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억달러짜리 트릭
오프닝
영화의 오프닝은 언제 나올까?
프렌치 75 조직원들이 수용소에 침입하여 수용소의 인원들을 탈출시킬 때, 힐즈가 자고 있는 록조를 깨운다.
그녀는 록조에게 발기를 해보라고 시키며 그를 굴욕적으로 만든다. 그다음 샷은 이렇다. 강제로 수용된 사람들을 트럭에 태우며 "뒤로 들어가요. 빨리빨리 움직여요." 영화는 아주 천연덕스럽게 록조와 그녀의 섹스 장면을 떠오르게 숏을 이어붙인다.
PTA의 농담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쯤 되면 록조와 힐즈가 섹스한 것이 아니라 영화가 그들의 행위를 보면서 자위를 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첫 폭발이 일어난 다음 제목이 나오지 않는다.
수많은 테러 행위 이후에 정부기관으로 퍼거슨과 비버리힐즈가 들어간 다음에야 "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라는 제목이 나온다. 이 지점이어야 하는 이유는 있는 것일까?
밥 퍼거슨이 말하는 끊임없는 전투라면 이는 필히 첫 번째 폭발씬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PTA는 영화 도입부가 아닌 초반 지점에 제목을 걸어놓는다. 여기에서 영화를 본 관객들이라면 눈치를 챌 것이다. 그렇다. 록조와 비버리힐즈가 만나는 순간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와 록조가 섹스를 하는 날에 벌어지는 제목이다.
그렇기에 제목 [원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혁명을 위한 구호가 아니라 록조와 그녀가 수용소 이후 재회하여 계속해서 [추적자와 도망자] 역할극을 한 연애를 표현한 것이 아닐까 의심할 수밖에 없다.
결국 섹스와 혁명이 뒤틀린 셈이다.
사운드와 안경
서로 다른 음이 흘러나오지만, 근처에 같이 있으면 하나의 화음으로 음악이 들린다는 이상한 무전 신호기의 원리는 단순히 밥과 딸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각 시퀀스에 맞춰 흘러나오는 수많은 단음들과 이미지들도 이와 유사한 원리로 이루어져 있다. 단적인 예로 들자면 밥 퍼거슨이 집에서 탈출할 때 나오는 조니 그린우드의 OST는 시퀀스에 나온 록조의 얼굴과 분리시킴으로써 관객의 리듬감을 온전히 한 영역의 인물에만 맞출 수 있도록 한다.
이런 방식들은 밥 퍼거슨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시퀀스가 넘어가기 전에 다른 OST로 흘려보내서 관객 스스로가 자연스레 내러티브의 변화를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음악이 바뀐 다음 다른 얼굴로 시작되는 시퀀스의 변화는 PTA의 장기라고 할 수 있는 '얼굴'을 중심으로 한 카메라 계주의 연장선이자 할리우드의 꿈이기도 한 내러티브 동일화와 유사한 목적이 된다.
그런데 희한한 지점이 있다. 사운드가 일종의 내러티브 변환의 전조라면 시퀀스 변화에 맞춰 움직이는 캐릭터들은 분명히 '혁명'이나 '도주'를 위해 밖을 뛰쳐나가야 된다. 그들이 마주치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영화는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공공기관이나 마을의 건물들의 구조와 위치를 쉽게 알 수 없게 만든다. 영화에서 부감 및 위치화 장소의 형태를 유추할 수 있는 장면은 영화 초반에 나온 헬기에서의 장면과 밥 퍼거슨이 조준경으로 바라보는 시선 두 개뿐이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스티븐 록조가 '타코'와 '마약'의 이유를 대며 들이닥친 마을의 시위 장면당시 거리의 위치, 학교의 위치 그리고 건물과 내부 강당의 모양을 당신은 떠올릴 수 가 있는가?
영화는 실존하는 세계와 캐릭터들을 하나의 프레임에 넣기를 허용하지 않는다. (심지어 퍼피디아가 도주하는 장면을 부감으로 보여준 뒤, 잡히는 순간은 쇼트를 넘김으로서 짧게 클로즈업 한다)
생각을 해보자. 창 밖을 바라보는 밥에게 세르지오는 전화기를 충전하러 온 밥 퍼거슨에게 창밖을 보지 말 것을 이야기한다. 분명히도 록조와 아반티가 만나는 약속 장소도 야외이지만 돌이 관객 앞을 가로막아있고, 퍼피디아가 증인 프로그램 때문에 수용되어 있는 주택도 창문이 있지만 창문 밖에 담이 존재하여 밖을 함부로 볼 수가 없다.
마지막에 록조가 보는 시선은 어떠한가? 분명히 탁 트힌 야외 풍경이고 록조 스스로가 그 풍경에 취해 울먹거리는 얼굴을 카메라가 비춰주지만 끝까지 그와 세계가 함께 담긴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체 창밖의 모습과 록조를 분리시킴으로서 캐릭터와 실존 세계를 분리시킨다.
영화의 Main Theme 이자 영화 속의 상징적인 소리인 '단음'이 자동차 시동을 걸었을 때의 나는 소리였음을 인지한다면 이는 참 아이러니한 장면들이다. 그들은 12M에서 떨어져도 달려야 하는 자동차와 같은 인물들임에도 불구하고 '도로'만 있지 '도로 밖의 시선'이 없다. 그들이 보는 세계와 풍광을 관객과 절대 공유하지 않는다는 점.
그렇다면 그들이 바라보았던 시선, 풍경은 어디로 간 것이란 말인가?
옥상과 개구리비.
영화를 본 사람들이 극찬하는 카 체이싱 장면의 꿀렁거리는 움직임은 이미 옥상 시퀀스에서 본 적이 있다. 참 쉽게 뛰고 참 쉽게 떨어지며, 참 쉽게 살아난다고 생각나는 참으로 이상한 장면인데 이것이 꿈인 것인가 딸을 위한 의지인 것일까?
점프의 반복으로 보이는 밥 퍼거슨의 몸과 후반부에 다시 시작되는 카 체이싱에선 하나의 공통점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밖의 시선을 일체 보여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달팽이님이 지적한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후반부의 동선들- 아반티의 총격이나 크리스마스 캐럴의 암살자의 등장 등, 영화 스스로 많은 일들을 벌여놓고, 혹은 많은 것들을 보여주지만 PTA가 주목하는 것은 그 사건과 인물들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미국의 모습이나 단면이 아니라 영화 속에 존재하는 인물들의 질주이다.
이는 옥상 위에서 시위 현장의 불길을 풍경 삼아 도망치는 밥 퍼거슨의 동선과 사이드미러와 자동차 프런트 범퍼 쪽의 시선으로만 보이는 극단적인 시점 조점으로 이루어진다. 애초에 부재했거나 존재하지만 쾌감을 위해 가려져야 하는 존재들. 거대한 커튼과도 같은 막(커튼)은 시선의 강탈로 대체된다. 그 끝에서 딸을 구해냈을 때, 이는 논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영화적 쾌감이자 매그놀리아에서 보여준 개구리비와 유사한 '판타지'인 셈이다.
혁명, 아이폰
마지막에 펼쳐지는 부녀지간에 펼쳐지는 암구호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당신이 내 친아빠인지 아닌지와 친아빠가 아니면 누구인지의 말이다. 여기에는 딸의 물음과 엄마의 물음이 섞여 있다. 이 지점에서 밥 퍼거슨은 부녀의 관계가 아닌 부,부이전의 동지의 문답으로서 둘의 관계를 정립한다. 그 뒤 그녀에게 '딸의 엄마'이자 '혁명 동지'의 내레이션을 영화는 선물한다.
영화는 문밖으로 나가버린 딸의 동선에 영화는 따라가지 않고 셀피를 찍은 밥 퍼거슨을 집에 남겨둘 때, 영화 스스로 외쳤던 '레볼루시옹'은 그렇게 끝난다. 여기에 일종의 트릭이 존재한다. 영화 스스로가 수많은 현상들을 선글라스를 쓰거나 '전화기 충전'을 빌미로 동선을 꼬이게 함으로써 회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에게 어떠한 당위성으로 '혁명'의 이념을 설파할 수 있느냐이다.
결국 이렇게 밖에 물을 수밖에 없다. 영화 [화이트 히트]에서의 제임스 캐그니가 떠오르는 록조의 얼굴이나 [체 게바라]에서 따온 세르지오의 소비, [라스트 모히칸]의 에릭 슈에이그 등 수많은 배우의 레퍼런스를 따온 PTA의 신작에서 중요한 것은 혁명일까? 아이폰일까?
아이폰이라는 온라인 세상을 붙잡은 밥 퍼거슨과 달리 현실의 세계로 넘어간 '윌라'라고 받아들인다면야 할 말은 없다만, 영화 스스로가 우리에게 현실이라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는 주었는지, 혹시 파편적인 이미지들로서 우리에게 '현실'을 네가 지나치지 않았냐고 트릭을 주는지 생각을 해봐야 할 순간이다.
1. 홍콩에서 건너와 '의협'을 가족주의로 바꾸었던 페이스오프의 오우삼이 생각났다.
2. 마지막 장면은 '야만적 침략'의 PTA 버전이랄까..
3. 로버트 알트만인 줄 알았더니 큐브릭이 되셨던..
4.퍼피디아가 쿠바와 알제리에서 발견되었다는 설정은 너무하지 않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