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외롭다.
처음 미국에 와서 기숙사 생활을 할 때다.
샤워실과 화장실이 넓게 있었는데 변기 파이프와 샤워 파이프가 같이 연결이 되어서 누군가가 변기물을 내리면 샤워기에서는 뜨거운 물만 나왔다. (상당히 뜨거웠다)
그래서 우리들만의 룰 같은 게 있었는데 누군가가 샤워를 하고 있으면 변기물을 내리면서 "watch out"을 외치는 거다. 그러면 자연스레 샤워기에서 몸을 슬쩍 비켜서 그 뜨거운 물세례를 피할 수 있었다.
아침이면 여자들은 수건만 온몸에 두르고 샤워를 하고 볼일들을 보는데 와치아웃이 1-2분마다 연속으로 외쳐지고 그때마다 미쳐 소리를 듣지 못한 애들은 갑작스러운 뜨거운 물세례에 샤워를 하다가 "으악!" 소리를 내곤 했다.
그다지 외향적이지 못한 성격에 영어 두려움증이 있던 나는 "와치아웃"이라는 소리를 내 입 밖으로 크게 내는걸 굉장히 부담스러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나는 화장실서 볼일을 보고 어떤 아이는 샤워를 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우리 둘만 있었고 나는 그만 물을 내리며 와치아웃이라 말하는 걸 잊었다.
갑작스레 뜨거운 물을 뒤집어쓴 아이는 소리를 질렀고 영어가 두려운 나는 얼마나 미안하던지 아임 쏘리 아임 쏘리 아임 쏘리를 연발했다. (사실 모른 체 하고 갔어도 되었지만...)
어설픈 아니 아임 쏘리 밖에 할 줄 모르는 나는 문 앞에 서서 아임 쏘리를 몇 번이나 외쳤고 그 아이와 나 사이에는 샤워기에서 내리는 물소리만 들렸다.
그러다가 그 적막한 물소리가 그 아이의 흐느낌으로 변했다. 그 아이는 울기 시작했고 아임 쏘리 이후의 문장을 구사할 수 없던 난 조용히 방으로 돌아왔다.
그때의 그 감정들은 참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런 거였는데... 뜨거운 물세례를 맞아서 흐느꼈던 것이 아니다.
아무도 없는 기숙사 화장실에서 영어에 서툰 한 여자의 미안함이 전해졌고 그 아이 역시도 혼자 있는 그 외로움이라는 것에 복받쳐 울었던 게 아닐까 싶다.
난 그 아이가 누군지 알았고 그 아이도 내가 누군지 알았다. 그 후 복도에서 마주친 우린 서로 씩 웃었다. 아주 멋쩍게 말이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그 아이가 화장실서 그렇게 흐느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물론 그 아이도 내가 아임 쏘리를 문 앞에서 그리도 많이 반복했다는 얘긴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언어로 전해질 수 없는 그 진심이라는 게 있는 것 같다. 그때의 그 기억이 요즘 떠오르곤 한다.
지금의 나는 그리 세심하지도 않고 배려가 몸에 밴 사람도 아니고 디테일한 사람도 아닌데... 그때 그 문 앞에서 아임 쏘리를 말하던 나는 그랬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