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l-Dying 고맙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최근 한 지인의 부고를 받았다. 고인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치러졌다는 소식과 함께 전달된 메시지에는,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문장이 담겨 있었다.
"투병의 시간 동안 고인은 고마운 분들의 이름을 유언으로 한 분 한 분 꾹꾹 눌러 남기셨습니다.”
웰다잉(Well-Dying)을 알리는 안내자로서 수많은 삶의 여정을 동행하지만, 죽음의 문턱에서 나를 스쳐 간 인연들의 이름을 호명하며 떠나는 뒷모습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었다. 그것은 단순한 작별 인사가 아니라, 자신의 삶이 혼자가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치열하고도 따뜻한 고백이기 때문이다.
디저니 픽사의 영화 <코코>는 죽음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멕시코 전통 축제 '망자의 날'을 통해 포근하고 환상적으로 풀어낸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강렬한 메시지는,
"진정한 죽음은 잊히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남기는 가장 위대한 유산은 통장의 잔고가 아니라 누군가의 가슴속에 심어 놓은 따뜻한 기억의 조가들이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사랑한다."라고 말한 짧은 순간들이 모여. 내가 떠난 뒤에도 나를 살게 하는 '기억의 끈이 된다는 말이다.'
여기에서는 죽음을 두 번의 단계로 설명한다.
첫 번째, 육신이 멈추는 것.
두 번째, 살아있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는 것.
그분이 남긴 ‘이름들의 목록’은 결국 두 번째 죽음을 거부하고, 사랑하는 이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머물겠다는 약속과도 같다.
우리는 흔히 웰다잉을 '죽음을 잘 준비하는 것'으로만 국한 지어 생각한다. 하지만 진정한 웰다잉은 웰빙(Well-being)과 웰리빙 (Well-living)의 연장선에 있다. 잘 사는 것과 잘 머무는 것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아름다운 마무리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인생의 길목마다 이야기를 나누고, 식탁을 마주하며 울고 웃었던 그 '숨 막히는 순간들'이 모여 한 사람의 역사를 만든다. 웰다잉의 핵심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인생의 마지막 장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맺어온 '관계의 질'에 있다고 할 것이다.
많은 이들이 죽음을 앞두고 '더 많은 부를 쌓지 못한 것'이나 '더 높은 지위에 오르지 못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대신 '그때 미안하다고 말할걸', '고맙다고 말할걸', '사랑한다고 더 자주 표현할걸' 하는 관계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다.
투병 중에도 함께했던 고마웠던 분들을 기억하며 마지막 마음을 전했다는 대목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던진다. 디지털 시대, 가볍게 흩어지는 메시지가 가득한 세상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 누군가의 이름을 삐뚤빼뚤 정성을 다하여 남기고 간 그 손길은 숭고하기까지 하다. 그것은 그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의 가치를 인정하는 일이며, 내 삶을 풍요롭게 해 준 타인에 대한 최고의 예우이다.
"지금, 곁에 있는 소중한 이는 누구인가?"
웰리빙(Well-living)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오늘 저녁 마주 앉은 가족의 눈을 맞추는 것, 잊고 지낸 친구에게 안부를 묻는 것, 그리고 나 자신에게 "애썼다."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삶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우리가 써 내려갈 것은 화려한 이력이 아니라, 결국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삶을 비추는 거울이다. 누군가를 따뜻하게 바라보고, 그와 함께 웃으며 밥을 먹는 이 소박한 일상이 소소한 행복을 가꾸는 일이고 마지막 후회 없는 삶이 될 것이다.
영화 <버킷리스트>에서는 죽음을 앞둔 두 노인이 병실을 박차고 나가 자신들을 채워 나가는 과정들을 보여준다. 그들은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에도 '지금 이 순간의 기쁨'을 선택한다.
그리고 죽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을 나열했다.
그러나 , 결국 그들이 도착한 종착역도 '사람'과
'관계'에 대한 회복이었다. 영화 속 대사처럼 우리가 하늘에 갔을 때 받는 질문은 단 두 가지 일지 모른다.
"인생에서 기쁨을 찾았는가?"
"당신의 인생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했는가?"
지금 이 순간, 삶의 한가운데서 꼭 전해야 할 말이 있다. 이 세 마디는 짧지만 한 인간의 전 생애를 관통하는 울림이 있다.
"사랑한다. 미안하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