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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말고 잠잠하게 흐르라

보석처럼 지켜야 할 것은 나의 평안이다.

by MamaZ

내향적 성격인데 하필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일을 하고 있다. 나는 매우 사회적인 동물로서 그 일을 잘 해내고 있지만, 진이 빠진다는 느낌이 매일 든다. 말을 많이 쏟아내거나 사람들을 많이 상대한 날이면 나는 방에서 혼자 조용히 시간을 보내야 에너지 충전이 된다. 그런 나보다 더 내향적인 남편 역시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는 직업이다 보니 우리 하루의 끝마무리는 자기만의 동굴에 처박혀 이뤄진다.


그런 내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순간은 모르는 사람과 인사를 나누는 것이다. 물론 사회성을 발휘하여 웃음과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나누지만 내면은 어색함과 쑥스러움으로 가득하다. 특히 교회에서 목사님이 앞뒤옆 사람과 인사를 하라고 하면 돌아버리겠다. 아는 사람들과도 나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겨우 할 수 있는 일을 모르는 사람과 반갑게 웃으면서 하려니 도망가고 싶은 마음만 가득하다. 그래서 나는 종종 그 시간을 피하기 위해 화장실을 다녀온다. 아주 자연스럽게 인사하는 게 싫어서 나가는 모양새가 테나지 않게 말이다. 그리고 나의 연기는 얼마나 뛰어난지 사람들은 눈치를 채지 못한다. (적어도 내가 생각할 땐 그렇다)


혼자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내 하루 중 가장 소중하며 중요한 순간이다. 그 시간은 고요함과 평화가 깃들어 있다. 하지만 삶이란 녀석은 그 시간을 오롯이 내가 즐기며 보낼 수 있도록 허락해주지 않는다. 때로 외적인 요소들이 나를 깨부수고 슬금슬금 기어 들어오는 불안이 날 조각낸다. 그래서 혼자 보내는 시간은 나의 뿌리를 더 깊은 곳으로 늘어뜨려 쉽게 흔들리지 않는 기반을 만드는데 쓰여야 한다.



width-840_thphTVf.jpg Vija Celmins, Ocean

처음 Vija Celmins의 작품을 봤을 때 사진인 줄 알았다. 바다의 물 흐름을 매우 정밀하게 묘사한 작가의 그림에는 명상적인 요소가 깃들어 있다. 물결은 한 방향으로 흐르고 그 어떤 물결도 똑같지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잔잔하게 흐르는 물은 생명력이 있어 보인다. 쉬지 않고 끊임없이 물결을 만들어 내는 건 물도 바람도 단 한순간도 쉴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들이 생명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같은 물이라도 컵 안에 담겨 있다면 그 어떤 흐름도 만들어 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바다의 생명력과 거대함은 작은 물컵 안에 담길 수 없고 담겨서도 안된다.


작가는 이 작품을 만들면서 물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고 그린 듯하다. 자신을 맡기지 않았다면 저 잔잔함은 기교와 교만함을 뒤섞은 체 더 강렬하고 걷잡을 수 없는 모습으로 그려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멈추지 않는 물의 고요함을 그려 넣음으로써 작가 자신도 위로하지 않았을까? 그녀의 작품은 내게 매우 종교적이며 영적인 메시지를 건네준다.


어느 상황에서도 멈추지 말고 흐르되 잠잠하게 고요하게 흘러라.



가치 있고 소중한 것에 시간과 에너지와 돈을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지혜로운 일인지를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남들의 눈과 기대에 부흥하는 것이 가치라고 느끼면 행복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이후 나는 철저히 나의 평안을 지키려 살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내 마음의 평정심은 언제나 한계가 있는데 그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는 나 자신 말고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내 평안을 깨뜨리는 순간은 무엇인가?

어떤 단어인가?

어떤 태도인가?

어떤 불안함인가?

어떤 의심인가?


이 질문에 나 말고 누가 대답할 수 있을까?

부모도 배우자도 자식도 친구도 답할 수 없는 영역인데 많은 사람들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지 않고 욱하고 속상하고 섭섭한 감정에만 집중한다. 삶의 깊은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내 삶의 기초가 되는 것들을 파악하고 그것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나를 견고하게 하는 일이다. 그렇게 할 수 있을 때 이 작품이 내게 말하는 것에 동의하게 된다. 멈추지 않고 흐르고 잠잠할 수 있게 한다.


자기만의 철학과 생각으로 흔들림 없이 규칙적으로 자신의 평안과 평화와 행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내뿜는 매력이 있다. 그들에게는 안정감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 누구도 모를 것이다.

그런 단단함을 지니기 위해 그들이 겪어야 했던 모진 파도와 폭풍에서 수십 번 흔들리고 꺾이고 넘어지고 내동댕이 쳐진 후에 겨우 찾아온 안정감이라는 걸 말이다. 단단한 땅에 뿌리를 깊이 내리려면 고통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멈추지 않고 흐르고 잠잠하게 고요하게 나의 내면을 이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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