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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깟 귤 한 개

조금 더 자주 매일 관대하게 따듯하게 친절하리라

by MamaZ

여행이 좋은 건 돌아갈 집이 있어서라고 그랬다. 하루의 모든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곳, 화장을 지우고 무릎과 목이 늘어난 운동복을 입고 드러누워 전화기를 만지작 거리고 넷플릭스 드라마를 온종일 보면서 뒹굴거릴 수 있는 나만의 공간. 온전히 내가 될 수 있는 장소이기에 집은 최고다. 그 어디도 내 집보다 더 편한 곳은 찾을 수 없다.


어쩌면 사람들은 집으로 "잘" 돌아가기 위해 여행을 하는지도 모른다.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충전을 해주는 게 여행이기 때문이다. 결국 집에 잘 들어가 잘 지내기 위해서 선택하는 비타민이 여행이라 생각하면 떠날 수 있는 기회는 매우 특별하게 다가온다. 어디로 언제 떠나서 무엇을 하다가 올까? 생각만 해도 이미 내 마음은 파리에 있고 런던에 있고 서울에 있다가 로마로 옮겨 다닌다. 매일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여행은 상상만으로도 기쁨을 차오르게 한다.


삶의 비타민 같은 여행을 계획하며 설레는 나는 요즘 살기 위해 집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을 자주 마주친다. 음악회를 보러 다운타운에 갔던 날 더러운 바닥에서, 출퇴근하는 그 길에서, 교회 가는 길에, 장을 보는 마켓 앞에서 나는 자꾸만 그들을 본다. 남미에서 걸어 걸어 이 땅까지 온 난민들이다.


돌도 되지 않은 아이에게 젖을 물리며 더러운 바닥에 앉아 구걸을 하던 엄마는 나보다 10살은 어려 보였다. 한창 장난감 가지고 놀아야 할 아이는 엄마를 따라 다운타운 바닥에 주저앉아 오늘 하루 먹을 만나를 기다리듯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출퇴근길 꽃 한 송이만 사달라고 구걸하는 이도 난민이고 교회 가는 길에 온 가족이 길가에 앉아 도와 달라는 종이를 흔드는 이도 난민이다. 나는 그런 난민 가족을 길가에서 마켓에서 땅바닥에서 매일 보고 있다.


저들을 도대체 얼마나 걸었을까?

저들은 도대체 앞으로 더 얼마나 걸어야 할까?

저들은 도대체 언제 그들의 집을 구할 수 있을까?


3190.jpg Ai Weiwei, Law of the Journey

Ai Weiwei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난민 수용소/캠프를 방문했고 분노했다. 인간이라면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존엄성은 생명을 지키고 먹고사는 일에 밀려 내동댕이 쳐졌다. 노예 시대도 아닌데 아직도 수많은 난민들이 배에 실려 오다가 죽고 트럭에 실려오다가 죽고 굶어 죽고 맞아 죽고 물에 빠져 죽고 있다. 정말 살려고 집을 떠났는데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죽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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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누구도 먼저 난민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 것은 첫째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며, 둘째 꼭 해결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불행을 그 누구가 책임질 수 있을 것인가? 다른 나라와 국민이 힘을 합하여 자기 세금 써가며 그들을 품을 수 있는 나라가 지구상에 존재할까? 좌우 보수 진보 모두 그들의 정치적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고 선거에 해를 끼칠만한 난민의 문제는 절대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엉킨 실타래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은 분명 인간의 위기인데 난민은 늘 정치로만 연결된다. 그래서 Ai Weiwei는 이렇게 말했다.

"There's no refugee crisis, but only human crisis. In dealing with refugees we've lost our very basic values 난민 위기는 없고 인간의 위기만 있을 뿐입니다. 난민을 대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를 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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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만든 난민 보트는 흡사 Théodore Géricault의 The Raft of the Medusa와도 JMW Turner의 Slaveship과 비슷한 느낌을 자아낸다. 다만, Ai Weiwei의 작품은 컬러가 없고 격한 파도와 드라마가 없다. 그의 작품에는 그 어떤 표정도 감정도 없이 그저 기다림만 존재한다.

JEAN_LOUIS_THÉODORE_GÉRICAULT_-_La_Balsa_de_la_Medusa_(Museo_del_Louvre,_1818-19).jpg Théodore Géricault, The Raft of the Medusa

아주 멀리서 보이는 작은 배에 팔을 흔들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이들 뒤로 더 이상 희망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죽음을 기다리는 이들은 서로 등을 돌리고 있다. 하지만, Ai Weiwei의 작품 속 사람들은 숨을 죽인 체 마주 보며 기다린다. 누군가가 그들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받아주길.... 구원해 주길 간절히 바라지만 살려달라고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말도 못 한 체 숨죽인 체 기다리고만 있다.


퇴근하는 길 3살은 돼 보이는 아이를 등에 업고 종이를 들고 구걸을 하는 엄마를 봤다. 어제도 봤던 그녀다. 어제 아이는 등에 잠이 들어 있었는데 오늘은 깨어있다. 아이가 혹시라도 찻길에 뛰어들까 업고 있는 것 같다. 그녀는 몇 시간이나 차들이 쌩쌩 다니는 찻길에서 아이를 업고 있었을까? 창문을 열어 동전을 던지는 이가 보였다. 아이를 업고 동전을 줍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나도 가방을 뒤적인다. 지폐 한 장이 나왔고 점심 간식으로 쌌던 귤이 하나 잡힌다. 창문을 열어 그녀에게 내밀자 그녀는 고맙다는 말을 하더니 급하게 서툰 영어로 쓴 도와달라는 종이를 내리고 아이에게 귤을 건넨다. 그깟 귤 하나를 받자마자 서둘러 아이를 챙기는 그 모습에 울컥해 그렁그렁 눈물이 났다.


그깟 귤 내가 퇴근하는 날 더 몇 개 챙기리라.


나는 힘이 없는 사람이다.

돈도 없고 명예도 없고 그냥 먹고살려고 발버둥 치며 매일 인간답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 난민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그런데, 글은 쓸 수 있고 귤 몇 개를 사서 나눠줄 돈은 번다.


그게 딱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조금 더 자주 매일 관대하게 따듯하게 친절하리라.

그리고 그것에 대해 글을 쓰리라.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이다.

It is better than doing no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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