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난 교회를 떠났다.
성경에서 가장 좋아하는 성경구절이 있다면 히브리서 4장 12절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히브리서 4장 12절)
이 말씀을 반복해서 읽다 보면 그 말씀의 아우라가 내 안에서 잔잔하게 퍼지는 것 같다.
말씀의 운동력이란 사람의 언어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의 언어가 불만과 불안으로 가득하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그런 우리에게 먼저 다가와 주는 언어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어떤 검보다 예리하다는 것은 말씀 자체가 살아 있어 운동력이 있을 뿐 아니라, 잘라내고, 도려내고, 찌르고, 쪼갤 수 있는 힘까지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썩고 문드러진 고름을 도려낼 수 있고, 우리의 고집과 불안을 잘라내 그 자리에 새 살이 돋게 할 수 있는 힘.
말씀 하나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감찰하신다는 것은 엑스레이처럼 우리 안을 꿰뚫어 무엇이 문제인지 아닌지를 조금의 오차도 없이 바라보신다는 뜻일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렇게 대단한 힘을 가진다. 성경의 인물들은 그 말씀의 힘을 너무도 잘 알았기에 하나님을 찬양했고, 하나님을 향해 울부짖었으며, 사도들은 목숨을 걸고 그 말씀을 전했다.
말씀의 힘과 깊이와 권위를 아는 사람은
감히 하나님 앞에 자신을 앞세우지 못한다.
어디 우리 따위가 말씀 앞에 내 생각과 고집과 아집을 들이밀며 내 입맛에 맞게 말씀을 잘라 붙여 “내가 가라사대”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스스로를 해부대 위에 올려놓고도 그 위험을 모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무모하고, 철없는 일이다.
그런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들은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전해야 할 책임을 지닌 사람들이다.
두리뭉실하게 전하지도 말고, 추상적으로 만들지도 말고, 듣기 좋은 이야기만 골라 전하지도 말아야 한다.
말을 조리 있게, 강약 조절하며 고급 단어를 골라 써서 당신이 얼마나 똑똑한지를 증명하라는 것도 아니다.
청중이 빵빵 터지게 농담을 섞으라는 것도 아니고, 잘 차려입고 원맨쇼를 하라는 것도 아니다. 감동시켜 눈물, 콧물을 짜내라는 말도 아니다.
광대처럼, 배우처럼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사로잡을지를 고민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 내가 어떻게 사로잡힐지를 고민해야 한다.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 전하는 이에게 먼저 와서 가르치고, 깨뜨리고, 무너뜨리고, 다시 세운다면 그 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앞에 바짝 엎드리는 태도다.
목회자들은 요즘 왜 탈기독교 현상이 일어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세상이 악해지고, 불안해지고, 가난해질 때
기독교는 오히려 더 강건해져 왔다. 지금도 폭발적으로 부흥하는 곳은 가난하고, 약탈이 일어나며,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나라들이다.
그러니 세상이 악해져서 사람들이 교회를 떠난다고 말하지 말라.
교회 안에 배우고 싶고, 존경하고 싶은
목회자와 어른이 너무 없어서 사람들이 떠나는 것이다.
도저히 교회를 다닐 수 없다며 성당으로 옮긴 지인도 있고, 교회에 대한 실망이 커
기독교 단체에 후원조차 못 하겠다는 사람들도 생겼다.
나 역시 목회자의 아내로 20년이 넘는 시간을 살았지만, 교회에 대한 실망과
목회자에 대한 절망이 이런 글을 쓰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한국 교회는 어쩌다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을까.
자식에게 곳간 열쇠를 쥐여주기 위해 목회 세습이라는 기가 막힌 짓을 하고, 대형교회 스타 목회자들의 사례비는 웬만한 기업 CEO 수준이다.
그 밑에서 스타 설교의 그림자 역할을 하는
부목사들을 줄줄이 세워 설교 원고를 쓰게 하고, “언젠가 너도”라는 허황된 꿈을 꾸게 만든다.
교회가 유일한 사회생활인 목회자들은
현실 감각을 잃고, 설교 시간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
그깟 백억
그깟 회사
그깟 월급 따위
십일조, 주일성수, 헌금, 봉사, 헌신을 강요하면서 현실에서 죽어나가는 성도들에게
정작 말씀의 수혈은 없다.
40억이 시작이자 끝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시작은 400억이었다고 한다.
성도들이 “목사님 말씀 덕분에 삶의 목적이 바뀌었습니다” “은혜의 도가니에 빠졌습니다”라는 말을 쏟아내니 자신이 하나님이 된 것처럼 느꼈을 것이다.
그러니 교회는 400억을 요구하면 턱 하고 나오는 현금인출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현실감 떨어지는 얘긴가.
살아 움직이는 말씀 위에 자기 욕망과 욕심을 덧칠하고 “이게 하나님의 뜻”이라 말하며 쉽게 뱉어낸다. 그러면서 교회가 이렇게 크고 성장한 건 다 자기 때문이라 여긴다. 그래서 교회에 대한 지분이 있다고 큰소리칠 수 있는 것이다.
제발, 나가서 돈을 벌어보고 목회를 했으면 좋겠다.
배달을 하든, 직장을 다니든, 과외를 하든,
식당에서 서빙이라도 해보면 억 소리 못한다. 돈 벌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면 억 소리가 쏙 들어갈 것이다.
화가 나서 숨이 막힐 지경이다.
나 같아도 교회를 떠나겠다.
아니, 이미 떠나 있는 사람이 이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