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일하는 동료는 한국 제과점에서 꽈배기 빵만 사 먹는다. 왜 그거 있지 않은가? 살짝 꽈서 튀긴 도넛빵에 흰 설탕 가득 묻힌 그 빵 말이다. 세상에 맛있는 빵이 얼마나 많은데 왜 다른 건 시도조차 하지 않고 오직 꽈배기만 사 먹는지... 종종 다른 빵도 시도해 보라고 하지만 꿈쩍도 안 하고 오직 꽈배기만 먹는다. 나 같으면 이미 물려서 못 먹을 그 맛을 그 친구는 질리지도 않는가 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빵을 먹으며 내게 말했다.
"나는 이 빵을 먹으면 어릴 적 시절이 생각나. 멕시코에도 이런 빵이 있었거든. 6살쯤 엄마가 사줬던 그 기억이 나. 맛도 똑같고 설탕도 묻어있고. 이 빵을 먹으면 그때의 그 기억으로 돌아갈 수 있어서 그게 너무 좋아." 그때 빵을 안겨준 엄마가 그리워서인지 아니면 어린 시절 행복하게 먹던 그 순간이 그리워서인지는 묻지 않았다. 꼬치꼬치 묻고 싶지 않았던 건 그가 빵을 먹는 동안 충분히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서 옛 추억을 만끽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고향을 두고 온 이들에게는 향수가 가득 벤 음식이 있기 마련이다. 내게 김치찌개가 그리하듯 그 친구에게는 꽈배기 빵이 그런 음식인가 보다. 남편은 흰밥에 김 계란과 스팸이 그런 음식이라 했다. 부모님이 돈 버느라 여유라곤 일도 없던 그 시절 흰밥과 김, 계란 프라이와 스팸은 엄마 아빠 없어도 어린 그가 혼자서 챙겨 먹을 수 있던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을 테니까.
지금은 미국에서 한국 음식이 많이 대중화되어 있어서 어딜 가나 불고기 갈비를 파는 K BBQ집을 볼 수 있지만, 내가 처음 유학 와서 살던 때는 한국 음식점에서 음식을 사 먹는 일은 매우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짜장면, 짬뽕은 파는 곳이 없어서 요리 잘하는 누군가의 집에서 만들어 먹는 매우 특별한 음식이거나 한인이 많이 사는 곳에서 사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그래서인지 나 어린 시절 한국 음식이란 쉽게 먹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음식을 잘해서 먹고 싶은 음식을 요리했느냐? 물론 아니다. 나에게 요리란 생존 같은 거였다. 내가 외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좋아하지도 취미도 없지만 먹고살아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던 것들 중 하나였다. 내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요리를 했던 시절은 아마도 아이가 이유식을 먹기 시작했던 그 무렵인 것 같다. 나는 대충 먹어도 애는 대충 먹일 수가 없어서 요리책을 보고 인터넷을 뒤져가며 음식을 했지만, 단 한 번도 즐긴 적이 없다.
살림과 요리에 취미가 별로 없는 엄마를 둔 딸아이는 할머니가 해준 음식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게 벌써 있다. 그래서 아이는 내게 할머니가 해준 된장찌개 할머니가 해준 생선 할머니가 해주는 밥이 먹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런 아이에게 아무리 내가 노력을 해서 정성껏 만들어줘도 엄마 손맛이 할머니 손맛을 따라갈 수 없는 법. 할머니 밥은 두 그릇씩 먹으면서 엄마가 해주면 한 그릇 겨우 먹을까 말까 한다.
그런 아이에게 언젠가 정말 미안한 마음을 담아 말했다.
"엄마가 할머니만큼 요리를 못해서 미안해."
나는 그럼 아이가 "아냐, 엄마가 해주는 음식도 맛있어"라고 말해줄 줄 알았는데 쌉티인 내 새끼는 그냥 "어"라고 한다. 우리 엄마가 너 같은 새끼 꼭 낳으라고 했는데 쌉티인 내 새끼는 정말 쌉티인 날 닮았다. 너 닮은 새끼를 낳으라는 말이 이게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얄짤없는 말이다 그게.
그래서 나는 말이다 돈을 열심히 번다.
돈을 열심히 벌어서 잘 사 먹인다. 나는 요리보다 그걸 더 잘할 수 있는 엄마니까.
언젠가부터 나는 내가 못하는 걸 굳이 잘하려 들지 않게 되었다. 대신 난 내가 잘하는걸 더 잘하려 한다. 아이가 나중에 날 기억할 때 맛있고 따뜻한 밥을 차려주는 엄마로 기억은 하지 못하겠지만, 맛있는 음식점에 가서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면서 그날 있었던 일을 소소하게 나누면서 깔깔 웃고 즐겁게 식사했던 엄마를 떠올릴 것이다. 난 그런 기억으로만으로도 충분히 괜찮다. 그 기억 속에 나와 아이는 매우 행복하고 즐거울 테니.
나는 내 아이의 기억 속에 그렇게 추억되고 싶다.
엄마랑 함께라서 그냥 좋았고 행복했고 즐거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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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지않아도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