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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Z Jun 16. 2024

불안은 당연한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 내는 게 삶이다. 

남편은 매일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어딘가가 아픈 사람들이다. 

이제 고작 40대인데 말기암인 환자도 있고, 2달 전까지는 멀쩡히 운전도 하던 할아버지였지만 넘어진 이후 갑자기 쇠약해지며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진 이도 있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거동이 불편하기에 침대에 누워있거나 휠체어에서 남편을 맞는다. 어떤 이들은 소통이 가능하기도 하지만 아닌 사람들도 있다. 남편은 휠체어를 밀어주기도 하고 노래를 불러주기도 한다. 아무런 거동을 못하고 누워있는 환자들에게는 성경 말씀을 읽어주기도 하고 음악을 틀어주며 그들의 손을 잡아주기도 한다. 


그들을 만난 다음에는 환자의 보호자로 정해진 이들과 통화를 한다.  환자의 배우자 혹은 자녀가 대부분의 보호자로 정해져 있지만 때로는 환자의 형제나 자매 손녀 손자들이 보호자로 정해져 있기도 하다. 남편은 그들과의 통화에서 오늘 환자의 몸상태는 어땠는지 기분은 어땠는지를 나눈다.  흔치는 않지만 때로 환자들은 남편과 눈을 맞추기도 하고, 노래를 함께 흥얼거리기도 하고 주기도문을 함께 외우기도 하면 그때의 순간을 고스란히 가족들에게 들려준다. 그럴 때면 그들은 환자와의 추억을 나누곤 한다. 


정말 좋은 엄마였어요! 

우리 할아버지처럼 유머가 넘치는 사람도 없죠! 


작년 겨울 남편은 매우 정신이 맑지만 몸은 그렇지 못한 할머니를 만난 적 있다.  그녀는 화분 가꾸는 일을 너무 사랑했기에 남편에게 12월에 잘 어울리는 식물이 무엇인지 어떻게 관리해줘야 하는지 자세한 팁을 알려줬다. 그날 저녁 퇴근하는 길에 남편은 화원에 들려 게발선인장이라는 묘한 이름의 화분을 사 왔다.  실내 화분을 키워본 적 없는 남편이 그 할머니 환자와의 만남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게발선인장은 12월에 꽃이 펴서 크리스마스 선인장이라고도 불린다고 했다. 선인장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가시가 없고 물을 많이 필요로 하는 특이한 녀석이었다. 그리고 물을 주는 날에는 매우 상쾌한 향을 방에 가득 채웠다.


그녀의 가족은 화분뿐만 아니라 가족도 알뜰살뜰 따듯한 마음 와 정성으로 보살핀 사람이라 기억했다.  그녀는 이제 누군가의 보살핌 없이는 살 수 없는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왔지만 마음만큼은 여전히 누군가를 사랑하고 걱정하고 보살피고 있었다. 


때로 남편은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한다. 한참 운전해서 도착한 병원에서 환자는 갑자기 보고 싶지 않다고 하기도 하고 종교적인 만남은 사양하겠다고 한다. 며칠 전 그는 한 시간 15분을 운전해서 도착한 병원에서 갑자기 마음이 바뀐 환자를 마주했다. 남편은 도저히 그냥 가기에는 짜증이 나서 그의 방에 들어가 아무 말하지 않고 기타를 연주해 주겠다고 했다. 비록 뮤지션만큼의 기타 실력은 아니라 할지라도 충분히 기타 연주를 잘하는 남편이 치는 기타를 조용히 듣고 있든 그는 이내 마음을 열었고 다음에 또 와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한다. 남편의 기타 연주가 딱딱한 그의 마음을 녹인 건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만남을 한 지 30-40분 만에 돌아가시는 경우도 있고 몇 달에 걸쳐 지속적인 만남을 가지기도 하지만 남편이 만나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3개월 안에 죽음을 맞이한다. 처음에는 많이 힘들고 눈물도 많이 났지만 이제는 죽음이란 인간이 절대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걸 받아들이고 삶 앞에 겸손함을 배우게 된다. 




반면 나는 남편과 아주 다른 종류의 학생들을 학교에서 만난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대학에 갓 입학한 새내기들이다. 이제 막 십 대를 벗어나 20대에 접어든 학생들은 앞으로 무슨 삶이 벌어질지 알 수 없어서 불안한 이들이다. 


학점은 잘 받을 수 있을까? 

졸업하면 뭐 하지?

직장을 어떻게 잡지? 

사회생활에서 인간관계는 어떻게 하지? 

뭘 입어야 멋져 보이지?

뭘 먹어야 살이 덜 찌지?

이성친구는 어떻게 사귀어야 하지?

어떻게 하면 예쁘고 멋있게 보일 수 있지? 

옷을 어떻게 입고 어떤 브랜드의 메이크업을 하면 될까? 


모든 것이 처음인 그들은 최선의 답을 얻고 싶어 하고 그들은 틱톡이나 유튜브로 답을 얻으려는 세대다. 

우리 동네 영희 혹은 엄마 친구 딸 순희도 내 인생과 자꾸만 비교되는 판에 이제는  다른 나라 유튜버 셀리랑 넨시랑도 내 삶의 비교대상이 되는 세상에 사는 게 내 학생들이다. 이들에게 인생은 불확신의 연속이고 비교의 대향연이다. 


삶은 늘 불공평하고 나는 부족하다고 느낀다. 부족하다고 여기자 의심이 쌓인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난 저들만큼 스펙이 없는걸?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게 쪽팔리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쟤는 원래 금수저 물고 나왔는데 나는 아니잖아? 


의심이 쌓이자 자기 확신도 없어진다. 

그래서 내 인생의 적은 나 자신이라 여긴다. 

무언가에 도전하고 싶어도 부족한 자기 확신과 자신감이 날 가로막는다고 생각하며 그것밖에 안 되는 자신을 향해 너무 자연스럽게 자기혐오를 한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매섭게 채찍질을 한다. 왜 이것밖에 못하냐며....


난 나 자신이 너무 싫어!

종종 학생들은 내가 물어보는 에세이에 이런 말을 쓰곤 한다. 

그런 글을 읽을 때마다 나는 어린 시절 방황하고 불안에 떨었던 모습이 그들에게서 보일 때마다 마음이 애리다. 나는 너희들에게 어떤 방법으로 위로할 있을까? 너희들을 위로하기 위해 나는 매번 그림을 고르고 공부를 한다. 조금이라도 불안을 자기혐오를 덜어주고 싶어서 말이다. 




남편과 나는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다. 오늘 하루 있었던 인상 깊었던 일들을 나눈다. 내 학생들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남편이 본 환자들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지금 막 20대를 맞이한 이들도 80대 인생의 끝자락에 있는 이들도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살지 막막하고 어떻게 죽을지 막막한 게 인생이다. 하지만 그 막막한 인생을 어떻게 하면 그나마 잘 견뎌가며 살아갈 수 있을까? 그 누구의 삶도 완벽할 수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완벽하지 않지만 안에서 나를 나답게 만들고 지탱하게 만드는 가치를 내재화시키며 그냥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험난한 인생을 제대로 수가 없겠다 싶다. 불안한 미래지만 그래도 받아들여야 있고 죽음 무엇이 기다릴지 모르지만 그래도 받아들여야 평안하게 눈을 감을 있는 게 인간이다. 


게발선인장에 물을 주는 날이다. 그때 그 할머니는 남편과의 만남 이후 그해를 넘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돌아가셨다. 그녀는 우리의 기억 속에 있고 게발선인장에 있다. 남편에게 게발선인장은 아무리 추운 날에도 꽃을 피우는 식물이 있다는 놀라움과 함께 희망을 주는 식물이었다. 어느 순간에도 희망은 존재한다는 가르침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녀와 남편의 만남은 서로에게 희망을 주고 위로를 주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 


학기가 끝난 후 이멜로 학생 한 명에게서 장문의 이멜을 받았다. 강의가 너무 좋았다는 말과 함께 강의 속에서 치유를 받았기에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녀가 느꼈던 불안에 내 강의와 그림들이 위로가 되었다니 기뻤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지탱하게 만드는 가치에 확신의 거름을 서로에게 주었구나 싶다.  나는 그녀를 위로하고 그녀가 나를 위로했으니까 말이다. 


게발선인장 같은 화분에 물을 주고 꽃이 피어나는 걸 있을 만큼의 여유

지친 맘을 위로할 친구와 가족

매번 나를 의심하지만 다독이며 용기를 내고 한 발을 내딛는 용기

이 세 가지만 품고 살아간다면 삶이라는 거대한 나무는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그 든든함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위로와 확신, 희망과 기쁨이 되어줄 것이다. 인간은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줘야 살만한 인생을 살 수 있다. 왜냐면, 인간이 서로에게 희망이 될 때 세상은 살만한다고 느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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