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뎌내면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말이 위로가 될까?
너무 바빴다. 정말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엄마로서 선생으로서 또 직장인으로서 시간과 에너지의 발란스를 맞추고 있다. 어느 한쪽이라도 소홀하면 수습하느라 더 힘들 테니 웬만하면 내가 속해있는 자리에서 지금 이 순간 내가 해야 하는 일을 제대로 하려 하고 있다. 매일 내가 하는 일은 똑같지만 이 똑같은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하루가 망가지고 일상이 틀어진다. 매일 반복돼도 그 일을 잘해야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
그날도 나는 매일의 일상에 충실하며 일을 하며 전화를 받았다.
"아이가 이가 아프다고 해요. 오늘 선생님 만날 수 있나요?"
당장 의사를 만날 수 있겠냐는 엄마의 목소리는 매우 차분했다. 몽골 사람으로 기억한다. 그들이 특별히 기억에 남는 건 아이들 때문이다. 그 나이 때 아이들의 사부작 거림은 당연한데 그녀의 아이들은 또래 나이 아이들에 비해 너무 얌전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만히 정말 인형처럼 앉아만 있는 남매였다. 저렇게 가만히 있으라고 해도 힘들 텐데 어쩜 이 아이들은 저렇게 얌전할까?
아프다는 아이를 데려온 이는 할머니였다. 처음 뵌 할머니는 너무 한국인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기에 나도 모르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영어로 내게 인사하는 그녀에게 순간 민망함을 느낀다. 한국인과 몽골인은 정말 어쩜 이리도 비슷하게 생겼을까?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이가 아프다는 아이의 표정을 살폈다. 아이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아픔을 읽기란 힘들었다. 엄마 말로는 아이가 많이 힘들어한다고 했는데 말이다. 꽤 견딜만한 치통인가? 어려서 치통도 잘 견디나?
아이를 앉히고 나의 자리로 돌아와 정신없이 또 일을 하는데 벌써 아이의 진료가 끝났다. 다음 진료 날짜를 잡은 아이는 할머니의 손을 붙잡고 병원 문을 나섰고 영문을 모르는 나는 선생님을 쳐다봤다.
두 아이의 엄마인 선생님은 깊은 한숨과 함께 말을 꺼낸다.
"어금니 쪽 잇몸이 정말 벌겋게 부어서 콕콕 누르면 고름이 나올 정도예요. 항생제 우선 먹이고 염증 가라앉힌 다음에 어금니 다 뽑아야 해요. 부모님이 치아 관리를 하나도 해주질 않는 모양이에요. 엉망이에요. 할머니 말로는 부모님이 이혼을 했대요. 그래서 일주일에 며칠은 엄마 집에서 있고 며칠은 아빠집에 있는데 그래서 관리가 안되나 봐요."
어금니 없이 아이는 밥을 어떻게 먹지? 아이가 새로운 어금니 영구치를 얻기 위해서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앞으로 4년은 남은 것 같은데 말이다.
이 아이를 만나기 몇 주 전 나는 우크라이나에서 난민으로 온 가족을 만난 적 있다. 가족 모두 영어가 서툴기에 구글 번역기로 서로에게 궁금한 것을 묻고 대답했다. 금발의 두 딸아이는 사춘기의 절정에 있어 보였다.
전쟁의 불안과 새로운 곳에서의 낯섦이 아이들 표정뿐만 아니라 몸짓에도 가득해 보였다.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어두움. 어두움이 삼켜버린 것 같은 얼굴. 그게 내가 느낀 아이들의 첫인상이었다.
그 아이들 역시 선생님의 한숨을 깊게 했다.
너무나 관리가 되지 않았고 신경치료 전문의와 교정 전문의를 찾아가야 할 정도의 상태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정부보조보험으로는 엄두도 못 낼 일이다. 그 부모가 돈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선택은 14살의 아이의 치아를 뽑는 일이고 우리는 어떻게든 그 치아를 살려보라고 권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정부보조보험으로 치과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은 매우 한정적이다. 게다가 조금이라도 전문의의 진료를 필요로 한다면 정부보조보험은 쓸모없어진다. 그 누구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는 최선을 다해 보살폈지만 우리가 할 수 없는 영역에는 그저 다른 곳을 찾아보고 도움을 받아보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그게 요즘 바쁜 내 일상의 일부였다. 우리가 도와줄 수 없고 해 줄 수 없는 일들에 있어서 안타까워하고 마음 아파하다가 또 다른 일상의 물결에 치여 이동하는 것.
삶은 험난한 파도가 참 많은데 아이들이 경험해야 하는 파도가 어른도 견디기 힘든 것일 때 생기를 잃는 것 같다.
아이들의 삶은 그래도 조금 더 희망적이길 바라보는 건 헛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