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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Z May 16. 2024

쪽팔림은 온전히 너의 것이니

잠깐의 창피함이 거짓보다 저렴하다. ​

학교에는 세 가지 유형의 학생들이 있다.

1. 숙제나 과제를 미리 제출하기에 초조할게 한 개도 없는 유형

2. 숙제나 과제를 미룰 때까지 미뤘다가 마지막날 내는 유형

3. 숙제나 과제를 미루다가 내야 하는 날에 못 내는 유형이다.


과제를 못 냈을 경우에도 세 가지 유형의 학생들이 있다.

1. 인생은 성적순이 아니기에 신경 쓰지 않는다 F 받자 유형

2. 며칠만 더 시간을 달라고 애절하게 부탁하는 유형

3. 시간을 더 벌 생각으로 거짓말을 하는 유형이다.


시간을 벌 생각으로 거짓말을 하는 이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탑 3 거짓말이 있다.

1. 사고-자동차 사고, 가족이나 친지 혹은 자기 자신이 갑작스럽게 다쳐서 병원에 가야 하는 경우다.

2. 죽음-가까운 일가친척이나 가족이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해서 도저히 숙제를 할 수 없었다고 하는 경우다.

3. 인터넷의 문제- 과제를 분명 제시간에 보냈으나 선생님이 못 받은 안타까운 상황이다.  하필이면 그때 인터넷이, 학교 웹사이트가 다운되다니... 얼마나 기막힌 일인가.


물론 이 상황이 정말 진짜였던 순간들도 있었다.  

정말 사고가 났었고 정말 장례식에 갔어야 했었고 정말 인터넷이 다운되었을 때 그들은 내게 연락을 하고 이해를 구하였다. 진짜였던 순간들에 그들은 내게 증거를 보낸다. 병원서류를 보내기도 하고 장례식일정을 보내기도 하고 웹사이트가 다운되었던 순간 인터넷이 다운되었던 순간을 캡처해서 보여준다.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음을 알아달라는 이멜과 함께 과제물을 첨부하여 보낸다. 이게 마치 지금 최선이란 듯이. 그럴 땐 당연히 융통성 있게 그들에게 위로의 말도 건네면서 괜찮다며 다독이며 과제를 좀 나중에 낼 수 있도록 해준다.


하지만 딱 봐도 거짓말이 표시가 나는 학생들이 있다.  어디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지? 싶다가도 못 이긴 척 증명 서류를 가지고 오면 받아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무슨 수로 그런 공식서류를 떠올 수 있겠는가?



어쩌다 알게 된 대학생이 있었다.  그녀는 한국에서 이제 막 유학을 왔는데 미국 대학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절절매고 있었다. 숙제가 과제가 너무 많고 힘들었던 어린 그녀는 도저히 과제를 낼 수가 없어서 꾀를 냈다.


아프다고 하면 과제를 연장시켜주지 않을까?

어떻게 내가 진짜 아프다고 증명을 하지?

그래 응급실을 가는 거야.  거기 갔다 오면 서류 제출이 가능하니까 믿어주겠지?

그럼 나는 과제를 늦게 낼 수 있고 그만큼 시간을 버는 거야.


이 기발한 아이디어는 정말 가능할 법한 시나리오를 만들어 그녀를 이끌었고 결국 대학병원 응급실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 아프다고 말하기로 결정했다.  미국 응급실은 정말 죽을 것 같은 환자들만 우선순위로 받기에 그녀는 응급실에서 3시간 넘게 기다렸고 드디어 의사를 만났다.


머리도 아프고 열도 나는 것 같고 어지럽고 피곤하고 온몸이 결리고 쑤시고 심장도 좀 아픈 것 같고....


고작 19살이 심장이 아프다니...

병원에서는 온갖 검사를 하기 시작했다.

심전도 CT 피검사 임신 엑스레이 검사 등등을 받고 병원에서 뗘주는 서류를 들고 학교에 갔다. 응급실에 갔다 왔을 정도로 아팠어요~ 과제물 못 끝낼 정도로 너무 아팠어요~ 시간을 더 주시면 마치고 제출하겠습니다 하면서....


교수는 무조건 알았다며 그녀에게 충분한 시간 여유를 주었고 그녀는 무사히 과제를 냈다. 그리고 몇 주 후에 그녀는 8천 불 가까이 되는 응급실 진료비를 받고 울먹이며 내게 전화를 걸어 돈 좀 빌려줄 수 있냐 물었다.

부모님께는 제발 말씀드리지 말아 달라는 간곡한 부탁과 함께...  



종종 남편과 나는 우리의 대학시절 이야기를 하면 깔깔 웃곤 한다.

거짓말도 기술이었어!

그렇다.  거짓말도 기술이 필요한데 무조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늘어놓는 거짓말은 늘 어설플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남편은 학기 말이면 교통사고가 났다 갑자기 응급상황이다 등등의 이멜을 받는 나를 보며 웃다가 우리도 그렇게 어처구니없는 짓을 했던 시절을 기억해 낸다.


아 쪽팔려라.

그렇다.

그때는 상황을 모면하는 게 더 중요했기에 창피함을 못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조금씩 성숙해지면서 그땐 왜 그랬을까 싶은 상황을 마주한다.

우리 모두 이불을 뒤집어쓰고 악을 지르며 씨발을 큰 소리로 8번 정도 소리를 치며 악을 20.45초 정도 지르고 싶은 창피한 순간들이 있다.  원래 다 그러면서 큰다고 하니까....


종종 매우 정직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학생들을 만나면 마음이 많이 간다. 정직하기 위해서 얼마나 큰 용기를 내야 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때로 솔직함은 나의 쪽팔림을 내려놓는 일이다. 내 쪽팔림보다 내 자존심보다 더 중요한 것을 얻어내야 하기 때문에 용기를 내고 창피할 각오도 하는 것이다.



그때 어마어마한 응급실 병원비를 받은 그녀에게 나는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  (빌려줄 돈도 없었다)

7000불어치의 교훈이라고 여기라 했던 것 같다.  매우 꼰대같이.....

그 후 그녀가 돈을 어떻게 냈는지 안 냈는지 그녀의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는지 안 드렸는지는 모르지만, 그날 이후로 절대 모면하기 위해서 거짓을 증명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매일 삶은 벅차고 어렵고 힘든 일 투성이다.  그래서 그 상황을 모면하고 싶어서 피하고 싶어서 꾀를 내보지만, 그게 오래갈 수 없음을 알게 되는 게 성숙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정직함이 가지는 묵직한 가치를 알아야 한다. 쉽게 모면하기 위한 거짓말의 대가가 때로 어마어마한 액수와 함께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잠깐의 창피함이 거짓보다 훨씬 저렴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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