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든 탑을 모시고 사는 자부심
그림을 오래 그린 사람의 드로잉을 보면 그 깊이와 내공이 보인다. 입시미술로 다져진 스킬이 아닌 오랜 시간 연습하며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여정을 지나온 예술가가 지닌 선은 작가의 시그니쳐가 된다.
그들의 선은 꼭 있어야 할 곳에 아주 적당한 굵기와 강약으로 때로는 촘촘하게 때로는 느긋하고 여유 있게 존재한다. 그런 작가는 채색을 하지 않아도 그냥 쓱쓱 그려 넣은 몇 개의 날 선 목탄으로 살아 숨 쉬는 생명을 낳는다.
그들은 방금 종이에 그려졌지만 이미 오랜 삶의 경험과 생각 감정들이 담겨있다. 갓 태어난 작품이지만 성숙하고 노련하고 고단해 보이기도 하다. 나는 그런 순간들을 작품에서 찾아내는 그 과정이 좋다.
점 하나에도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은, 수천번 찍어낸 그 점 속에 작가의 노고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통 점 하나에 감동을 받기는 어렵다. 우린 화려하고 기교가 있는 작품을 마주할 때 눈이 전하는 즐거움에 보통 반응을 하기 때문이다.
며칠 전 남편의 전화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여러 악기의 소리를 넣어 하나로 뭉쳐버린 전자음들과 부정확하고 흥얼거리며 내뱉는 소위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의 노래가 끝나자 깊이가 다른 목소리가 채워졌다. 밥 딜런이었다.
대충 하는 것 같지만 가볍지 않고 내뱉는 것 같지만 깊이가 있는... 밥 딜런의 음악은 대가가 그려낸 흰 종이에 목탄 드로잉 같았다.
삶을 깊이 있게 다루고 소중히 여기지만 집착하지 않는 이의 자유함이 예술에 담길 때... 우린 감동한다. 하지만, 감동이 눈에 보이는 것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라 저런 경지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노력했는가로 시선을 옮기자 감동은 뭉클함이 솟구쳐 오르는 감격이 된다. 매번 진심으로 한 장 한 장 그림을 그리고 단어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이며 글을 썼던 이들의 노고가 작품에서 보이기 때문이다. 하기 싫어도 힘들어도 도저히 몸이 따라주지 않아도 꾸준히 쌓아 올린 그들의 공든 탑은 삶에서 작품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보인다.
그리고 그 공든 탑은 자부심이 된다.
삶에서 그 누구에게나 보이고 싶은 자부심 한 개 정도가 있으면 꽤 멋지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