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동기들이 사라진다.
그리고 아직 남아있는 나,
내가 다니는 회사는 한 의류 브랜드.
서울에 본사를 두고 지방지점이 운영되는데 나는 그 지방지점 중 한 곳에서 근무한다. 14년 전에 입사할 때 있던 사람 중 지금은 나 포함 4명만이 남아있고, 지금은 모두 바뀌었다.
처음엔 공채로 입사를 해서 매장에서 3개월 정도 근무를 했다. 고객응대는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두려고 했다. 그런데 마침 공채인원 중에서 매장관리직으로 인원을 보충할 예정이라고 해서 지원해 보게 되었다.
덜컥 내가 뽑혔다. 나중에 이유를 들어보니 업무에 관해 내가 몇 가지 질문을 했었는데 그런 모습에서 실무를 잘할 것 같았다고 한다.
무튼 그렇게 시작해서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때 공채로 들어왔던 입사동기 중 지금까지 매장에 남은 사람은 단 1명이다.
아 물론 그 친구는 퇴사 후 재입사지만!
공채들은 그렇게 짧으면 몇 개월, 길면 몇 년 안에 다 제 갈길로 흩어졌다.
그렇게 지점 관리직으로 들어온 나는 무슨 일을 했을까?
당시에 인원보충한 자리는 대형할인마트에 운영하는 당사 브랜드 제품을 관리하기 위해 매장을 순방하고, 점주들을 만나고, 점포 관계자를 만나서 이벤트들을 진행시키기도 하는 그런 역할이었다. 거의 외근위주의 업무였다.
한 달간 사수를 따라다니면서 배우고 그 후로는 담당지역을 맡아서 하게 됐다. 웃긴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당시 맡았던 일은 일종에 영업 관련 일이다.
20살 사회초년생이 누군가와 사회적인 대화를 얼마나 나누어봤을까.
익산에 매장을 갔을 때인데 타브랜드 관계자와 이야기가 길어졌다. 당시 나에겐 어렵고 불편한 대화였고 벗어나고 싶었다. 갑자기 어지러웠다. 마치, 아침 조회시간에 땡볕 운동장에서 교장선생님 설교말씀을 듣는 것 같았다. 등과 얼굴에선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이윽고 눈앞에 별이 가득해졌다. 큰일 나겠다 싶어서 이렇게 말했다.
"저 죄송한데 잠시 화장실 좀.."
그리고 뛰었다. 갑자기 앞이 안보였다.
우당탕탕!!!*_%^
주변 진열대를 꽝! 박으며 넘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눈을 떠보니 입에서 피가 난다.
아주잠깐 의식을 잃은 것이다. 너무 창피해서 감사하다, 죄송하다, 괜찮다 정신없이 중얼거리듯 이야기하며 도망치듯 후다닥 자리를 떠났다.
이후에도 종종 이런 일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어릴 때는 어떤 상황에서 유연하게 조절하지 못하니 순간적인 스트레스가 올라와서 그랬던 것 같다.
지금은 조금 현기증이 올라오면 허리를 반으로 접어 고개를 푹 떨군다. (사람들 없는 곳에 가서 숨어서 해야 한다. 자칫하면 좀비 같아 보일 수 있다.) 그럼 얼굴에 피가 돌면서 금세 좋아진다. 나름의 노하우가 생긴 것이다.
그때 당시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남직원들은 대부분 이직을 했고, 여직원들은 결혼을 하고 그만둔 사람도 있고, 출산을 하게 돼서, 육아와 병행하다가 그만두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따져보니 내가 오래 다니는 이유는 아마 결혼을 안 했기 때문일까?!!!
가끔 후배들에게 지나간 일들을 얘기해 주다 보면 가끔 내가 '호텔델루나'에 나오는 만월이 같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유 아니고 만월이..)
많은 사람들은 여기를 스쳐 지나가고 있는데 나만 계속 남아있는 느낌이 들면서 왠지 모르게 아련해진다.....
지점마다 지점장이 한 명씩 있는데 임기가 4-5년이다. 벌써 4번째 지점장이다. 두 번째 지점장이 오고서 나는 로드샵을 순방하며 관리하는 쪽으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4년 차였던가. 그때만 해도 선배들이 많이 있었다. 나는 요리조리 붙어서 서브하는 역할로 나름 잘 적응해 왔던 것 같다. 선배들이 많을 땐 일이 재미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주어진 대로 일하고 이후에 책임이 온전히 나의 것이 아니란 생각 때문에 별로 힘든 일이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몇 년 후 또 한 번 보직이 변경되었다. 실제로 제품을 각 매장에 배당하고 관리운영하는 판매기획 업무였다. 본사랑 통해야 하는 일들이 더 많아졌다. 아마 그때부터 조금씩 변화가 생겼던 것 같다.
내부적으로 큰 인원 변화가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잘하고 싶었고, 그때 성격도 많이 바뀌었다. 마인드가 바뀌어서 그랬을 거다. 그 자리는 융통성이 있으면서도 한편으론 칼 같아야 했다.
"신상품이 들어왔는데 최소 사이즈별 1매씩은 줘야 하지 않나요, 우리 매장은 큰 사이즈가 잘 나가는데요."
"점주님,, 신상품은 지방 배분받은 수량에서 철저히 매출순으로 배분하고 있어요.. 그래도 전체적으로 배분해 드리려고 적은 수량으로 여러 매장받을 수 있게 소량이라도 배분해 드린 거예요!"
"아는데 그래도 저희 매장은 이런 스타일 빅사이즈가 꼭 있어야 해요~~~"
"알죠,, 그 사이즈는 전 매장 배분할 만한 수량이 안되고, 기본 배분 룰이 그렇다는 이야기예요. 전체 배분 완료되고 나서 제가 따로 챙겨보도록 할게요, 대신 앞으로 제가 타매장으로 이동 요청드리는 제품 꼭 협조부탁드릴게요."
적정 전에서 요구를 들어주되, 역으로 다음에 협조가 필요한 상황에 소통이 원활하게 되도록 하는 것이다. 끝이 없다. 반복이다.
원래의 나는 대범하기도, 한편으로 내성적이기도 하면서 자유롭고 즉흥적인 성격이다. 회사에 들어와서 중재 역할을 하면서 계획적으로 행동하기도 하고 잘 다듬어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절제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화가 나기도, 격양되기도 하고 감정이 매우 왔다 갔다 한다.
이런 점도 일을 하다 보면 극대화되어 다시금 나 자신을 알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또 하나, 어느 곳에서나 그렇듯 경쟁구도를 가진 곳에서는 뒷이야기가 아주 많다. 자기 기준에서 남을 판단하고 걸맞지 않으면 욕하고 또 새나가지 않게 장치를 해두지만 결국 새 나가는 곳이다. 징글징글하다. 뭐 나도 욕한 적이 있다. 하지만 비밀이 아니라 당사자에게도 말한다. 적어도 비밀인 욕은 안 한다. 절대 비밀이란 없다!
이제는 누군가 내 욕을 했다고 해서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다. 앞에서는 말 못 하고 뒤에서만 이야기하는 이유가 뻔하기 때문이다.
잘하는 사람이 오래 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 버티며 조금씩 발전하는 사람이 결국 잘하게 된다는 말을 되새기며,, 매 순간 다짐한다.
'평정심을 유지하는 자가 승리자다.'
남아있는 사람 중, 물류팀에 기사님이 생각난다. 그분은 91년도에 입사하셨다고 한다. 내가 91년 생이다. 새삼 그 시절을 상상해 보면 신기하면서도 정말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일을 겪으셨을까!
비교적 최근에 그만 둔 사람들은 종종 연락하며 지내지 않을까 했는데, 연결고리가 없으니 그것도 잘 안된다. 솔직하게는 별로 연락하고 싶지 않다. 이게 현실이다.
카톡에는 일하면서 만난 사람들이 대부분인 약 400명에 친구가 저장되어 있다. 임시로 저장해 두었던 번호들은 틈틈이 삭제를 한다. 한 번씩 쭉 내려보고, 다들 뭐 하고 사나~ 하고 들여다본다. 잠시 멈춰서 지울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화면을 꺼버린다. 생각이 복잡해질 때는 선택을 잠시 보류하는 게 상책이다.
그래도 매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명 남은 입사동기가 있어서 다행이다. 동갑이기도 한 그 친구와 티격태격도 하고 대판 싸우기도 했다.
일로 봐야 하는 사이니 저절로 강제화해가 된다. 그것도 특별한 인연 같다.
가족, 친구들한테 회사얘기를 했을 때가 있었다. 이해받고 싶어서 아무리 이야기해도 상황을 자세히 모르는 상대에게 받는 위로는 뭔가 허전했다. 회사에서 내 모습을 아는 친구가 있다는 건 정말 특별한 것 같다.
공감과 이해를 받으면 '다시 해보자!' 하는 마인드가 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물론 맘에 안 드는 사람들을 욕하면서 풀어내기도 한다.
"우리 때는 ~" 하면서 키득키득하기도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