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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Z May 03. 2024

기다림은 신에 대한 예의다

종종 그 예의가 귀찮게 여겨지곤 한다.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견디기 힘든 사람들의 부류가 더 세분화된다. 그건 어쩌면 내가 매일 수십 명의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향적인 성향이기에 사람을 만난다는 건 더 많은 에너지를 끌어 써야 하고 그걸 다 끌어다 쓰면 집에 와서 내 가족에게 쏟아부을 체력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그래도 나는 집에만 오면 힘이 난다. 똥강아지 같은 내 새끼는 아직까지 엄마가 오면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고 부모님은 맛있는 저녁식사로 날 맞이하고 남편은 내가 올 때까지 밥을 굶으며 기다려주니까 말이다.



오늘은 퇴근하자마자 밥을 먹고 아마존으로 배달온 호접난 영양제와 바크를 뜯어다가 분갈이를 해주고 바나나 물도 먹였다. 사실 한참 꽃이 피는 시기에는 분갈이를 해주지 않지만, 뿌리들이 메말라서 어쩔 수 없이 살살해줬다.  자리 잡을 때까지 앓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니들에겐 이게 최선이라 어쩔 수 없다.  견뎌라.



비가 온다.  비 오는 소리는 영혼을 씻기는 소리 같아서 비가 집안으로 들어올 것 같지 않을 만큼이면 창문을 열어둔다.  빗소리는 나무에 떨어질 때 창문에 떨어질 때 콘크리트에 떨어질 때의 소리가 다 다르다. 그래서 리드미컬하고 바람까지 불어주면 빗소리와 함께 소리가 3D로 증폭된다.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을 같이 조용히 틀면 매우 평온해진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소리와 사람이 만들어내는 소리라 함께 어우러질 때 평온이 만들어지나 보다.



신에게 시간은 무의미하다고 한다.  처음과 끝이 아니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초월한 한 덩어리로 세상을 바라본다고 한다.  어쩌면 신은 그가 만든 처음 만들었던 에덴의 동산과 지금 비바람이 불고 있는 우리 동네를 하나로 바라볼지도 모를 일이다. 시간이 무의미하다면 왜 신은 만들었을까? 어쩌면 신은 우리에게 시간이 필요해서 만들었을지 모를 일이다.  꽃이 피고 지고 나무가 자라고 파도가 치다가 잠잠해지고 생명이 태어나고 성장하고 죽는 이 모든 과정 속에 신이 관여하고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해서 시간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신이 관여하고 있다.


전혀 상관없이 돌아가는 것 같은 세상에도 그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이뤄질 수 도 돌아갈 수 도 기능할 수 도 없음을 알려주고 싶어서 시간을 만들었다면, 기다림은 신의 관여를 조금이나마 알기 위해 인간이 해야 할 최소한의 예의이자 책임일 것이다.



친한 언니는 미래의 고민 현재의 갑갑함이 자신을 무기력하게 만들라치면 항상 "내일 일은 나 몰라요 오늘 하루 살아요"라는 찬양을 읇조렸다.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르기에 지금 주어진 삶에 집중해야 한다. 그 집중에서 내일을 기다리는 힘도 생기니까....



정말 내일 일은 모르는 삶을 살고 있다.


예상도 안되고 대충 감이 잡히는 것도 없다.


하지만, 나는 매우 예의와 책임감을 온몸에 두르고 기도한다.



내가 어디로 향하길 원하십니까?



신은 말한다.


나를 향하기만 하라고... 해바라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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