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팔리는걸 아는게 지혜입니다

지혜의 시작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것

by MamaZ

당시 나는 중학생이었다.
버스를 탔는데 버스가 바로 출발하는 바람에 앞문에서 넘어져 뒷문까지 밀려 간 적이 있다. 그때 정말 너무 창피해서 고개를 못 들었는데, 함께 탔던 친구가 막 웃는 거다. 정말 등짝을 후려치고 싶었지만 쪽팔림이 더 커서 가만히 있었던 기억이 있다.


그 나이엔 창피함이란, 남들 눈에 비친 내가 초라할 때 느껴지는 감정이었다. 그건 마치 당시 유행했던 게스 바지 대신 시장에서 산 청바지를 입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내 바지 엉덩이 주머니에는 거꾸로 놓인 세모에 선명하게 수놓아진 게스 로고가 없어서 나는 셔츠를 바지에 당당히 넣지 못했다. 친구들의 게스 바지는 왠지 나를 주눅 들게 했고, 시장표 바지는 내게 창피한 바지처럼 느껴졌다. 시장에서 엄마가 물건값을 가지고 흥정하다가 안 사겠다고 물건을 놓고 나오면 왜 저렇게까지 해야 하지, 창피하게 그냥 사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아빠의 큰 재채기 소리가 가게에 쩌렁쩌렁 울리면 내 얼굴이 다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남들이 날 어떻게 바라볼까? 남들이 우릴 어떻게 쳐다볼까?


한참 예민한 나이에 창피함이란, 누군가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판단하는가가 기준이었다.


며칠 전 40억이라는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을 아들 개척교회 하는 데 쓸 수 있도록 도와주라는 은퇴 원로 목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잘은 모르지만 존경을 한몸에 받는 분이라 들었고, 그분이 쓴 책으로 수많은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영적 변화와 각성을 이끌게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렇게 덕망 있고 유명하시고 존경받는 분이 40억이란 어마어마한 액수를 제시하셨다니 놀라웠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왜 40억인가?
그 숫자는 어디서 나온 걸까?
은퇴도 하셨다는 분의 입김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교회에다 40억이란 액수를 제시해도 충분히 괜찮다고 생각하신 걸까?


한국 교회에서 설교 잘하고 글 잘 쓰고, 소위 잘나가는 목사의 위치에 있었으면 은퇴를 해도 은퇴가 아닌가 보다. 그만큼 오래 사역을 하셨으면 다음 세대가 알아서 잘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뒤에서 열심히 기도해 주시면 참 덕이 되는 모습일 텐데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후광 입고 40억으로 개척하고, 그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타이틀로 교인을 모으고 목회를 하면 그게 교회이고 사역인가? 한 숟가락 음식을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어 자식 입에 쏙 넣어주는 아버지는 진정 하나님의 나라를 위함이라 말할 수 있을까? 자식의 먹고사는 일을 해결할 열쇠를 손에 꼭 쥐여 주는 거라고 솔직히 말할 수 있을까?


요 며칠 나는 창피함과 쪽팔림에 대해 묵상했다.


중딩이 아닌 40대 중반의 내게 쪽팔리고 창피한 건 내가 남들보다 초라하다고 느껴질 때가 아니다. 게스 바지가 없어서, 가격을 흥정해서 혹은 재채기 소리가 너무 커서 남들이 다 쳐다볼 때가 창피한 게 아니다. 정말 창피하고 쪽팔리는 건 하나님을 알고 믿는다는 사람이 옳고 그름, 어리석음과 지혜, 가치와 중요함, 바름에 대한 구분을 할 줄 모르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함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이요 진리고 전통이며 순리이며 관행이라 포장하며 자신의 권위로 밀어붙이는 것. 이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그래서 결론 내린 지혜의 참뜻은 이거다.
하나님 빡치게 하는 일을 안 하는 게 지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게 지혜다.


사람이 너무 인간적인 인기를 얻다 보면, 그래서 권력이란 걸 손에 쥐면 창피한 것도 창피한 것인지 모르는가 보다. 잘나갈수록 바짝 엎드려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래야 안 쪽팔리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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