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나, 고양이나 똑같아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매일매일, 아이들은 놀란다.
현관문이 열리는 그 짧은 순간.
집안을 환하게 비추는 햇살과 훅- 스치는 바람에 호기심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는 그 커다래진 눈들.
나의 출근길은 늘 그 잔상과 함께 시작된다.
어젯밤에는 저녁에 다리가 아파 벽에 다리를 올리고 누워서 휴식하고 있었다.
나의 옆에는 사랑이와 깜이가 서로의 몸에 얼굴을 파묻고 깊이 잠들어있다.
너무 평온하고 이뻐서 한참을 바라보다 나도 잠깐 잠이 들었다.
일어나 보니 깜이는 거실로 나갔는지 없고, 나른하게 퍼져있는 사랑이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나와 한참 눈 맞춤을 하던 사랑이를 향해 돌아누웠다. 서로 마주 보고 누웠다.
그때 그 표정. 고양이도 사랑을 하겠지? 고양이가 사랑하는 고양이를 볼 때 표정은 바로 이런 걸까? 사람인 내가 고양이와 감정교류가 이루어지는 잠깐이지만 분명한 순간이 있다.
사랑이의 앞발이 기지개를 켜며 내 입술을 스쳤다. 그렇게 또 찰나의 순간이 지나갔다.
깜이의 그윽한 표정은 둘째가라면 서럽다. 양쪽 눈을 지그시 감으며 냐~~ 소리를 낸다.
엉덩이를 만져달라거나 얼굴을 만져달라는 둘 중 하나의 신호다. 나른하게 집사의 손길을 요구할 때 그 표정은 한 마디로 그윽하다. 내가 피곤해서 냐옹 소리를 듣고도 돌아보거나 반응하지 않을 때는 돌아누운 나의 뒤에 바짝 붙어 얼굴을 한참 비빈다. 그리고 귀에 대고 다시 한번 냐옹 ~
놀래서 뒤돌아보면 안 그랬다는 듯 몸을 사선으로 돌리며 요염하게 앉아있다.
그리고 곁눈으로 쳐다본다.
이걸 몇 번 반복해 본 나는 그제야 알게 된다.
-하하하 ~ 아~ 엉덩이 만져달라고 돌아앉은 거구나?
베란다에서 아파트 잔디밭을 구경할 때에 호기심과 경계심이 뒤섞인 표정이 있다.
사람들이 소리를 내며 지나갈 때 자세히 확인하려 고개를 숙이거나 들어 올리기도 하고, 시선을 따라가다 고개까지 빼꼼한다. 그리고 시야에서 사라지면 옆 베란다까지 따라가서 쳐다본다. 그러다 완전히 사라지면 뒤돌아 나를 쳐다본다. 쫑긋한 귀와 동그래진 눈!
안심시켜 주려 이름을 부르면 다시 평소대로 터벅터벅 걸어와 얼굴을 비비며 지나간다.
경계와 안심이 무한히 반복되는 것이 고양이의 일상!
가끔 집에 벌레가 들어온다.
집안에서 고양이와 살고 있는데 한밤중에 거실에서 째재재잭 고양이 채터링 소리가 들린다면?
나는 벌떡 일어나 거실로 뛰어나갔다.
낮이라면 새가 지나갔겠거니.. 할 수 있지만 밤에 거실에서 들릴 수 없는 소리다.
거실로 나가보니 두 마리의 고양이가 한 곳을 응시하고 있다.
TV장 밑으로 웬 커다란 거미 한 마리가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다.
나는 휴지를 들고서 두 고양이를 번갈아가며 쳐다본다. 요 놈들의 흥미로운 표정.
순간 사냥을 하던 길냥이 시절의 표정이 나온다. 꼭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어떻게 하려고? 내가 잡아주까?
아니야, 여기선 엄마가 할 거야.
탁-!!!!
상황이 종료되면 또 영락없는 집고양이 모드다.
재미있는 장면이 끝났다는 듯이 폴짝 뛰어 소파에 편안하게 누워버린다.
히유....
나도 긴장했던 마음을 가라앉히며 침대로 터벅 다시 올라 누워버린다.
나의 감정상태가 불안하고 슬프고 그럴 때 고양이들이 이상해진다.
계속 울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나를 귀찮게 한다.
고양이들은 내가 어정쩡하게 서서 무언가를 생각하거나,
가만히 앉아서 심각해질 때 한참을 서서 바라보며 계속 야옹 ~ 하며 부른다.
불안하고 슬프고 거기에 화까지 더해지는 순간에는 고양이들이 더욱 심하게 운다.
옷을 잘근잘근 깨물고, 거실에서 허공에 대고 울어대기도 한다.
그 순간에는 엎친데 덮친 것처럼 차분하고 싶은데 왜 이렇게 방해를 하지?
원망스런 마음이 들기도 한다.
주저앉아 울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진다.
하지만 고양이들이 그렇게 울어대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놀아주고 만져주고 이뻐해 주고 사랑을 주어 불안을 낮춰줘야 한다.
그래서 생각을 미루고 일단 고양이한테 집중한다.
놀아주고 이뿌다해주고 몸을 움직인다.
그런데 , 그러다 보면 내가 괜찮아진다.
계속 생각하고 심각하다고 답이 나오는 게 아니다.
당장 해야 할 일들을 의무적으로라도 하다 보면
심각한 일들이 가벼운 일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그 변화는 잠깐새에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너희를 지켜주는 걸까, 너희가 나를 지켜주는 걸까?..
어느 날 새벽에 몸을 돌려 눕다가 무언가 발에 걸려 잠이 깨버렸다.
뜨끈한 두 덩어리가 있다. 옅은 조명에 비친 아이들의 표정을 한번 바라본다.
새근새근 잘도 잔다.
표정도 표정이지만 자세가 보면 볼수록 웃음이 난다.
마치 옆으로 누워 자는 그냥, 사람처럼 몸의 힘을 100% 빼고 축 늘어트려 배를 펼쳐내고 자고 있다.
잘 자고 있는 와중에도 집사의 움직이는 소리에 귀는 잠시 쫑긋 거린다.
나도 잠에서 깬 짧은 순간에 시간, 조명의 밝기, 전기장판의 온도, 내일의 일정...
머릿속으로 한번 체크한 뒤 그대로 다시 폭! 누웠다.
끔뻑 끔뻑거리다가, 마지막으로 고개를 돌려 아이들을 다시 한번 쳐다본다.
깜이가 꿈에서 맛있는 걸 먹는 걸까?
연신 입으로 쩝쩝, 흠냐 흠냐, 거리다가 몸이 크게 움직일 만큼 큰 콧숨과 함께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든다.
이 집에서 사람인 나와, 고양이들이 지내는 모습은 별로 다르지않다.
편안할 때, 불안할 때 우리는 이 집에서 서로의 감정 상태를 알 수 있다.
고양이는 사람이 맡지 못하는 냄새나 소리와 무언가를 캐치해 사람에게 알려주고,
나도 고양이들이 이 세상에서 스스로 도저히 알 수 없는 것들을 알고 조치해 준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를 살피며, 서로를 지키며, 우리의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