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cm 병상에 갇힌 사랑, '아름다운 매듭'

Well-Dying

by 김순옥

90cm.

한 사람이 몸을 뉘이기에도 벅찬 비좁은 병상 위에서 누군가의 시간은 수년째 멈춰 있다. 아들은 2시간마다 아버지의 가쁜 숨을 고르게 하려 기구에 의지하고, 기계적인 심박 소리에 매달려 하루를 버틴다. 하지만 정작 아버지의 눈동자에는 이미 생명의 온기가 사라진 지 오래다.

사랑하기에 차마 놓지 못하는 그 손이, 역설적으로 아버지를 고통의 바다에 붙들어 두는 '가장 슬픈 굴레'가 되었다. 첨단 의료기술이 만들어낸 '인위적인 생명 연장'이 오히려 당사자에게는 끝없는 형벌이 되고, 지켜보는 가족에게는 마르지 않는 눈물이 되는 이 비극적인 풍경은 오늘날 우리 사회 어디에나 존재하는 간병의 슬픈 자화상이다.


◇ 천 년의 세월 곁에서 배운 삶과 갈무리의 순리

안개 자욱한 경주 대릉원의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걷다 보면, 생의 마침표가 결코 비극적인 단절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경주의 고분들은 도심 한복판에서 산 사람들과 어우러져 하나의 일상이 되었다. 신라인들이 무덤을 평지의 산처럼 거대하고 아름답게 조성한 이유는 이 세상을 떠나는 일을 다음 생으로 이어지는 거룩한 통로이자, 영원한 안식으로 향하는 축복의 문으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육신의 소멸은 먼 곳에 있는 불길한 손님이 아니다. 담장 너머 이웃의 안부처럼, 혹은 매일 저녁 서산 너머로 붉게 저무는 노을처럼 우리 생의 곁에 머물며 늘 함께 호흡하는 실존적 동반자다. 떠남을 우리 삶의 필연적인 일부분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지금 이 순간'이라는 현재를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천 년 전의 시간을 품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끝은 소멸이 아니라, 우주의 질서 속으로 다시 스며드는 숭고한 이동이다.


◇ 320만 명의 선택: 존엄한 마무리를 향한 사회적 동향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통계로도 명확히 드러난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2026년 초 기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는 이미 320만 명을 돌파했다. 이는 2018년 제도 시행 초기와 비교하면 놀라운 비약이며, 특히 65세 이상 고령 인구 4명 중 1명(약 23.7%)이 이 서약에 동참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단순히 등록자 수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의 이행률도 동반 상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사전에 밝힌 뜻에 따라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한 사례는 누적 50만 건에 육박한다. 이제 우리 사회는 '얼마나 오래 살 것인가'를 넘어 '어떻게 존엄하게 마침표를 찍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실질적인 답을 내놓기 시작했다. 고령 1인 가구의 급증과 초고령 사회 진입은 이러한 '자기 결정권'의 가치를 더욱 엄중하게 요구하고 있다.


◇ 나를 지키고 가족을 살리는 가장 사려 깊은 유산

웰다잉의 가치를 전하는 길목에서 마주하는 가장 안타까운 상황은, 준비되지 않은 이별 앞에서 가족들이 겪는 죄책감이다.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서,


"치료를 계속할 것인가, 멈출 것인가"


라는 가혹한 결정을 자식들의 어깨에 지우는 것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또 다른 심리적 부담 이 될 수 있다.

내가 직접 작성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한 장은 단순히 의료적 선택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서 마지막 순간까지 품격을 잃지 않겠다는 강인한 결단이자, 남겨질 가족들이 나를 떠나보낸 후에도 죄책감 없이 온전한 추억과 애도로 그 시간을 채울 수 있도록 돕는 '마지막 배려'다. 사랑하는 이의 생사를 결정해야 한다는 무거운 심리적 속박으로부터 가족을 해방해 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남길 수 있는 가장 사려 깊은 사랑의 유산이다.


◇ 웰다잉, 오늘을 더 눈부시게 살아갈 에너지

임종을 미리 응시하고 준비하는 과정 은 결코 슬프거나 우울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오늘 내 식탁 위에 올라온 소박한 한 끼의 온기를, 첨성대 위로 소리 없이 떠오르는 달빛 한 조각을 더 깊이 사랑하게 만드는 눈부신 축복이다. 마지막을 직시할 때 비로소 삶의 밀도는 더욱 촘촘해지고, 우리는 비본질적인 욕심과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경주의 사계절이 그러하듯, 지는 꽃조차 고운 삶을 꿈꾸어 본다. 봄날의 벚꽃이 화려하게 피어날 때도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낙화가 되어 꽃비로 흩날리는 그 쓸쓸한 순간에도 경주의 길은 여전히 아름답다. 우리네 삶 또한 그 자연의 순리를 닮아야 한다.


천 년의 세월 곁에서 배운 이 '아름다운 매듭'이 나뿐만 아니라 우리 이웃들의 삶을 더욱 찬란하게 비추는 따뜻한 등불이 되기를 소망한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존엄을 지키겠다는 이 굳건한 결심이, 역설적으로 오늘을 가장 눈부시고 치열하게 살아갈 수 있는 생의 에너지가 되어줄 것이라 확신한다. 인생이라는 긴 여행의 종착역에서, 함께 걸어온 소중한 인연들에게

고마웠노라는 진심을 담아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싶다.


"참 좋은 여행이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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