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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Z Jun 01. 2024

살기 위해 버티고 싸우는 일

피곤하다.

그는 다짜고짜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내게 어떤 보험을 받냐고 묻는다. 내 아버지 나이 때로 보이는 그 어르신은 외출복 아닌 잠옷을 입고 있었고 그 모습은 매우 강렬했다. 한국 사람이라면 자연스레 탑재하고 있다는 체면은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도 긴바지 쟈켓을 입게 만들지 않는가? 하지만 체면의 짙은 냄새는커녕 그 어르신은 전혀 타인의 시선에는 무관심해 보였던 건 그가 잠옷 위에 목욕가운까지 입고 치과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어느 상황에서 봐도 정말 흔한 모습은 아니었기에 강렬했다.


다행히 그가 가진 보험은 내가 일하는 병원에서 받는 보험이었다. 그는 이가 너무 아프다며 당장 의사를 볼 수 있냐고 한다.  아프다는 사람을 어떻게 보내나. 나는 그에게 조금 기다리라고 하고 바쁜 스케줄에 그를 비집어 넣었다. 기다리는 동안 새 환자 등록을 하기 위해 질문지를 줬지만 영어를 모른다는 이유로 그는 작성을 거부했다. 나는 그에게 한국어로 이런저런 질문을 했지만 그는 내게 먹는 약도 지병도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했다. 그 연세에 드시는 약이 없다니 매우 건강하신 분이라 생각하던 차 그의 순서가 되었다.


그의 엑스레이가 화면에 뜨자 한참 선생님은 보고 보고 또 본다. 그리고 다른 선생님께도 보여드린다. 턱 저 밑에 크게 자리 잡은 혹은 아기 주먹만 했다. 선생님이 물었다. 혹시 다른 쪽은 아프신 적 없으신가요?  염증이 나거나 심한 악취가 나거나 하신적 있으신가요?


그는 이미 기다리는데 지쳤고 치통에 지쳐 있는데 선생님은 전혀 아프지도 않은 쪽을 가지고 질문을 하기 시작했기에 기분이 상한 듯해 보였다.


아픈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반세기 담배를 태웠고 치과도 올 일 없을 만큼 건강했다던 그는 최근 암 판정을 받아 항암 중에 치통이 생긴 거라 했다. 내게는 먹는 약도 질병도 없다던 그는 내 질문이 너무 귀찮아서 그 어떤 대답도 하기가 싫었던 것 인지 아님 자신이 암환자라는 걸 밝히기 싫었는지 나도 모른다.


엑스레이 상에서 그의 턱에는 아기 주먹만 한 혹이 자리 잡았고 턱은 이미 종이장처럼 얇아졌다. 구강암으로 보인다. 오랜 세월 암 덩어리가 자라면서 뼈를 야금야금 먹었을 것이다. 턱이 알을 품고 있는 것처럼 턱은 덩어리를 품고 있어 보였다. 뼈 상태는 넘어져도 누군가가 툭 건드리기만 해도 혹은 아픈 이를 뽑다가도 쉽게 으스러질 수 있을 만큼 얇았다. 그러면 그의 얼굴이 무너져 내릴 것이다.  앓던 이를 우리가 뽑을 수 없었던 이유는 절대로 그의 턱을 건드릴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을 얼굴에 품고 있는 그에게 우리는 조심스레 구강수술 전문의를 찾으라 했고 그는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이 뽑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날 거기에 보내냐는 그 환자에게 차마 우린 구강암일 수 도 있다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다만 엑스레이 사진을 보여드리며 조직검사를 먼저 받으셔야 한다는 말만 반복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구강수술 전문의를 찾으라 했고 그를 돌려보냈다.


하지만, 그는 서둘러 내가 소개한 구강외과 병원에 가지 않았다. 내게 찾아와 자신의 엑스레이를 다른 병원에 보내라고 한다. 그런 그가 너무 답답했던 나는 엑스레이 보내셔도 그쪽에서 치료 안 할 테니 그냥 구강외과에 연락하시라고 했지만, 그는 자신의 보험을 받지 않는 그 병원에 가서 큰돈을 어떻게 내겠냐며 싫다고 한다.  그가 연락하라던 병원 역시도 자신들의 병원에서는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 구강외과로 가라고 했다.  병원 두 군데 모두 전문의를 찾으라고 하니 그는 살짝 겁에 질렸다. 어르신은 구강외과에 가려면 자녀가 함께 가서 영어로 통역을 해줘야 하는데 그게 너무 싫다고 하셨다. 애들 귀찮게 하기 싫다고... 하지만, 그에게는 그런 미안함과 눈치를 볼 여유가 없다는 걸 모르는 것 같다.  


이미 암 환자가 또 다른 암을 발견했을 때 느끼는 감정은 어떤 것일까 싶었다. 항암으로 방사선으로 암세포를 줄이고 있는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 너무 거대한 암덩어리가 있어 보인다는 말을 들으면 겨우 붙잡고 있던 희망도 다 놔버릴지도 모르겠다.


딸아이 친구들 엄마들과 앉아서 수다를 떤다.  아이를 키우는 일, 워킹맘의 삶, 올여름휴가를 이야기를 하다가 주변에서 요즘 아픈 사람이 너무 많다는 이야기가 오고 간다.


병원에서 일하면서 사람이 얼마나 불안전한 존재인지를 매번 느낀다. 마동석한테도 뒤지지 않을 만큼의 덩치의 남자도 치통에는 진땀을 뻘뻘 흘리고 고함을 지르기도 하니까 말이다.


삶이 그렇다.

완전해 보이고 완벽해 보이는 순간이 있다고 한들 그건 순간이고 쉬이 사라진다.


그는 결국 구강외과 전문의를 찾았다. 그가 자녀와 갔는지 혼자 갔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그 병원에서 환자가 예약을 했으니 환자와 관련된 정보를 공유해 달라고 했으니 그가 분명 예약을 했을것이다.


그가 앓던 이를 뽑았을지 조직검사를 했을지 혹은 수술 날짜를 잡았을지 모른다. 다만그를 보며, 살기 위해 버티고 싸우는 그 일을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생각이 들자 밀려오는 피로감 같은 게 있다.


살기 위해 버티는데 그 버팀이 정말 힘겨울 때가 있다. 겨우 버틸까 말까 싶은데 더 인내하고 더 희망을 가져야 겨우 살겠구나 싶은 상황이 인생에는 여러번 찾아온다.


그는 잘 버티고 있을지... 궁금해지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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