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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수와 가짜손톱

가치는 내가 알아봐 주는 것이다.

by MamaZ

손톱이 조금이라도 길어지면 내 일상의 리듬에 다른 감각을 느끼게 하는데 그 불편함이 싫어서 바짝 자른다.

예를 들면 손톱이 길면 키보드를 칠 때 터치의 느낌이 별로다. 어쩌다 음식이라도 할 때면 칼을 잡아 야채를 썰어야 하는데 그때마다 길어진 손톱이 내 살을 짓누르는 느낌이 싫다. 게다가 피부가 간지럽기라도 하면 긴 손톱으로 긁는 것보다 짧은 손톱으로 긁어야 시원하다. 그래서 나는 손톱이 조금이라도 자라면 짧게 잘라버린다.


인간의 몸은 어느 정도 성장기를 지나가면 더 이상 성장하지 않지만 손톱과 발톱과 머리카락은 죽을 때까지 자란다. (종종 사람의 치아가 손톱처럼 발톱처럼 자라난다면 동네 곳곳에 있는 네일숍에서 치아도 다듬어주지 않았을까라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본다.) 흥미롭게도 손톱과 발톱과 머리카락은 사람의 몸에 붙어 있을 때는 몸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지만 떨어져 나오면 바로 더럽고 지저분한 것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몸에 붙어 있는 한 실용적인 역할뿐만 아니라 치장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얼마 전 매우 흥미로운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카다시안 자매 중 클로이는 그녀가 혹시라도 콤마 상태로 더 이상 깨어날 수 없는 상황에 닥치게 된다면, 일주일에 한 번씩 네일 아티스트가 찾아와 그녀의 손톱을 치장하게끔 하는 유언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유는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그녀를 봐주러 올 것이기 때문이라 했다. 개인적으로 좀 섬뜩할 것 같긴 하지만 콤마 상태에서도 관심을 받아야 하는 카다시안 다운 방법이라 생각했다.





Soul+Searcher+LR.jpg Frances Goodman, Soul Searcher

전통적인 예술 재료가 아닌 일상에서 쓰이는 물건들이 종종 예술작품으로 만들어지곤 하는데 최근에 매우 흥미로운 작가를 강의 준비 중에 발견했다. 남아프리카 출신의 작가 Frances Goodman은 미디어에서 관능적으로 묘사되는 여성들의 이미지를 직간접적으로 작품으로 만들어 대중 앞에 나섰다. 하지만 일반적인 페인팅이 아닌 십자수라는 기가 막히게 피곤한 노동력과 시간을 요하는 방법으로 말이다.

십자수라는 것 자체가 지니고 있는 이미지는 매우 여성스러운 취미 활동으로 여겨지곤 하지만 작가가 선택한 여성의 이미지는 방황 속에 길을 잃은 한 여자의 누드다. 단정하게 다소곳하게 앉아 십자수를 놓으며 수다를 떨법한 어린 소녀의 이미지가 아닌 어떻게든 살아보겠다는 한 성인의 벌거벗은 몸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90년대 컬러 텔레비전에서나 봤을법한 픽셀이 작품 안에 있다. 작은 네모 하나하나 다른 색으로 칸을 메우고 그 네모는 다 합쳐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선명하지 않고 부정확하며 경계도 모호한 십자수의 기능은 이 작품을 좀 더 오래 바라보게 한다.

영혼을 찾아 헤매고 있는 여자는 과연 찾았을까? 찾았다면 어디에서 누구에 의해서였을까?


Frances+Goodman-I+Want+More-2022-Foam,+wire,+fiberglass,+acrylic+nails,+silicone-128+x+54+x+25cm-2.jpg Frances Goodman, I want more




Thakatha-Frances+Goodman20220311_0051.jpg Frances Goodman, No Regrets

작가는 또한 가짜 손톱으로도 매우 흥미로운 작품을 만들었는데 가까이 자세히 보지 않는 이상 작품이 가짜 손톱으로 만들어졌는지 알 수가 없을 만큼 촘촘한 craftsmanship을 보여준다. 화려하다 못해 눈이 부 쉴 것 같은 손톱을 모아 더 원한다고 외치고 후회는 없다고 말하지만 왠지 모를 공허함이 느껴진다. 왜 그럴까?

그것은 아마도 어차피 한 번 쓰이고 버려질 일회성 재료 때문일 것이다. 잠시 잠깐 빛나지만 어차피 쓰레기통에 버려질 일회성 손톱에서 얻을 수 있는 가치 역시도 일회성이다.


집에서 아이의 손톱도 발라주고 내 손톱도 종종 꾸민다. 짧은 손톱이지만 색이라도 좀 칠해주면 좀 더 예뻐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면 네일 페인트는 벗겨지고 원래 내 손톱의 민낯이 드러난다. 화려한 컬러뒤에 숨어있던 내 진짜 손톱은 매일 엄마로서 아내로서 선생으로서 직장인으로서 기능을 하게 해 준다.

_W5A3831.jpg Frances Goodman, Still Searching


여자라서 이해할 수 있는 작품들이 있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선명하진 않아도 여자이기 때문에 고민하게 되고 생각하게 되는 것들을 작품으로 만들어내고 관객들에게 묻는다. Frances Goodman는 가짜손톱이라는 재료를 통해 좀 더 깊고 심오한 것들을 향해 가려 매번 고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일회용 가짜 네일 뒤에 숨은 정말 가치 있는 것들을 알아봐 주는 것.


그것은 여자 남자를 떠나서 모든 인간이라면 꼭 해야 하는 일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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