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선교라는 장사

선교는 지금 여기에서 이뤄지고 있는걸

by MamaZ

풋풋하고 열정은 가득했던 20대 시절. 나는 섬나라에 단기선교를 두 번 다녀왔다. 그곳은 매우 덥고 가난했으며 물도 전기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그런 곳이었다.

길바닥에는 개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닭들은 새벽마다 어찌나 울던지 잠을 청하기 힘들었다. 제대로 물 한 번 나오지 않는 곳에서 유일하게 몸을 닦을 수 있는 방법은 물티슈였다. 더위 때문에 온몸에 벌건 발진이 뒤덮였고 새카맣게 타다 못해 피부가 다 벗겨지는 경험을 했다. 하지만 그중 가장 최악은 단연 화장실이었다. 인분이 가득 쌓인 곳에서 볼일을 보는 건 정말 최악이었기에 안 먹고 안 싸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 여겼다.


그곳에서 당시 청소년 아이들과 청년들과 함께 잡일을 했다. 교회 내부 페인트를 칠하고 벽화를 그리고 그곳 아이들과 함께 여름성경학교를 하면서 재능 기부를 하는 것이었다. 유독 한인교회가 선호하는 단기선교는 개고생이었다. 마치 군인들을 훈련시키듯 아침 일찍 일어나 말씀을 읽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노동에 임하고 저녁이면 다시 모여 기도모임을 하는 것. 먹고 자고 씻는 거 포기한 체 하루하루를 노동과 노동으로 꽉꽉 채우면서 우리가 얼마나 윤택하고 부유한 삶을 살고 있는지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 남을 돕는 나의 손길에 뿌듯함을 느끼며 앞으로 내 인생도 남을 돕는 삶을 살리라 식의 거창한 생각을 하게끔 애나 어른이나 철들게 만드는 것이 단기 선교의 목적 같은 거였다. 고생의 경험이 앞으로 우리 인생의 깊은 자양분이 될 거라며 꼭 가봐야 하는 게 단기선교인 것처럼 교회는 방학 때마다 사람을 모았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향해 다녀와서 제발 철 좀 들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극기훈련을 통해 아이들이 성숙해져 돌아오길 선교라는 이름 아래 바랬던 것 같다.


20대는 모든 기반이 흔들리기가 딱 좋은 나이 아닌가? 그래서 단기선교의 경험이 불안정한 기반에 튼튼한 콘크리트가 되어 기둥을 단단히 잡아주는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나 역시도 했었다. 그곳에 가면 내 인생을 드라마틱하게 바꿔줄 무언가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너무 순진하게도 그곳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보고 사도 바울처럼 눈을 뜨는 일을 경험하게 되지는 않을까? 사실 이런 바람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함께 가는 우리 모두 선교지에서 큰 부르심을 느끼길 간절히 바랐다. (우린 얼마나 순진했는가)


함께 갔던 청년부는 정말 열심히 일했다. 시원한 코카콜라 한 모금을 마시면 살겠다 싶을 정도로 고된 그때, 얼음은커녕 냉장고도 없이 하루종일 떙뼡에 뜨겁게 데워진 콜라를 마시며 벽화를 그렸다. 물론 그 경험이 내 인생에 튼튼한 콘크리트 기둥이 되어주진 않았고 인생의 디렉션을 주지도 않았다. 그냥 힘들었다. 하지만 우리가 무언가를 함께 하고 있다는 친밀감 그리고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자 기분이 좋아진다.


몇 해가 지나고 나는 우리가 그렸던 벽화가 다시 흰 벽으로 칠해졌고 누군가에 의해 다른 그림으로 대체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그 벽이 한여름 대목으로 단기선교팀을 끌어들이는 도구로 사용될 거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우리가 뜨거운 콜라를 마시며 칠했던 그 벽들은 다른 교회 선교팀이 와서 해마다 그림이 그려지면 다시 그 선교지 교인들에 의해 흰색으로 칠해졌고 또 다른 선교팀에 의해서 다른 그림으로 교체되었다.


똑같은 벽에 왜 그리도 여러 번 그림이 그려지고 지워지길 반복했을까?

결국 장사였나?

단기 선교 방문자들이 고생 좀 해보고 느끼고 배우기를 반복할 수 있게끔 벽을 내어주고 과제를 내어주고 장소를 내어주며 단기선교 경험을 물질과 맞바꿀 수 있는 기회는 놓칠 수 없었을 것이다. 교회를 운영하기 위해서 선교사님 생활비를 위해서 또 그 자녀분들 유학자금을 위해서 꼭 필요한 돈이었을게다.

그때의 그 실망감으로 인해 나는 고생 좀 해보고 와야 한다는 식의 단기선교에 대한 회의감 같은 게 생겼다. 마치 군대를 다녀와야 진짜 사람이 된다는 식으로 말했던 꼰대들처럼 더럽게 고생 좀 해봐야 인생을 배운다는 식의 단기선교는 비즈니스가 되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온데간데없다.


노동을 위한 노동 고생을 위한 고생을 해야 하나님께 인정받을만한 사역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 그런 것들이 필요할까?

세리를 향해 내가 저들과 같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입니까?라고 기도했던 바리새인처럼 내가 저렇게 열악한 환경에 놓이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요 부자나라에서 부자 부모밑에 태어나서 너무 감사해요가 기도로 나온다면 바리새인과 다를 게 없는 신앙이 된다. 그건 너무 슬픈 일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고 어떤 방법으로 변화를 일으키고 계시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선교지에서 확인해야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인지 경험할 수 있다. 그분이 일하시는 방법을 우리가 조금이라도 알게 된다면 지금 우리 일상은 또 얼마나 설렘으로 가득 해지지 않을까?


하나님, 당신이 어디서 어떻게 일하고 계신지 정말 눈으로 몸으로 확인하고 싶습니다 라는 기도가 매번 우리의 인생에 필요하다. 그런 기도는 저 멀리 있는 선교지뿐만 아니라 내 주변에서도 매번 선교 사역이 이뤄지고 있다는 걸 확인시켜 줄 것이다. 그리고 그걸 확인할 때마다 우린 또 다른 기도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것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사역에 내가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이 될 수 있게 하소서라고 말이다.


#내이웃이내선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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