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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주 Dec 19. 2021

술친구 2번, 정여사

일상

[정여사야~ 큰일났다. 니 그거 아나?]

간만에... 아니다, 3주 전에 오빠네 가게에서 만났었구나. 정확히 3주 만에 연락이다.

[왜? 무슨 일이랴~] 메세지만 봐도 낭창하고 언제나 여유로운 그녀의 말투가 귓가에 울리는 듯 하다.

[ 내일부터 다시 9시까지 영업이래. 오늘까지만 12시 영업이래. 이러다가 다 못 나가~~ ] 오랜만에 연락이라도 나는 늘 아주미만의 갬성의 유머코드를 살짝 첨가하여 유쾌한 척하며 연락하기를 좋아라한다. 이것이 그 아재개그보다 더 겁나다하는 아주미유머다.

[진짜? 마음이 조급허구먼] 아주미 유머따위는 사뿐히 즈려 밟아주시는 그녀의 낭창함.

[니 오늘 바쁘나?]

[아니, 하나도 안 바쁘다.]

[그람 오늘 만나야겠구먼~]

[그랴~]


간만에 동네를 벗어났다. 날은 엄청 추워서 손가락을 밖에 내어 놓는 순간 얼어붙을거 같은데

그녀는 해산물포차의 1인 사장님께서 바쁜 와중에 건넨 귤 세 개를 손에 꼭 쥔다. 먹지도 않을 꺼면서 기어이 한 개를 까서는 사진을 찍어보라 한다. 엉뚱하기는 나와 비슷한 내 술친구 2번이다.


언젠가, 2020년 초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올 해의  목표는 술 친구를 10번까지 만들어 다양하게 인간 관계의 폭을 넓힘과 동시에, 집구석 걱정만 하는 아주미의 인생이 아닌 다른 삶을 살아 보겠노라 다짐했다.

그때 그녀는 나의 이 야심찬 포부를 어이없어 하며

"불가하다. 우리 나이에 새로운 술친구 다섯도 만들기 힘들다. 우리들의 생활 반경이 이렇게 좁다리~ "

그 당시 우리 지역에서 유명한 프랜차이저 고기집을 시작한 지 2년이 다 되어 가느라 새로운 인맥으로 발이 넓어 졌다 믿은 정여사의 의외의 관적이고 뜨뜨미지근한 반응에...

실망할 내가 아니다.

"기다려 바바. 내가 인싸로 거듭날 참이니까."

그러고는 코로나가 터졌다. 있는 친구도 못 만날 판이었다. 다시 계획을 수정하여 술친구 5번까지만 어찌어찌 해볼까 싶으다.


한참을 못 볼 것 같이 다급하게 약속을 잡고 뛰쳐 나와 보았지만 우리들의 주 대화는 최근의 언제나처럼 건강 걱정, 늙어가는 걱정, 보험은 잘 들어났냐? 건강 검진은 언제했냐? 등등 일상의 걱정들에서 시작해서는 어느새, 1인 가게 사장님의 동태 살피기, 혼자서도 손 빠르게 다양한 손님의 다양한 요구를 바로바로 해결하는 사장님의 스킬에 감탄하기... 우리들이 최근에 새로 늘어난 술 버릇들 그 영업장 관찰다.

정여사도 업종 급하게 바뀌기는 했지만 자영업자의 삶을 살고 있고 나 규모미세하리

만치 작기는 하지만 나 혼자 이끌어가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인지라, 요즘따라 새로운 가게에 가면 우선 알바생몇 명인지, 주방직원 몇 명이고, 테이블 수, 순수익이 얼마나 될 것인지, 이 가게의 생존 전략에 대한 순수하지 않은 궁금증으로 가득 차서 사업 구상이라는 허망한 계획 주요 안주 거리가 된다. 그러다가는 이마저도 우리가 다 늙어서 그다며 또 세월을 향한 신세타령을 하다가 귀가하곤 는 40대 진취적인 아주미들의 일상의 모습들이었다.

 

거창한 목적의식이나, 삶의 보탬이 될 리는 없는 별 의미없는 술자리이지만 그녀와의 만남은 틈이 없이 빠듯한 일상을 사는 내게 유일한 일상 탈출의 기회다. 말도 안되고 실없는 헛소리로 유쾌하게 웃고 떠들다보면 다시 빡빡한 일상을 살아낼 기운을 얻는 스트레스해소제랄까.

그런 스트레스해소제가 딱 5명만 더 있으면 좋겠다. 아니구나, 2번 뒤로 3, 4, 5번까지 3명만 더 있으면 내인생은 참으로 풍요로워질 것 같.



술친구의 첫번째 조건은 아무데나 내가 심심할 때, 그냥 오늘은 딱~ 가볍게 맥주 한잔하고 싶을 때 아무렇게나 편하게 불러 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랬다가 상대방에게 먼저 예정된 다른 일때문에 거절을 당했어도 아무렇지도 않아야 한다. 언짢거나 괜히 연락을 했나, 하고 후회하며 다시 연락을 하기가 꺼려지는 불편함이라면 오래 지속되지 못 하는 술친구가 되어버린다.

참 아무것도 아닌 듯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너무 어려운 조건이다. 특히나 나처럼 생각이 많고 다른 이에게 무언가 제안을 하기위해서 백 을 고민하는 사람에게는 너무 힘든 일이다. 나는 안 그런 듯 보이지만 사실은 낯가림이 몹시 심한 사람이다.

정여사도 한 동네서 같이 18년째 살면서 서로의 집에 숟가락이 몇 자루나 있는지 알 정도가 되고 나서야 겨우 술친구 2번이 되었다.


두 번째부터는 그저 희망사항같은 건데, 편견이 없는 선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성격이 참으로 판이하게 나와는 완전 다른 정여사와 큰 갈등없이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전혀 지겹지가 않은 것도 그녀는 편견이 없는 사람인 덕분이다.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일상을 따뜻한 눈으로 긍정적으로 보려는 점이 좋은 사람이다. 가끔 과한 긍정과 자신감으로 엉뚱하기도 한 것은 나 비슷도 하기도 하다. 어제도 그녀는 나에게

"너는 무슨 자신감으로 이렇게 걱정이 없을꼬." 하던 말이 꼭 내가 하고 싶은 말이라 웃음이 났다.


가끔씩 어떤 이들은 편견으로 가득 차 이런저런 다양한 일상의 모습을 인과 다를 때마다 다름으로 받아들이지않고 틀렸다고 잘못되었다고 부정적으로 받아이는 사람들이 있다. 더 나아가 남의 뒷담까기를 일삼는 사람들 있는데 이런 사람은 술친구로 피하는 것이 좋다.

만나도 전혀 유쾌하지도 않고 늘 뒤가 찝찝해서 오히려 스트레스를 더 받아 온달까.

의 마음이 편하려고 다른 사람을 틀렸다고 하는 것은 나와 다른 사람을 제대로 이해할 흥미로운 기회를 잃는 것이다. 세상에 다양한 다른 사람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보면 참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데 안타깝다. 이런 열린 마음을 순진한 생각으로 치부하고 자기 생각만 강요하는 사람은 피곤하다.


마지막으로 남자든 여자이든 애의 목적을 지서 여자인 척, 남자인 척 하는 사람도 피하고 싶다.

한 5년 전쯤인가 어찌어찌하다가 동네에서 초등학교 4학년때 내 앞자리에 앉아 있던 친구를 만나게 되었고   그녀가 술친구 2번의 자리를 위협했다. 같은 동네에 산 지 10년이 넘었는데 그제서야 알 게 된 것신기했다.

그 친구는 여러 동창들과 연락을 하며 지내왔고 그 바람에 나도 어릴적 친구들 여럿 만났다.


 어른이 되서, 정확히 내 큰아이가 4학년쯤인가 된 어느 날, 

"엄마는 학교 다닐 때 정말 싫은 아이가 있었어?" 하고 물었을 때, 바로 떠오르던 이름 석자가 있었다.  정말 싫었었지만 꼭 한번 보고 싶었던, 친구들을 괴롭히기로 악명높은 우리 학교 최고의 악동 녀석이었다. 30여 년 전 앞자리의 그녀 덕분에 배불뚝이 노총각아저씨가 된 그녀석을 다시 만났을 때, 어린 시절 그녀석을 겁내하며 저 멀리서 그림자만 보여도 피하고 도망가던 내 비겁했던 트라우마를 웃음으로 날려 버릴 용기를 얻었다. 이유없이 나를 죽일듯이 미워하는 한 철없는 초딩이때문에 낮아진 내 자존감을 40대가, 정확히 39세가 되어서, 아~ 그녀석은 원래가 그런 녀석이었고 내가 어떤 극도의 미움을 받을 원인을 제공할 만큼 문제가 있는 아이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고 된 후, 마침내 안심하게 되었다.


그것 그렇지만은 이 쯤에 나는 술친구 10번 거뜬히 채울 수 있을 것 같은 다채로운 만남의 나날들이 좋았다. 아주미 인생으로써 만나는, 콕 찍어 학부형으로써 만나는 사람말고 다양한 삶을 살고 있는 그냥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았다. 아이들얘기 남편과 시댁얘기만 늘어놓는 의미없는 모임이 지쳐갈 때쯤 나는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진짜 친구를 만났다 생각했다.


정여사가 동창모임은 불륜의 온상이라며 위험 하다고 경고했지만 너는 촌 출신이라 그런가

보다, 도시 사람인 나는 어릴적 친구는 친구일 뿐이지 그런 찌질이 녀석들과 말도 안 된다했다. 여짓껏 남사친이라 부를 만한 남자사람을 가져 본 적 없이 지내온 나는 진짜 남사친에 대한 동경이 좀 있었던 거 같기도 하다.


헌데 나와는 상관없이 어느 순간에 진짜로 연애의 감정에 빠진 듯한 동창을 발견하며 나는 단호하게 그 인연들과의 관계를 접었다.

남편이 이상하게 여기며 어느 날,

"너 요즘은 왜 느그 친구들 안 만나냐?" 할 때에 그간의 자초지종과 나의 찝찝한 감정들을  놓았더니 의외로 보수의 대명사인 남편이

"니랑 상관없는 일들인데 아예 안 볼 필요까지는 머가 있나?" 하고 의아해했다.

나를 떠보는 것인지 이 냥반이 나보다는 더 개방적인 사람이었던 것을 내가 여짓것 몰랐던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단호하게,

"나는 우리처럼 아이가 셋인 그 녀석의 와이프 먼 발치서 보았, 와이프한테 엄청 자상한 남편인 체 하던 녀석이... ○○에게 고백을 하는데 정신이 번쩍 들드라. 그간 친구간의 의리라 여긴 호의가 진짜 의리가 아어. 진짜 친구로 생각하고 만난 것이 아니라,  불순한 목적의 만남을 위해 내가 이용된 것도 같기도 하고 나도 모른 사이에 그 기회를 제공한 것 같은 느낌도 불쾌해. " 했다.  

진짜 뒤늦게 찾아 온 찐사랑을 응원하는 것이 친구의 의리라 한다면 그런 척 할 수도 있었겠지만, 내 눈에는 찐사랑보다는 40대의 뒤늦은 일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조언을 해주고 싶었지만 말이 통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내가 보수적인 조선시대 여자 취급받았다. 이렇게 열린 마음으로  개방적인 삶을 사는 내가 말이다.

남자와 여자가 진짜 친구가 될 수 있다 생각한 내가 순진한 것일까, 앞서 나가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잠시동안 남사친으로 착각한 친구덕분에 나는 내 남편의 진가를 새로 알게 되었다.  한 것이라 생각한 남편의 일상이- 당연히 나를 중심

으로 돌아가는 남편의 일상이 당연한 것이 아닌,

감사한 일이었음을 그 녀석들을 통해 깨달게 되는 긍정정인 경험 했다.

편은 나에게 아무 때에, 아무데나 가서, 아무거나 내 대로 먹자고 도 다 괜찮은 유일한, 내 술친구1번 이다. 그게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고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며 살았는데, 절대 당연한 일들이 아니었다. 거기다가 귀길도 전혀 걱정되지 않고. 고빨을 부려도 절대 호응 안 해줘서 다음 날, 이불킥 걱정은 절대 없다는 장점 있다.

다만 가끔 너무 자주만나면 살짝 질린다는 단점만 빼면, 한 달에 1회, 2회 정도가 딱 좋은 술친구1번이다.



2차에서는 술을 살짝 깨어보려고 레몬향이 향긋할 것 같은 하이볼을  시켰다.

요리의 고수같은  자태의 젊은 사장님이 말아 준 하이볼은 너무 독했다. 간만에 빈속에 급히 마신 둘이서 소주 3병이 과했던 탓도 있겠지만, 술을 깨기 위한 하이볼이 깨기는 커녕 더 취할 거 같았다. 다찌 자리에 앉아서 꼬치를 꿉는 사장님이 빤히 보이는데 너무 독하다고 툴툴거렸다. 젊은 사장님은 그 얘기가 들렸는지 토닉워터를 내민다. 나이가 들수록 참 꼰대가 되어 간다 싶을 때는 오히려 친절하지 못 하고 배려가 없이 부정적인 감정을 아무생각없이 툭툭 내뱉는 순간인 듯 싶다. 그저 속으로 생각하며 토닉워터를 하나 더 시켰으면 되었을 일이다. 이렇게 티를 내는 꼰대가 되어감이 슬펐다.


바깥 날씨는 더 추워 오는 듯한 겨울 밤에 무사히 택시를 잡아 귀가를 할 수 있기를 바라며 나섰다.

카카오택시는 계속 거절당하고 길거리에오돌오돌 떨며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즐겁게 무리지어 추위도 잊고 하하호호 걷는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정여사의 남편을 불렀다.

"괜실히 멀리 나와서는 민폐를 끼치는 구먼유~" 하고 너스레를 떨면 나보다 뻔치는 더 좋고 술을 사발로 드실 것 같은 상남자의 외모에도 술은 입도 대 으시는 석회장님께서 -그녀의 남편을 나는 석회장님이라 부른다. 회장님댁 근처서 우덜이 한잔한다는 소식이 들리며종종 찾아 와서 쿨하게 회장님의 금빛 카드를 던져 주시고는 술만 맥이지 말라며 얼른 자리를 피하시는 멋진 분이라서 사장님도 아깝다며 회장님이라 부른다.


최근에 투잡을 시작해서 비즈니스로 바쁜 그녀 살짝 시크해졌다며 석회장님께 일러주며 따슙게 집으로 돌아간다. 

조금 시크해 지긴 했지만 참이슬 1병만 있으면 다시 실없는 내 술친구 2번으로 돌아오는 그녀가 있어서 더 따슙다.

최근에는 그녀도 술친구 3, 4, 5번 만들기에 동참한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가 더 필요하다는 사실에 우리는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다.

 따슙은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적금도, 연금도 필수겠지만, 따슈은 친구들이 더 필요할 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이 날은 처음으로 편한 마음으로 그녀에게 엄마의 얘기를 하는 나를 발견해서 놀랬다.

불과 며칠 전만해도 장례식장에 가지 못해 미안하다고 과하게 호들갑을 떨던 동네 학부형님의 디 얇은 형식적인 배려의 멘트에... 순간, 너무 당황스러워 감정 정리가 하나도 되지 않았던 원망스러운 내 시선을 어디다 둘지 몰라 빨개진 귀로 후다닥 자리를 떠났었다. 그저 따뜻한 눈빛 하나면 나는 되었는데... 그 정도의 위로가 나는 딱 편한 사람인데, 슬펐다.


어쨌거나 맘이 편안해져가는 내가 신기해서 술이 더 달다. 이 간만에 편안해진 마음의 여유를 빌려 더 정신없이 오바하며 실없는 소리를 떠들어며 다시금 유쾌했던 나의 본 모습을 조심스레 찾아가 본다. 고맙다, 정여사야.


오늘은 또 귤에 집착한 그녀의 작품... 귤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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