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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주 Dec 25. 2021

전성기

오늘도 우리들은 전성기에 다다랐다.

자리가 없을까봐 다급하게

전성기로 뛰어들어 온다.

이 곳에만 오면 우리는 언제나처럼

전성기로 돌아 간다.

언제라도 우리들을 전성기로 보내주는 이 곳.

우리는 또 전성기에 와 있다.

이 집, 진짜 이름 하나는 잘 지었다.


다급하게 자리를 잡자말자 생맥 3잔부터 시키고 천천히 메뉴판을 들여다보지만, 오늘도 나는 감튀김이다.

"이때것 살면서 언제가 가장 전성기였던 거 같애요?"

박사장님이 뜬금없이 물었다.

"음... 나는 전성기가 한 3번은 있었던 거 같은데..."

평소에는 씰데없는 소리를 잘 못하지만 알콜의 힘을 빌리면 투머치토커가 되는 나는 또 푼수처럼 떠들어댔다. 좀 전의 자리에서 연거푸마신 소주가 또 나를 수다쟁이로 만들어 놓았다.

"처음은 18살 때, 우리 학교 근처에 남고가 서넛 있었는데 특히 Y고 녀석들 대 여섯 명이 나에게 돌아가면서 사귀자고 좋아한다며 고백하고 따라다니던 시절이 있었지요. 푸하하~"



무슨 일이었던지 그때는 그녀석들이 돌아가면서 한 녀석이 고백하면 내가 거절하고 그러면 또 그의 다른 친구 녀석이 나타나서 그럼 본인이랑 사귀자하고 그래서 또 싫다고하면 또 다른 녀석이 나타나서 그럼 나는 어때? 하는 거다.

학교앞이나 도서관, 독서실 근처서 배회하고 있다가 밥을 먹자는 둥, 커피숍을 가자는 둥 수작을 걸어대어도 무시하다가 이 연애란 것이 도대체 무얼까 궁금해져서 그 중에는 젤 나아뵈는 어느 한 녀석과 사귀기 시작하며 나는 처음으로 남자친구라는 것이 생겼었다.


생각보다 연애라는 것은 어색했고 그리 달콤한 일만은 아닌 서툰 18세였다. 그래도 Y군은 내게 다정했고 나를 존중해 주었고 이런저런 이벤트도 해 주는 남친이었다. 집 앞에서 한,  번 마주 친 엄마도 성당에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Y군을 좋아하며 우리들의 연애를 호기심 넘치게 지켜 보았다.

헌데 이상하게도 Y군 주변의 친구들은 나에게 그 녀석의 뒷담을 깠다. Y군의 절친이자, 나랑 중학교 때 같은 학원을 다니느라 아는 척 정도는 하고 지내던 H군 같이 놀다가 한 동네사는 우리 둘이  Y군이 잡아 준 택시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야. 너는 왜 쟤랑 사귀냐? J가 너를 그렇게 따라다녔다든데, J가 쟤가 참 좋은 애인데... Y 절마 저거는 좀 성격이 별론데... " 했다.

"너네 둘이 친한거 아니냐?" 나는 의아스러워서 물었더니

"내가 니를 먼저 알았잖아. 니는 착하고 공부도 잘하고 인기도 많은데 왜 Y같은 아를 만나는지 안타까워서 칸다. "

J군이 가장 오래 따라다니기는 했다. 근데 나는 그 녀석의 쎈 척이 너무 싫었고 자기네 학교에서 싸움을 좀 한다는 쌈짱이라고 소문이 난 것도 싫었다. 18세의 사춘기시절의 나는 첫 연애가 평화롭고 아름답게 마무리가 되기를 바란 것 같다. 거칠은 J군보다는 모범생이미지를 살짝 지닌 Y군과 만나기로 한 걸 보면.


나의 평화로운 바람과는 달리 우리 학교 일진 무리들이 나를 찾아와서

"야, 니가 Y랑 사귄대매?" 하고 가볍게 웃고 지나가는 순간, 나는 평화로운 연애는 끝이 났음을 짐작하며 Y군과의 이별을 준비했다.

마침 고3으로 올라가기 직전이라 헤어지기에도 딱 좋은 때이기도 했다. 누구나 그러하든 순조롭지만은 않고 어설픈 이별의 과정을 거치느라 Y군은 나를 원망하였을지 모르겠으나, 나는 나의 첫 연애 그마무리 짓기로 했다.


그런데  1년 뒤에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Y군과 나는 같은 학교, 같은 학부에 입학을 했고 전혀 자연스럽지않게 서로를 일부러 외면하면서 나의 어설픈 첫 연애 더 어설프게 끝이 나버렸다.

Y군과 둘이 사이좋을 때에 우리지역 최고대학 KNU 건축학과에 같이 가자고 약속었는데, 둘 다 고3때 무슨 일이 있었던건지, KNU 최하위 성적의 학부에서 만나다니.

참 우낀 인연이었지만 20살의 내 마음 꽤나 팍팍했었는지 그녀석과 자연스레 과거사를 풀어 으며 인사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그래도 18세 때의 나는 이렇게 많은 이들의 관심과 애정속에 있어 본 적이 또 있었나싶다. 그러하니 나는 이때를 첫 전성기라 여겼다. 유없는 심과 인기를 얻었던 이 때가 전성기에 가장 어울린다 싶었다.



"두번째는 20대 중반쯤에 술주정뱅이 친구들과 세상 걱정근심 따위는 없는 사람처럼 신나게 돌아다니며 살던 때. 그때가 두번째 전성기였던 거 같. 아, 그때 참 재미났는데..."

정여사 추천해준 <술꾼도시여자들>이라는 드라마를 잠깐 본 적이 있는데, 그녀들 속에서 20대의 모습이 보여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드라마 속의 인물들의 현실판을 나는 알고 있다.

무료시청이 가능한 1회가 끝나고 월정액을 끊으라는 2회차를 앞두고 한참을 심각하게 고민을 했지만 드라마가 현실판의 우리들보다 더 할리가 있겠냐 싶어서 정주행은 하지 않기로 했다.


"세번째 전성기는 30대 초반에 정여사랑 홍양이랑 마음이 잘 맞는 아주미친구들이 생겨서  맛난 거 먹고 술도 먹고 이라고 놀러도 다니며 육아의 고통을 함께 나누던 그때가 나는 마지막 전성기

였던 거 같애." 라고 하며

아무 말없이 듣고 만 있던 정여사에게 물어본다.

"안그래? 우리 그때 즐거웠지?"

의외로 정여사의 대답은 시크했다.

"나는 딱히 전성기같은 거는 없이 살아 온 것 같애. 너무 일찍 결혼을 했나 봐. 억울해." 했다.

내가 오랫동안 보아 온 정여사는 매 순간순간이 전성기같은 마음으로 열정적으로 사는 사람 중에 한 명이다 싶었는데 의외였다. 외의 대답을 하는 그녀에게 나는 또 실없이 웃었지만 진심으로 말했다.

"너 전성기는 바로 지금이야." 



그러면 이제 우리 박사장님의 전성기 얘기를 들어볼까. 취미부자인지라 좀 전까지도 직접 드론으로 찍은 박사장님의 영상들을 보며 눈으로 절대 볼 수없는 공중영상에 매료어 전혀 관심도 없었던 드론 이런 거, 나도 한번 해보고 싶긴하네 하던 참이었다.

또 박사장님한테 와인은 언급금지어로 정했다. 한번 말을 꺼내면 프랑스 보르도 지방서부터 포도 재배환경까지 한바퀴가 돌아야 끝을 내기 때문에 와인 얘기는 이제 금지시켰다. 

하는 일도 내가 들은 데까지만 해도 현재 투잡을 하는 중인데 자꼬 세번째 일을 계획하시려고 빈 가게와 상권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이렇게 잡다한 활동을 참으로 다양하게 하면서 바쁘게 사시는 박사장님의 전성기가 궁금했다.

"저는 31살 때가 딱 전성기였지요. 그때 하는 일마다 잘 되서 돈도 많이 벌고 여러가지 사업을 많이 도전하면서 열심히 살았어요. 그 덕분에 지금의 43살의 제가 있는 것 같기도 해요. 하하하"

나와는 완전 경로가 달랐던 박사장님의 전성기 이야기에 멈칫했다.


일에서의 성공을 전성기로 언급하는 박사장님이 살짝 부러웠다. 분류 기준부터가 다른 나였다.

나는 성공이라할 만한 커리어는 없이 그저 고만고만하게 살면서 삶의 전성기도 그저 내가 가장 즐겁고 행복했던 시절만을 떠올렸는데

가장 성공한 때가 전성기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살았다.

그래, 그러고보니 나는 성공을 해 본 적이 없다.

성공을 해 본 경험이 없으니 당연히 나의 전성기는 소소한 행복에 그쳤으리라.

시원한 맥주를 한잔 들이키며 나는 살짝 억울했다.

나는 왜 성공하지 못했나 하는 원초적인 질문을 이제서야 해 본다.


며칠 뒤 45살이 되는 내 나이가 갑자기 훅하고 밀려오며 내 마음을 울적하게 요동치고 간다.

누군가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 현재의 모습이 5년 후의 나를 만드는 거라고 했다.

5년 전에도 나는 고만고만한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왔고 지금 현재에도 나는 18세 시절의 인기녀의 일상을 추억하는데 머물러 있고

5년 후에도 나는  이렇게 살고 있려는가.


마음이 조급해져 온다. 무엇을 성공해야하고 무엇에 도전해 보아야 할까.

내인생의 전성기는 시작인가 끝인가.

전성기에 앉아서 감튀에 생맥을 홀짝거리며

상념에 휩싸인다.

이눔의 술부터 좀 끊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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