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 이별식

Well-Dying

by 김순옥

<생전 이별식>

우리는 보통 죽음 이후에야 누군가를 추모한다. 고인은 들을 수 없는 지인들의 애도와 눈물이 장례식장을 채우고, 정작 주인공이 없는 자리에서 마지막 인사가 오간다. 하지만 최근, 죽음을 앞두고 스스로 자신의 장례식을 여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른바 ‘생전 이별식’이다.


일본에서 시작된 '환송의 문화'

생전 이별식의 흐름을 짚어보려면 이웃 나라 일본의 사례를 빼놓을 수 없다. 1990년대 초부터 일본에서는 '세 이젠 소(生前葬, 생전장)'라는 이름으로 이 문화가 확산되었다. 1993년 배우 미즈노 하루오가 자신의 생전장을 치르며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는데, 당시 그는


"내 장례식에 온 사람들의 얼굴을 직접 보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라고 회고했다. 일본의 생전 이별식은 엄숙한 의식이라기보다, 살아온 날들을 축하하고 인연을 정리하는 '감사의 파티' 형식을 띤다.


배우이며 방송인인 신애라 씨가 보여준 '가장 아름다운 이별'

우리나라에서 이 생전 이별식이 대중적으로 큰 울림을 준 사례는 배우 신애라 씨 부친의 이야기다. 신애라 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정신이 맑으실 때 지인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특별한 자리를 마련했다.

이날의 분위기는 슬픔보다는 온기로 가득했다. 초대받은 분들에게는 "검은 옷을 입지 말아 달라"라고 귀띔했고, 덕분에 현장은 밝은 기운으로 가득했다. 식장 한편에서는 아버님의 지난 세월과 웃음이 담긴 영상이 흐르고 있었다. 지인들은 그것을 함께 보며 주인공의 삶이 담긴 회고록과 송별사를 건넸다. 아버님 역시 참석한 이들의 손을 일일이 잡으며 직접 감사의 답사를 전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눈물 대신 박수와 화기애애한 대화가 오가는 풍경을 보며 참석한 이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아, 마지막 작별 인사가 이렇게 따뜻할 수도 있구나."


장례 문화의 다양한 변화

현재 한국 사회에서도 웰다잉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며 다양한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80대 어르신이 자녀들 앞에서 수의를 입어보는가 하면, 엄숙한 영정사진 대신 가장 환하게 웃는 사진을

걸고 지인들과 고별인사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한다. 또한 치료가 어려운 젊은 환자가 친구들과 여행을 떠남으로써 슬픈 이별대신 따뜻한 추억으로 생을 매듭짓기도 한다. 이는 죽음을 절망이나 끝으로 보지 않고, 긴 여정의 완성으로 보는 시각의 변화를 보여준다.


생전 이별식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

미리 나누는 인사의 가장 큰 장점은 '화해와 용서, 그리고 '감사'를 직접 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후 장례식은 고인에게 말을 건넬 수 없지만, 생전 이별식은 아직 의식이 있을 때 소중한 사람들과 마주 앉아 미처 하지 못한 사과나 사랑을 고백 함으로써 관계의 응어리를 푸는 '치유의 시간'을 갖는다.

남겨진 이들에게는 슬픔을 극복할 힘을, 떠나는 이는 비로소 깊은 평안을 얻게 된다.

또한 허례허식에 치중하여 비용이 많이 드는 장례 절차 대신, 그 비용과 시간을 소중한 이들과의 의미 있는 추억을 만드는 데 사용하겠다는 의도가 담겨있다.


영화 <스틸 앨리스(Still Alice)>에서 주인공은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내 어제가 사라지는 것은 맞지만,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라고 말한다. 생전 이별식 또한 사라져 가는 어제를 슬퍼하기보다, 지금 살아있는 이 순간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행위다.

성인(聖人)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했다.


"죽은 이를 위해 울지 마라. 그는 단지 우리보다 조금 먼저 떠났을 뿐이다."


'조금 먼저 떠나는 것'이라면 , 생전 이별식은 그 길 위에서 나누는 가장 아름다운 배웅이다.

기억은 알츠하이머에 지워질지언정 , 서로의 눈빛으로 새긴 마지막 진심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떠난 뒤에 닿지 않을 말을 허공에 뿌리기보다 , 지금 살아 있는 이 순간 서로의 손을 잡으십시오.

고마웠다고, 덕분에 행복했다고 그 따뜻한 고백이야 말로 우리 생의 마지막을 가장 아름답게 밝혀 줄 등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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