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맘껏 도전하자
애니 뮤지컬 오디션은 딸아이를 설레게 했다.
지난 며칠 아이는 애니의 대표곡을 샤워하면서도 놀면서도 연습하고 연습했다. 아이는 유튜브를 보며 뮤지컬 오디션에 대해 공부하고 라인을 외우고 연기 연습을 한다.
아이는 그 순간 철저히 애니의 삶을 사는 것 같았다.
모든 대화의 끝에는 애니에 대한 열정과 설렘 그리고 애니가 되고 싶은 바람이 가득했다. 오디션 날짜는 다가오고 아이는 점점 상기된다.
아이는 첫 오디션에서 콜백을 받았다.
1명의 애니를 뽑는데 4명의 파이널 참가자의 한 명이 되었다. 아이는 뛸 듯이 기뻐했고 더욱더 열정적으로 연습에 임했다. 연습을 하고 목소리 내는 법, 목 푸는 법까지 아빠랑 리서치하며 준비했다.
아이는 2시간 반의 긴 오디션을 했다. 다 끝난후 벌건 얼굴로 엄마와 아빠를 찾은 아이는 자신이 가진 모든 걸 쏟아 부었고 후회는 없다고 했다. 다만 4명중 한 명에게 감독과 스태프들이 더 노래를 시켰던게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10살의 머리로 이 모든 상황을 분석하며 자신이 이 역을 맡을 수 있는지 없는지를 고민하는 모습에 나 역시 마음을 졸인다.
다음날 아이는 애니에서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펑펑 울었다. 애니 주인공 배역을 맡지 못했지만 대신 꽤 비중이 있는 거지 역을 받았다. 하필 거지다. 속상한 아이에게 나는 무슨 말로 위로해 줄 수 있을까? 나는 아이와 이야기하며 심사위원들을 향해 욕을 한 바가지 해줬다. 이런 보석 같은 아이를 못 알아보다니! 아이는 엄마의 욕(?)에 속이 풀린 듯하다.
"너무 슬프다. 그렇지? 그런데 말이야 엄마는 솔직히 이 이야기를 해줘야 할 것 같아. 앞으로 계속 오디션을 보고 도전할 때 수도 없이 이런 거절당하는 경험을 할 거야. 너의 최선이 그들이 찾는 최선이 아닐 수 도 있어. 그런데 이런 경험이 열매를 맺는데 거름이 될 거야. 그 누구도 실패를 경험하지 않고 성공할 순 없거든. 애니는 못 하지만 너는 뮤지컬에서 꽤 중요한 역을 맡았고 솔로도 있는 배역을 맡았어. 그럼 애니 역사상 가장 멋진 거지 연기를 하는 거야. 주연도 조연 없으면 빛날 수 없어!"
거절당하는 좌절과 슬픔을 너무 잘 알기에 더욱 맘이 아렸을지도 모른다. 지금 이 나이에도 거절의 경험은 힘든데 10살이 겪는 거절은 어떤 감정일까?
언젠가 김미경 강사는 그런 얘기를 한적 있다.
자식이 지하 100층으로 떨어지면 부모는 101층으로 내려가 아이를 품어야 한다고 말이다.
아이가 겪는 실패와 좌절은 순전히 오롯이 아이의 몫이다. 나는 아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그래서 나는 그 순간이 매우 힘들었던 것 같다. 아이가 원하는걸 엄마 아빠가 해줄 수가 없는 시기가 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와 아빠는 네 곁에서 최고의 응원 단장이 되어 널 응원할 것이다.
아이는 딱 반나절 힘들어하고 괜찮아졌다. 아이의 속이 진짜 괜찮은지 매번 눈치를 살폈다. 그런데 정말 아이는 괜찮아 보인다.
다음날 아이의 소식을 궁금해하던 친구들은 결과를 듣고 많은 위로와 함께 심사위원을 향해 맘껏 욕을 아낌없이 해줬다고 들었다. 그런 위로가 또 아이의 마음을 위로한다. 아이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우리 말고도 더 있어 보여 다행이라 생각했다.
나는 아이가 겪는 실패와 좌절이 아이의 뿌리를 흔드는 일이 아니길 바란다. 그래서 지하 100층에 떨어질 때 101층으로 내려가 널 안전하게 받아서 먹이고 달래고 위로하고 안아줄 것이다.
오늘 아이는 등굣길에 자기가 불러야 하는 솔로곡을 열심히 듣고 흥얼거린다.
애니 역사상 최고의 거지연기를 할 거라는 결심이 아이를 빛나게 한다.
그 빛이 오늘 나의 하루를 또 가득 채운다.
너는 아름답게 빛나고 나는 그 빛에서 따뜻함을 얻는다.
빛을 이길 수 있는 어두움은 없다.
널 이길 수 있는 실패와 좌절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