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졸지 마!
무더운 여름이다. 내가 사는 곳은 여름에도 많이 덥지 않은 지역이지만 올해만큼은 다르다. 올해는 푹푹 찌는 여름이 너무 일찍 찾아왔다. 게다가 221년 만에 2종류의 매미가 겹쳐 태어난다는 기가 막힌 시기도 겹쳤다. 내 평생 그렇게 많은 매미를 본 적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무 데서나 수시로 매미를 볼 수 있다. 바닥에서 뒹구는 매미가 있는가 하면 시뻘건 눈으로 날아다니는 매미가 보인다. 운전 중에도 파리처럼 주변을 맴도는 수백 마리의 매미를 볼 수 있다.
이런 날 아이는 수영장을 찾는다. 친구들과 함께 수영장에 가기도 하지만 때로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우연히 동네 지인을 만나서 기분 좋게 어울리며 수영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내 아이는 일주일에 8일을 야외에서 수영을 즐기고 있다. 그리고 그만큼 새까맣게 탔다. 도저히 한국인의 피부색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아이는 탔고 수영복 자국은 눈이 부 쉴 정도로 희다.
아이는 수영을 매우 잘한다. 이젠 선수반에 들어가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로 잘한다. 언젠가부터 아이가 나보다 잘하는 무언가가 생길 때마다 나의 마음이 뿌듯함으로 가득 채워지는 경험을 한다. 내 아이가 수영을 나보다 훨씬 잘한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얼마나 기뻐했는가! 아이에게 제발 엄마에게 한 수 가리켜달라고 하면 아이는 정말 내 팔의 각도와 발차기를 지적하며 어떻게 하면 더 빨리 잘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곤 했다.
짜식~ 너 좀 멋지다!
그런 아이가 어제는 정말 높은 다이빙 보드에 올랐다. 어림잡아 6-7미터는 될 것 같은 다이빙보드에 올라서더니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피융 하고 뛰어내린다. 나와 남편은 그런 녀석을 보며 기가 막혔다. 나도 남편도 높은 곳에 오르는 걸 너무 싫어하기 때문이다. 아니 공포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새끼는 전혀 망설이지도 않고 폴짝 뛰어내린다. 마치 시소에서 뛰어내리듯... 그렇게 폴짝 말이다.
넌 도대체 누굴 닮은 거냐?
남편이 물었다.
Aren't you afraid to go up there? (너 거기 올라가는 거 무섭지 않아?)
No, not really. If I remind myself that I'm not going to break into 25 million pieces, I don't get scared. (아니 별로... 그냥 내가 250만 조각으로 박살 나지 않을 거라는 걸 상기시키면 괜찮아)
아이의 쏘쿨한 이 대답은 하루종일 내 귀에 맴돌았다.
내 두발은 지금 땅을 딛고 있고 내가 점프하면 깊은 물이 날 받아 줄 것이니까 난 괜찮을 것이다.
아이의 말이 백번 천 번 옳았다. 무섭고 두려운 상황에서도 나 스스로가 산산조각이 나서 박살 나지 않을걸 알기에 괜찮다는 믿음이 아이를 다이빙보드에서 뛰어내릴 용기를 준 것 같았다.
다 괜찮을 거야...
나는 이런 종류의 위로를 매우 싫어한다. 사실 가끔을 쏘아붙이고 싶기도 하다.
뭐가 괜찮아! 네가 뭘 안다고!
하지만 나도 안다. 이 또한 지나갈 것이고 괜찮을 거라는 사실 말이다. 부서질 것 같아서 간신히 붙들어 매고 이 터널을 지났지만 결국 어려움은 우리를 파괴하지 못하고 더욱 단단하고 깊은 뿌리와 마디를 만들어 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우리는 더 용감하고 멋진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기 때문에 괜찮은 것이다.
250만 조각으로 박살 난 영혼이 아니라 250만 조각의 좋은 생각과 좋은 경험과 멋진 용기와 좋은 인연이 날 더 멋진 사람으로 만들어 낼 것이니 뭐가 겁나는가! 세상아 와라! 덤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