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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Z Oct 08. 2022

전투적인 아줌마의 기록

먹고사는 일은 전쟁이다.

바쁘다. 정말 바쁘다는 표현 말고 나의 하루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향적인 성격과는 매우 맞지 않는 일을 하다 보니 집에 오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충전을 해야 한다.  충전의 시간이란 내게 기록의 시간이었고 글을 쓴다는 것은 나의 하루를 돌아보고 내 생각을 돌아보는 일이었다.  하지만, 난 너무 바쁘기에 기록의 시간은 갖기 위해선 잠을 쪼개야 겨우 할 수 있는 일이 되어버렸다. 잠을 쪼개니 하루 종일 피곤하고 하루 종일 피곤하면 기록의 시간에 무얼 써야 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것은 매일 반복이 된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가 무슨 생각으로 어떤 태도로 살아가는지 정리해 주는 일이었는데 바쁨은 그 정리를 흩어놓고 다시 주어 담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 바쁜 일상이란 온전히 내가 나일 수 있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고 오직 내가 맡은 일과 책임에 나 자신을 깊이 묻어 버리는 일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과 쉬고 싶다는 마음이 스쳐간다. 하지만, 글이 쓰고 싶다고 써지는 게 아니고 쉬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쉬어지지 않는다. 쉬고 싶다는 생각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슬며시 자리를 내주곤 했지만 의미 없는 글을 끄적이고 싶진 않았기에 지웠다 썼다는 반복 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의 반복 훈련으로 다져지는데, 바쁘면 생각이란 게 사라진다. 바쁨은 생각이 깊고 넓게 퍼져나가는 일을 방해한다. 그게 싫었다.

나는 분명 타당한 이유가 있는 바쁜 일상을 지내고 있다.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고 강의를 하고 엄마와 자식과 아내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가족을 돌보고 살림을 하지만, 그 타당한 이유가 나를 갉아먹고 있다면 나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고 나는 이 바쁨을 깊이 묵상한다.

나의 바쁜 일상에서 온전히 나일 수 있는 공간에 나를 파묻고 내 바쁨을 이해하려 한다. "왜 나는 단 하루도 쉴 수 없는 것인가?"


 사진작가 Henri Cartier Bresson 은 사진은 완벽한 순간을 잡기 위해 끊임없이 주변을 관찰하고 돌아본 작가이다.  그가 남긴 완벽하고 아름답고 드라마틱하며 이야기가 담긴 사진 속에는 자연스러운 일상이 담겨있다.

개인적으로 Market in the Rue Longue, Marseille이라는 작품을 좋아한다. 생선을 팔아야 먹고살 수 있는 여인과 소비를 해야 먹을 수 있는 손님의 모습이 찍혀있다.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며 생선을 팔아 왔을 여인네의 표정에는 피곤함이 배어있고 퇴근하는 길 저녁에 먹을 생선을 구입하는 남자의 모습에도 녹녹한 피곤함이 보인다.  서로를 향한 친절한 말투와 태도보다는 인생의 최전선에서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두 사람의 전투적인 교류가 저 손에서 펼쳐진다.  주고받음으로써 서로에게 윈윈 하는 이 상황을 잡아낸 작가는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손에서는 어떤 전투적인 일상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먹고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수많은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로 목숨을 버리고 목숨을 살린다. 부모는 자식들에게 전투적으로 공부를 하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라 하고 회사는 직장인들에게 전투적으로 만들고 팔아 이윤을 남기라고 한다. 덜 먹고 덜 쉬고 덜 자고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벌라고 하는 일상에서 삶은 매일 전쟁이다.


그 전쟁통에서도 작가는 여유를 잃지 않고 사진을 찍는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진을 찍어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가 될 거야라고 마음을 먹었다면, 그는 절대 이런 사진을 찍지 못했을 것이다.  여유가 없는 시선으로 어떻게 이런 순간을 포착하겠는가. 어쩌면 그건 예술이 지닌 기능이기도 하다. 예술은 늘 여유를 지니고 있다.  그 여유는 삶을 돌아보게 하고 주변을 돌아보게 하고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게 하고 별거 아닌 것에 특별함을 발견하게 하니까 말이다.


Henry Cartier Bresson이 살아서 내 일상을 찍는다면, 그는 나의 어떤 모습을 찍을까라는 재밌는 상상을 해본다.  


그는 아마도 지금 졸린 눈으로 글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을 찍을지도 모른다.

전투적인 일상에서 조금이라도 나를 기록하기 위해 내 생각과 태도를 탐색하기 위해 흰머리 날리며 노안과 안구건조증으로 충혈되고 피곤한 눈을 반쯤 감은체 어떻게든 기록을 남기겠다는 짠한 아줌마의 모습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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