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넷, 직장인 14년 차입니다.
prologue
나는 스무 살에 취업한 첫 직장에서 14년째 재직 중이다.
미혼이고, 직급은 대리다. 어쩌면 꽤나 안정적으로 보이는 타이틀이다.
나도 내가 이렇게 오래 직장생활을 할 줄 몰랐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직한 케이스다. 아마도 이십 대 초반은 마음가짐을 학교처럼 다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냥 무조건 해야 하는 거라고 여겼다. 한 직장에서 오래 근무하면 대부분 좋게 본다. 진득하니 끈기가 있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사실 모든 게 그렇듯 장단점이 있다.
장점으로는 아무래도 안정적인 수입이다. 그리고 일상도 나름 안정적으로 흘러간다. 가끔 주말에 출근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주말에는 쉬니까 회복할 시간이 안정적으로 주어진다.
또 하나는, 앞서 말했듯 '끈기가 있고 책임감 있는 성격이겠구나' 주변에 좋은 이미지를 주기도 한다. 원래 내성적이었던 난 14년간의 회사생활을 겪으며 사회성을 습득했다. 지금에 나를 일로써 잠깐 스치는 사람들은 본 성향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일적으로 능률이 점점 오르는 것도 오랜 경험을 통해서 가진 결과물이다.
단점이 뭐가 있을까 싶겠지만 단점도 분명 있다. 14년을 비슷한 루틴대로 살다 보니 변화가 두려워진다. 이십 대에 몇 번의 이직경험이 있는 친구들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곤 한다.
"나 그만뒀어. 한 달 쉬다가 다른 곳 알아볼 거야."
하지만 나는 틀을 벗어나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성격차이인지 모르겠지만 변화될 일상이 쉽게 예상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세 번 정도 고비가 있기는 했다. 고민만 하다가 또 긍정적인 생각이 올라오면 그래 오케이, 하고 지나가고 그랬다.
30대가 되면서부터 여러 가지 내적인 변화가 많이 일어나기는 했다. 스무 살이 아닌 30대가 된 지금의 내가 선택하는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그냥 막연한 생각이 시작이었다. 나에게 회사 일 말고 다른 선택지도 주고 싶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 을 하고 싶다.'
시간이 가면서 일에 더욱 깊이 관여할수록 회사에서 지치는 날이 늘어갔다. 회복할만한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게 꼭 수입으로 연결되지 않더라도.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 흥미로워서 몰두할 수 있는 일을 가져야 한다고, 그래야 정신적으로 휴식을 가질 수 있고 회복된다고 한다.
또 하나는 자기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으면 자존감이 떨어지고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직장인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본인의 판단대로 행동할 수 있는 상황이 별로 그렇게 없다. 자잘한 것부터, 몸에 컨디션이 안 좋으면 쉬고 싶은데 일을 해야 하지 않나, 이 모든 게 사실 내가 원하는 대로 못하는 상황인 거다.
일이 많아지고 떠안는 기분에 휩싸여 허덕이던 시기가 있었다. 그렇게 퇴근을 하면 무기력해졌다. 바쁘면 바쁠수록 집에선 게을러졌다. 당시엔 그걸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했다.
그게 누적되면 병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벌써 3년쯤 지나 온인데, 일이 너무 바쁘고 버거웠다. 계획에 추가되는 일도 생기고 인원도 줄어서 정신없던 시기에 개인적인 일들도 겹쳤다.
당장 닥친일과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 때문에 극도로 예민해졌다. 잠을 설치기 시작했다. 1주일이 지나니 하루종일 심장이 너무 두근거렸다. 밥도 안 들어가고 살이 쭉쭉 빠졌다. 계속 버티다가는 정말 죽을 것 같아서 결국 병원을 찾아갔다.
몇 개월을 고생하고 일과 휴식과 마음의 안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경험으로 느끼게 된 시기였다.
그렇게 내가 회복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 좋아하는 일을 찾아 헤맸다. 꾸준히 할 수 있는 나를 위한 일.
나는 생각이 정리가 안될 때 힘들다고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글을 쓰는 시간을 확보해 놓으면 되지 않지 않을까?
나는 글을 써보기로 했다. 문득 스치는 생각들,
그냥 넘어가거나 의식하지 못할 수 있는데 쭉 써내려 가다 보면 답이 보이기도 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채워지지 않던 무언가를 글을 쓰면서 채울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설레었다.
14년간 회사생활을 하면서 20대를 모두 보낸 내가 경험한 어쩌면 사사로운 일이나 감정과, 변화,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어 나가보려 한다. 나도 잘 모르겠다. 생각보다 시시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