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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give a shit

Piero Menzoni을 똥캔으로만 기억하기엔 너무 아깝다.

by MamaZ

아이들은 유난히 똥 얘기를 좋아한다.

어린아이들 앞에서 똥이라는 말 한마디는 거의 마술같이 아이들을 웃게 만든다. 똥이 뭐라고.... 평생 매일 똥 싸는 일에 시간을 보내는 인간에게 똥은 체내에서 꼭 배출해야 하는 덩어리다. 이 중요한 덩어리가 아이들에게는 큰 웃음을 주는 단어지만 영어로는 상대방에게 모멸감을 주는 욕이나 분노 표출로 쓰인다.


그중 흔히 쓰이는 표현 중에 I don't give a shit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대충 "상관하지 않는다" 혹은 "신경 쓰지 않는다"라는 표현으로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무언가를 결정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남들의 눈치와 참견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겠다는 표현이다. 물론 욕이 뭐 다 거기서 거기 상대를 향한 분노표출이지만 이 표현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자신에게 말하는 결심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누가 뭐라던 난 내 길을 가련다 식의 결심이라고 해야 하나?


Piero Menzoni의 작품을 향해 그의 아버지는 너의 작품은 쓸모없는 배설물 같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한다. 예술이라면 적어도 베레모 쓰고 붓을 붙잡고 유화로 멋진 풍경화라도 그려야 좀 그럴싸한 평가라도 받을 텐데 아들이란 놈이 예술을 한다고는 하는데 도대체 말도 안 되는 재료를 마구잡이로 붙여다가 작품이라고 하니 아버지 눈에는 기가 막혔을지도 모른다.


Piero Menzoni, Achrome Synthetic Fiber 1961

그도 그럴 것이 Piero Menzoni는 반예술 집단 즉 아방가르드 그룹에 속한 작가로서 이제까지 예술이라고 여겨졌던 모든 것을 거부하며 전통적 예술기반을 파괴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지금은 섬유로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은 매우 흔하며 심지어 핫하다고 여겨지지만 사실 섬유가 작품의 주 재료로 쓰이며 작품으로 받아들여진 역사는 고작 50년 정도밖에 안 된다. 당시 공예라고 여겼던 재료를 뭉텅이로 가져다가 작품이라고 만들었으니 아버지 눈에는 이 쉐끼가 뭐 하나 싶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무슨 양털 깎아다가 뭉쳐 놓은 것 같기도 하고... 이게 뭐니? 싶은.... 왜 그럴 때 있지 않은가? 부모라면 한 번씩 드는 그런 생각 말이다. 내 새끼를 바라보며 한숨을 크게 내쉬며 이 쉐끼가 커서 뭐가 되려고 하나 싶은 그런 생각 말이다. 작가의 아버지도 그랬던 것 같다. 자신이 생각하는 예술과 아들놈이 하는 예술의 갭이 너무 컸으니 말이다.


Piero Menzoni, Achrome, Cotton Wool Pads

아버지의 눈에는 쓰레기처럼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사실 그의 작품은 한없이 섬세하다. 작가는 반예술 장르라 할지라도 함부로 막 만들어 작품이라고 내놓지 않았다. (물론 그 문제의 똥은 좀 다르지만 말이다. 그건 이 글의 마지막에서 다룰 예정이다.) 당시 반예술 작품들은 정성과 디테일 혹은 테크닉을 이용해 만드는 작품보다 예상을 뛰어넘어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에 탐닉하고 있었다.


이상하면 이상할수록 묘하면 묘할 수 록 좋은 작품으로 칭송될 수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Piero Menzoni의 작품에는 나름의 정성과 섬세함이 깃들여져 있다. 두부처럼 보이는 면 솜을 차곡차곡 담았는데 햐얀색 정사각형이 타일처럼 붙어있어서 질서과 규칙을 만들어낸다. 물론 그것이 자로 잰듯한 모습이 아니기에 인간미마저 느껴질 지경이다. 때로 그는 Kaolin이라는 하얀 점토를 가지고 캔버스에 인위적으로 너무나 자연스러운 주름을 만들었다. 꼿꼿이 펴있어야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바탕이 될 수 있는데 작가는 자글자글한 주름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주름 하나하나가 작품의 주인공이 된다.

Piero Menzoni, Achrome, Kaolin on Canvas

마치 침대 위 하얀 매트리스 커버에 누군가가 앉았던 것 마냥 혹은 사랑을 나눈 것 같은 자국들이 캔버스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이것은 작가의 감성이 담겨있으며 동시에 캔버스를 해방시켰다. 그림을 담기 위해 쫙쫙 펴서 편평하다 못해 탱탱한 소리를 내야 했던 그 표면을 주름 가득하게 만들었으니까 말이다. 완벽하지 않아서 매력이 쪄는 표면이 되었다.


사실 Piero Menzoni의 명성과 이름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은 Artist's shit이라는 문제적 작품 때문이다.


작가는 자신의 똥을 90개의 캔에 30그램씩 담아 당시 금값으로 팔았으니 약 30불 정도에 팔았다는 얘기고 90개였으니 2700불의 수익을 똥캔으로 낸 거다. 아버지가 너의 작품은 배설물이야!라고 말했는데 그 배설물이 금값에 팔렸단 거다. 이 작품은 너무나 충격적인 데다가 괴상하기까지 해서 Piero Menzoni를 똥이나 캔에 담아 판 미친 작가로만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무엇이 예술이고 아닌가에 대한 경계선이 막 무너지고 있던 당시 자신의 똥도 예술로 포장을 하면 금값으로 팔려나갈 수 있을지 않을까?라는 아이디어는 그를 괴짜 작가로 만들어 버렸지만, 개인적으로 그는 똥이나 판 미친놈으로 불리기엔 너무 아깝다. 그의 Achrome 시리즈 작품성은 그를 마치 섬세한 감성의 고조할아버지 섬유작가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만큼 훌륭하기 때문이다.

Piero Menzoni, Artist's shit

예술한답시고 아무 쓸모도 없는 작품을 만들고 있다고 여겼던 아버지는 당신 아들이 사망한 지 60년이 지난 지금도 현대 미술사에서 꼭 한 번씩 짚고 지나가는 작가로서 이름과 똥을 날리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무덤에서 땅을 치며 후회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아드님 똥이 최근 캔 하나가 34만 불에 팔렸다는 걸 알면 무덤 밖으로 뛰쳐나왔을게다. 물론 그가 아들에게 미친놈이라고 소릴 지를지 34만 불에 아들 똥을 사드린 예술계에 미친놈이라 할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Piero Menzoni의 작품세계에는 I don't give a shit이라는 태도가 깃들여 있다. 누가 뭐라고 하던 남 눈치 보면서 그들의 입맛에 맞는 작품을 만들지 않았다. 그는 말 그대로 배설물을 예술이란 이름으로 우리에게 던졌다.


예술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지금도 많은 작가들을 통해 고민하게 된다.


이 작품을 내 예술의 반경 어디쯤에 넣어야 될까 싶은 작품들을 만날 때마다 예술의 지경이 넓혀지거나 깊어지거나 선명해지거나 흐릿해진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생각하고 느끼고 믿고 바라보는 것들에 대한 확신이다. Piero Menzoni는 그런 확신이 있었다.


그건 정말 자유하는 과정을 거친 이들만 누릴 수 있는 확신이다. 주변과 가족과 사회에서 자유하는 그런 과정 말이다.

그것이 늘 바람직한 건 아니지만, 일률적으로 모든 것이 남들 만큼이어야 성공하는 사회에서는 꼭 필요한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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