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김순호 시

그럼에도

신작 시

by 김순호


<사진 카페 가는 길>




그럼에도 / 김순호



나는 혼자 찾아가는 카페 몇 곳을 저장하고 있다

그중에서 오늘의 카페는 낮은 산과 숲을 품고 있어 산책도 겸할 수 있다

그곳에 가려면 여름엔 땡볕을 견뎌야 하고 겨울엔 회초리 바람을 견뎌야 하지만

숨겨놓고 타인과 동행하진 않는다


잠시 책을 덮고 산에 올라 나무가 된


지구 끝까지 달려갈 바람이 무리 져 숲을 통과 중이다


각각의 색깔로 물든 단풍잎들과 이미 말라버린 나뭇잎들이 위태롭게 휘청이다가 솟구치고

끝내 떨어진다


가을의 계곡

숭숭 뚫린 나뭇잎에 짧은 오후의 빛이 스민다


잎잎을 자세히 보면


새나 벌레에 쪼였거나


햇빛에 타버린 까만 점 투성이거나


바람에 베였거나


어느 것 하나 온전하지 않고 모두 제 몫의 흉터를 지니고 있


그럼에도 그럼에도 그들은 빛이 난다


살아가는 것은 모두 안에 상처를 보듬는 것이라는 듯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죽은 자들의 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