댈쎄. 를 확실히 선언하셨다.


"애들 다 크고 나의 손길이 필요없어질 때쯤에는 나는 홀로 내 인생을 누리고 살고 싶다리." 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언급에 정여사는 더 단호하게,

"어마얏, 그때되면 결혼들하고 애들 낳는다고 내손이 더 필요할 게야. 평생이 끝이 나질 않을 부모와 자식의 굴레야. " 하는데 나는 왜 그 굴레가 이렇게 징글징글하게 느껴지나 모르겠다.

나는 딱 성인이 되어 스스로 자기 앞가림이 가능할 때까지만 내 삼남매들을 야무지게 돌보리라 다짐한다. - 여기서 내가 말하는 성인이라함은 나이라는 숫자적으로만이 아니라, 육체적, 정신적으로도 성숙된 사고가 가능한 인간을 의미한다. -

성인이 된 후에는 본인의 인생이 어떻게 돌아가게 하든 말든지 나는 쿨하게 뒷짐지고 섰을 자신있다.

한번쯤은 망쳐 먹어봐야 최선을 다하는 법도 알 것이고 소중한 것을 잃어버려 봐야 세상 귀한 것도 알게 되는 법이지 않겠나. 망쳐 버리고 다 잃어버렸을 때 그저 가만히 괜찮다고 등을 두드려 다시 일어설 용기를 주는 그런 부모가 되리라.

그때가 되면 나도 저녀석들에게 뒷짐을 지고 진정한 홀로서기가 가능하겠지.



딱히, 남편과의 헤어짐이 목적 아니다.

그저 나는 온전히 나 홀로 내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 그래본지가 언제였던가.

하루하루를 온전히 내 취향과 나의 행동의지대로 살아가보는 삶. 그것이 내가 황혼이혼할 의사 100프로의 이유이다.

물론, 지금도 어떤 강압과 압박속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 스스로 만들어 놓은 강압적인 굴레들이 있다.

예를 들면 오늘 저녁은 입맛도 없고 귀찮아서 한 끼를 굶고 그냥 넘겨 버리고 싶지만 나의 강압적인 굴레들은 또 나를 움직여 아이들의 끼니를 준비한다.

또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실컷 좋아라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온 종일 아무 생각없이 책을 읽고 글을 쓰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은데 나의 이 굴레 덩어리, 넷이서 번갈아가며 해으면서

"엄마, 머 해?", "엄마, 머 들어?", "엄마, 머 봐?", "밥은 머 먹지?"... 하는 질문들을 해댈 것이다.

황혼 이혼을 한다고 그 굴레를 깔끔히 벗어 놓을 지는  수 없겠지만, 오로지 나만 생각하는 일상들은 지금보다늘어가겠지.


이 굴레를 같이 짊어진 것은 남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남편도 한 번쯤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회사를 째고 낭창한 하루를 보내고 싶을 법도 한데, 내가 아는 내남편은 아무 이유없이 단 한번도 꾀를 부리지않고 성실 출근을 했다. 그것도 사실은 게을러 빠진 남편이 진짜로 원했던 삶의 모습이 아닌, 본인의 굴레였을 것이다. 남편은 코로나와 전혀 관련이 없는 업종임에도 코로나때문에 6개월정도 백수가 되었던 적이 있는데, 남편은 그 기간이 좋으면서도 몹시 괴로워하는 양면을 보여주었다. 살면서 언제 이런 적이 있었냐고 걱정말고 그냥 즐겨보라고 해도 우산장수, 부채장수의 아들을 둔 엄마처럼 우울한 쪽만 선택하는 미련한 남편 굴레가 참으로 쨘하고 안타까웠랜다.



생각해보면 어릴 적에 나는 독신주의자였다. 결혼을 해서 행복해질 것 같지는 않았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행복해 보이는 결혼생활보다는 죽도록 싸우거나 아니면 마지못해 그저 살아내고 있는 불쌍한 어른들뿐인 것 같았다. 행복한 결혼 생활은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일인 것만 같았다.

운명처럼 만나 운명같은 사랑으로 수억의 인연 중 단 한 사람으로 선택되어진 운명같은 결혼보다는 그저 때가 되면 남들이 다 하니까 적당히 나름의 조건에 만족하며 짝이 되어가는 과정이 현실의 결혼이니까.

그런 결혼을 선택했다고 행복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그 속에서 본인할 수있는 최선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이 현실의 결혼이다.


그런 레알 현실 속의 나도 어쩌다보니 - 정확히 말하면, 나 그 '어쩌다보'의 진짜 의미는, 내 남편의 인생설계에 내 인생이 살짝 말려들어간 억울한 느낌을 지우지 못하고 한참 동안을  '어쩌다보니'에 원망 한 바가지 들이부어놓고 언급하는, '어쩌다보니'였다. -  독신주의자였던 나도 어쩌다보니 결혼을 했다. 것도 몰려 다니던 친구들중에 가장 일찍 20대에 결혼을 해서 아이를 셋이나 낳아 살고 있다. 다자녀의 출산, 이것도 진짜 어쩌다보니 이렇게 되었다.

시크하고 쿨했던 내 인생은 어쩌다보니 이 깊은 애증의 굴레에 말려 들게 되었다.


언젠가 한 번, 남편에게 시간을 돌린다면 나와 다시 결혼하겠냐고 물었을 때, 남편은 분명 한참을 망설였다.  다음 대답은 들어보나마나한 것이라 대답은 확실히 기억이 나질 않고 그 망설임만똑똑히 기억을 하고 있다.

그 망설임에도 나는 당당히,

"나는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당신과 결혼을 할거 같다." 라고 말했고 그때의 나는 진심이었다.

다시 시간을 돌려도 또 내 남편인 이유 그닥 큰 것은 아니다. 그 동안의 시간들 속에서 내 남편에게 익숙해진 일상이 편해서져서 다시 그 적응을 위한 혼란한 번뇌의 시간들을 되풀이하고 싶지가 않아서 또 내 남편인 것이지, 당신없이는 못 산다는 절절함은 절대 아니다.

 남편뿐 아니라 상의 구라도 함께 일생을 나누려는 과정을 거치다보면 번뇌와 혼돈의 시간들이 들이닥칠 것이다. 그 시간을 인내와 지혜로 잘 헤쳐 나온 나를 칭찬하면서도 다시 그 시간들로 절대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면 그 시간들을 함께 견뎌낸 이 사람과 다시 하는 게 가장 합리적일 것 같달까.


어쨋거나 그건 그거고 황혼이혼은 또 거다. 라고 한다면 이 무슨 무논리인가 싶겠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물론 누구나 늙으면 외롭고 서글프겠지.

그렇다고 함께 평생을 딱 붙어서 같이 한다고 덜 외로울까?18년을 딱 붙어서 살아보니 그것은 명확하게 아니라고 답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나이가 들수록 남편에게 마음 한편으로 바라는 일이 있다. 그것은 각자 혼자서도 즐겁고 행복한 일상을 살아가다가, 또 둘이 함께 만나도 다시 새롭게 즐겁고 기쁜 시간들을 보낼 우리가 되자는 것이다. 당신이 밖에서 무얼하시든간에 나는 늘 즐겁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 또한 그러할테니.


그러다 우리가 다시 함께 술잔을 기울이고 여행을 가고 영화를 보고 커피를 마시고 산책을 가고.

함께 하는 그 모든 시간들이 또 처음처럼 행복하고 설레는 일들이었으면 좋겠다.

18년이나 함께한 긴 시간들 속에서 진짜로 다시 설렐 수 있는 것은 각자 자기만의 시간들을 제대로 나만을 위한 시간으로 잘 보내고 진짜로 나를 아낄 줄 아는 충만함을 느낄 때에서야 가능하다.


밖에서는 집안을 신경 쓰고 집안에서는 밖을 신경 쓰는 그런 어리석음을 제발 좀 버리라고 몇 번을 남편에게 주의를 주었다. 밖에서는 그 곳에 최선을 다해 행복하시고 또 가정 안에서 우리에게 제대로 집중해서 가족들의 뜨거운 사랑으로 행복을 누리는 지혜를 가지시라고.

참으로 안타깝게도 저 냥반은 아직도 이 단순한 얘기가 차암 어려운 일인 듯 보이지만 늘 응원한다. 언젠가는 서로 온전히 행복해질 그날을 위해. ㅋㅋ



막내가 20살이 되면 내가 55살이 될 텐데, 그 쯤에는 황혼 이혼이 가능할까? 황혼이라기엔 너무 이른 시간인가. 혼은 대체 몇 살부터 인걸까?

나의 시간들이 완성이 되고 정리할 시간들로 느껴질 때가 황혼일까? 그 시간을 정확히 감지하는 능력과 기준은 내 스스로에게서 찾아야겠지. 

황혼의 시작을 영민하게 느끼고 지혜롭게 나를 찾아 나가리라 다짐해본다.


헌데, 저 보수적이고 꽉 막힌 고구마같은 양반에게 나의 독립선언같은 황혼 이혼의 목적을 어떻게 제대로 이해시키고 과연 설득이 가능할까?

분명히 그 독립을 함께 하자고 귀찮게 졸졸졸 따라다니며 밥먹자, 술먹자, 고기먹자, 회먹자... 하실 반이다.

"나는 밥은 어찌되거나 상관없다고!

그냥 나 혼자만의 시간,

나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대나무숲에서라도 외쳐보아야겠다. 언젠가는 그의 귓가에 울려퍼지도록.


팔딱팔딱 뛰어 노는 꼼장어를 바라보며 황혼을 설계 했다. 오늘도 보람차다.

이날의 술자리에서는 최근 나에게 풍부한 이야기거리를 제공하는 두 술친구에게 나의 글쓰기  작업의 주요 등장인물임을 알리고 허락을 받았다.

앞으로 술꾼도시아주미의 일상은 계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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