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이 싫지만 피할 순 없지.
나만에 방식으로,
밖에서 하는 모든 일들을 잘 끝내고는 꼭 혼자서 쉬면서 회복한다. 하루면 회복되기도 하고, 몇 날며칠이 지나도 정신을 못 차릴 때도 있다.
성격상 경쟁이 싫다. 경쟁을 하려면 이기고 싶은 상대가 있어야 하는데, 누군갈 이기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기 싫다. 힘들고 불편하다. 경쟁 없이 살 수 없는 세상이라 나름 참 애를 많이 쓰고 있다.
사람은 긍정적인 생각을 할 때가 훨씬 자연스럽다. 부정적인 감정을 섞어 뭔가를 짜 맞추려고 할 때 참 에너지소모가 큰 것 같다.
그래서 난 내 중심을 지키는 것, 그리고 내 양심이 말하는 대로 나의 소신을 지키는 것이 경쟁을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솔직한 게 좋고 직설적인 게 좋다. 나도 인정할 수 있고 타인에게도 이후 일어날지 모르는 수많은 일들을 미연에 방지하도록 하는 배려였다. 일 할 때는 더 합리적인 것을 따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것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에 자신 있게 진행한다. 그게 내가 나름 경쟁을 하지 않고도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물론 이건 시간이 가면서 정립된 생각이다.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중학교시절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친구들이랑 어울리다 보면 사소하게 화가 나는 일들이 종종 생긴다. 화를 내고 싶은데 그다음 상황이 걱정되는 것이다. 적당히 내 감정의 불편함을 표현하는 법을 잘 몰랐다고나 할까? 하루는 네이버 지식인에 질문을 올렸다.
"친구에게 화가 나는데 화내는 법 좀 알려주세요."
답글은 기억도 잘 안 난다. 단지 그것을 심각하게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다. 나만에 기준이 없었고 모호했다. 어느 정도 화가 나는 건지 헷갈렸다. 결국 친구들에게 표현하지 않았고 억눌렀다.
이런 일도 있었다. 스무 살이 되고, 사회에 나와서 나에게 다가온 친구가 있었다. 인기가 많고 예쁘고 쾌활한 친구였다. 초반엔 잘 어울려보기로 했다. 하지만 가까워지는 속도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잘 놀 줄 아는 친구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친구는 MBTI "E" 였을 것이다. 그 에너지가 점점 부담스러워졌고 조용히 휴식하고 싶었다. 어느 날 나는 팩폭을 날려버렸다.
"나는 너랑 잘 안 맞는 거 같아. 나는 쉬는 날 혼자 쉬고 싶어, 좀 쉬어야겠어. 다른 친구랑 가.. 미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정한 기준에 맞지 않으면 차단을 하게 되었다. 억지로 남들과 비슷하게 따라서 무언 갈 하다 보면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몸이 아파졌다.
얼굴 보고 팩폭을 날렸을 때 그 친구의 순간표정을 잊을 수 없다. 당황하고 상처받은 표정이었지만 이내 끄덕하고 알겠다고 했다. 그렇게 그 친구랑은 다신 볼일이 없었다.
어릴 때 나는 동정심도 많고, 순하고 소심하기도 한 그런 성격이었는데.
감정적인 성격을 가지고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생존본능이 자극이 되는 걸까. 이렇게 행동하다가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게 본능적으로 느껴진다. 사람은 누구나 다양한 면이 있을 것이다.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을 내보일 뿐..
그렇게 나는 전형적으로 처한 상황에 따라 점점 F형에서 T형 인간으로 변했다.
평소에는 원래 내 모습으로 살다가, 내가 정한 기준에 어긋나면 말과 행동에 거침이 없어진다.
그렇게 요즘은 사회적인 모습을 취하며 사는 시간의 비중이 훨씬 늘었다.
처음 회사에 들어가서 선배들은 나에게 착하고 순해서 매장 점주나 매니저에게 할 말도 못 할 거 같다고 걱정했다. 하지만 몇 년 후에 나는 나를 걱정하던 그들과 기싸움도 하고 나름 경쟁도 했다. 그 경쟁이 나를 불안한 상태로 만들었다. 이 환경에서 불필요하다고 느껴지는 감정들을 버려갔다. 때때로 응어리가 남는다. 그래도 태연한 모습으로 같이 일을 해나가야 했다. 일은 일이니까. 그 마인드를 가져야지만 살아남는 거라고 믿었다.
거기서 오는 부작용은 이렇다. 일을 할 때 에너지를 많이 쓰게 된다. 자유롭고 느긋한 성격인데 일할 때는 선택적 냉철인간이 된다. 원리원칙이나 공평성을 가장 중요시하고, 맞는 거 맞지 않는 거 굉장히 따진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루종일 일이 안 끝나고 다음날 까지도 이어진다. 그렇게 내 기준을 세워서 해나갔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그 기준에 어긋나는 일들은 수도 없이 많이 일어난다. 그런 순간에 에너지가 많이 쓰이는 것이다.
아무리 칼같이 한다고 해도 휘청거린다. 항상 맞춰놓은 지점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렇게 살다 보니 독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쓰러졌다, 일어났다, 또 넘어진다.
기어가 숨어있다가, 맞서서 나섰다가, 휩쓸렸다가, 간신히 일어났다.
내가 타당하다고 인정하지 못한 일을 할 땐 너무 힘들다. 그렇지 않기 위해 어떤 신념을 가지고 그 방식을 고수하다 보니, 누군가에게는 융통성 없는 사람으로 비치기도 한다. 그래도 괜찮다. 끝없는 생각에 빠질 때에도 나 하나만 나를 온전히 인정해 주면 다시 일어설 힘이 생긴 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이 잘 흘러가면 타인에게 훨씬 너그러워지기도 한다. 그렇게 유지하며 살고 있다.
지난 20대를 돌아보면.. 남들이 볼 땐 경쟁에서 살아남은 거라고 볼 수도 있지만. 나 스스로는 타인과의 그런 경쟁이 아니었다. 나와의 끝없는 대화였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으로 자신감을 얻고 소신껏 살았다. 믿음과 자신감이 흐려지면 다시 명확하게 꺼내올 마인드 컨트롤 시간이 필요한 거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다.
그렇게 중심을 지키면서도 주변을 함께 돌보며 나아가는 지혜를 키워나가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렇게 보니 말이 되게 뻔하고 간단히 느껴진다. 나름 되게 새로운 깨달음 같은 거였는데, 익숙한 흔한 이야기가 이제야 체감된다.
자칭 타칭 T형인간의 모습은 아무래도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모습으로 보인다는 거니까. 주변사람들과 함께 행복의 길 위에 서는 것이 내가 바라는 모습이다.
적당히를 몰라 남에게 싫은 소리 못했던 나.
내가 정한 기준에 맞게 사는 T형 인간이 되었다.
나만에 기준을 정해서 사는 게 맞는 걸까?
모두가 평화로울 수 있는 현명한 모습으로,
어딘가에 이미 그런 모습으로 살고 있는 내가 있을 것 만같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곳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