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을 위한 그림

N 잡러의 미술관

by MamaZ

시원한 날씨와 함께 점점 출산의 두려움이 스멀스멀 밀려오던 8년 전 10월, 가수 신해철이 의식을 잃고 중환자실에 있다는 뉴스를 접하자마자 나는 주저앉았다. 믿을 수가 없어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전화기를 붙잡고 울었다. 타국에 사는 내가 신해철의 생사를 알기 위해 몇 초마다 인터넷 창을 리프레쉬시키고 있었고 기다리는 내내 중얼중얼 거리며 그와 그의 가족을 위해 기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든 그를 살려달라고 내 모든 신앙과 믿음을 끌어모아 매달렸다.


"꼭 살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나의 간절한 기도는 매번 이렇게 시작했다. 주변에 괜찮은 "어른"이 없던 내게 신해철의 노래는 길잡이가 되어주고 이끌어주는 어른 같은 존재였다. 내가 어떤 생각으로 살아야 하는지, 어떤 꿈을 꿔야 하는지, 어떤 태도로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지 노래를 통해 조금씩 알게 해 주던 어른이었다. 물론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들에게 신해철은 삶을 좀 더 진지하고 깊이 바라보게 했다. 그의 노래는 삶과 죽음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일들 가운데 사랑을 하고 행복하고 물질에 끌려다니지 말며 힘들어도 옳은 것을 향해 움직이라고 했다. 그런 얘기를 해준 사람은 단 한 명도 내 주위에 없었기에 그의 노래는 깊은 울림이 되어 나를 보듬어 줬다. 그래서 그는 더욱 "꼭 살아야 하는 사람"이었다. 늘 기대가 되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그가 만들어낼 모든 미래의 노래는 분명 또 내게 큰 울림이 되어주고 위로가 되어주고 결심을 하게 만들어주는 노래였을 테니까.


하지만, 그는 너무 허무하게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내 인생의 한 부분은 잿빛으로 변한 것 같았다. 내 인생의 소중한 한 부분이 완벽하게 되돌릴 수 없는 과거가 되는 순간이었기에 그가 세상을 떠난 지 8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10월 27일은 내게 슬픔이 가득한 날이다. 그런 오늘, 나는 마왕과 어울리는 그림을 찾고 싶었다. 그가 바라봤던 세상을 그림으로 똑같이 바라본 작가가 있을까? 병원에서 퇴근하고 집으로 오는 길 곰곰이 고민하다 소름 돋게 잘 어울리는 작품을 기억해냈다.


Caspar_David_Friedrich_-_Wanderer_above_the_sea_of_fog.jpg Friedrich, Wanderer of above the sea fog


독일 낭만파 작가 Caspar David Friedrich의 Wanderer of above the sea fog라는 작품이다. 신해철이 이 작가를 알고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이 그림을 봤다면 분명 좋아했을 거란 확신이 드는 건, Friedrich가 바라봤던 세상 역시 매우 거대하고 어둡고 외로운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너무 큰 용기인데, 그 용기를 내기 위해 긁어모아야 하는 의지는 또 얼마나 버거운 것인가. 그래서 작가는 한참을 거대한 세상을 바라봤는지 모르겠다.

maxresdefault-5.jpg Friedrich, The Monk by the Sea


작가의 작품은 늘 "겸손"과 "결심"을 하게 만드는 마술을 부린다. 한없이 작은 존재인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삶을 가치 있게 살아가려 발버둥 치는 그 모습 앞에서 세상은 묵묵히 그의 인내를 지켜봐 주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The Monk by the Sea를 좋아한다. 폭풍이라도 칠 듯 기세 등등한 대 자연 앞에서 서있는 수도승은 그저 묵묵히 바라보기만 한다. 도망가지도 않고 벌벌 떨지도 않은 체... 어두컴컴한 하늘을 바라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할까?


"난 너와 싸워 이길 자신은 없지만, 견뎌보려 해. 어떻게든 살아남아 보려고... 그러다 보면 얻어지는 게 있지 않을까?"


신해철이 방송 출연해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신은 우리가 무슨 꿈을 꾸고 이루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고... 다만 우리가 행복한지 아닌지에는 매우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이다.


어쩌면 그가 불렀던 나에게 쓰는 편지에 그가 말했던 행복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찾는 소중함 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 뿐 언제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만 가네 나의 마음도 조급 해지지만 우리가 찾는 소중함 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 뿐"


막 20대 초반 신해철은 전망 좋은 직장과 은행계좌의 잔고 액수가 모든 가치의 척도인지 고민하지 않고 돈 큰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 그런 것들에 행복이 있지 않다고 노래했다.


가까운 곳에서 나와 함께 삶의 희로애락을 함께할 사람들과 사랑하고 마시고 먹고 또 사랑하고 웃고 같이 껴안고 울기도 하다가 다시 훌훌 일어나 언제 그랬냐는 듯 또 사랑하고 마시고 먹고 사는 것.


어쩌면 그가 말한 삶은 이런 게 아니었을까 싶다.


10월 28일.

그를 잃은 어제의 슬픔을 뒤로하고 오늘은 그가 말한 가까운 행복을 위해 힘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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