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마지막의 고백 "사랑해"(4)

Well-dying. 영화 <엔딩 노트>

by 김순옥

인생이라는 연극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언제일까? 많은 이들이 화려한 전성기를 꼽겠지만, 진정한 삶의 완성은 막을 내리는 ‘라스트 신’에 달려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죽음을 입 밖으로 꺼 내는 것조차 조심스럽고 꺼림칙한 일로 여기며 뒤로 미루곤 한다.

일본의 다큐멘터리 영화 <엔딩 노트>는 이러한 우리들에게 죽음이 결코 삶의 중단이 아닌, 마지막 조각을 끼워 맞추는 ‘완성의 단계’ 임을 담담하게 보여 준다.


여기, 자신의 장례식을 완벽한 성공 프로젝트로 기획한 한 남자가 있다.

40년 차 베트랑 세일즈맨 스나다 도모아키. 퇴직 후 제2의 인생을 꿈꾸던 그에게 건강검진 결과 청천벽력 같은 시한부 판정이 내려진다. 하지만 그는 절망 대신 인생의 마지막을 완수해야 할 프로젝트로 설정한다. 이것이 바로 막내딸 스나다 마미 감독이 카메라를 들게 된 동기다.


아버지의 마지막 남은 6개월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기록하기로 했다. 죽음이 비극이 아닌 삶의 소중한 마무리임을 가족의 애틋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그의 ‘엔딩 노트’에는 인생을 정돈하는 10가지 버킷 리스트가 담겨있다.

*손녀들과 힘껏 놀아 주기

*평생 찍지 않았던 정당에 투표해 보기

*아들 가게에 들러 매상 올려 주기

*가족과 함께 마지막 여행하기

*아내에게 고백하기

*장례식장 사전 답사 및 장례방식 직접 결정하기

그중에서 뭉클한 대목은 무신론자였던 그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아내를 위해 성당의 신부님을 찾아가는 장면이다. 자신의 장례 미사 절차를 협상하는 그의 모습은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 속에서도 삶의 품위와 특유의 유머를 잃지 않는 인간의 의지를 보여 준다. 또한, 그것은 남겨진 이들을 위한 최고의 배려이기도 하다.


미루어왔던 숙제,“사랑해”라는 한마디


영화의 정점은 병상에서 나누는 부부의 마지막 대화다. 평생 쑥스러워서 미루어 왔던 말, 스나다 씨는 아내의 손을 꼭 잡고 간절히 연습했던 한 마디를 내뱉는다.


“사랑해.”


그 짧은 고백에 아내는 참아왔던 눈물과 함께 응답한다.


“당신과 결혼해서 정말 행복했어요. 다음 생에도 우리 꼭 다시 만나요.”


이 장면은 단순한 이별이 아니라, 평생의 쌓였던 서운함과 오해를 녹여내는 화해이자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축복의 의식이다. 딸의 시선이 담긴 카메라는 고통스러운 투병기 대신, 한 인간이 품위를 지키며 떠나는 과정을 지지하고 기억하려는 사랑의 방식을 비춘다.



한. 일 죽음 문화의 온도 차 : 도리와 메이와쿠


주인공이 마지막 순간까지 타인에게 폐(메이와쿠)를 끼치지 않으려는 모습은 일본의

사려 깊은 성실함을 보여준다. 이는 자신이 떠난 자리가 타인에게 짐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절제된 배려이며 극진한 예우이다.

반면, 한국의 죽음 문화는 전통적으로 ‘공동체적 슬픔’과 ‘도리와 정'에 집중되어 있다. 혈육의 도리를 다 하려는 간절함이, 북적이는 장례식장을 통해 고인의 마지막길을 외롭지 않게 지키려는 한국적 사랑의 방식이다. 하지만 이 같은 관습이 때로는 당사자의 의사보다는, 타인의 시선이나 형식적인 절차에 치우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이제는 죽음의 주인공을 '남겨진 이'에서 '떠나는 이'에게로 되돌려주어야 할 때이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최근 한국 사회에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반가운 변화의 바람이다. 2025년 말 기준, 우리나라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는 65세 이상 어르신 4명 중 1명이 동참할 정도로, 이제 죽음은 ‘당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맞이하는 것’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의 확산은 단순히 의료적 결정을 넘어, 내 삶의 마지막 페이지를 직접 써 내려가는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진다.


웰다잉 강의 현장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서명한 후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 숙제를 끝낸 기분이야. 남은 시간은 더 많이 웃고, 베풀며 살아야겠어.”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 그러면 삶이 더욱 진실 해 질 것이다.”


톨스토이의 말처럼 준비된 이별은 슬픔을 넘어 고귀한 유산이 된다.

오늘, 당신의 인생 노트에는 어떤 사랑의 고백을 채우고 싶은가? 그 기록이 당신의 남은 생을 더욱 찬란하게 비춰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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