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이 사약이 되지 않도록

교회 밖에 더 큰 우물이 있습니다.

by MamaZ

유지 즉 maintain 한다는 것은 지속적인 훈련과 루틴이 완벽하게 자리 잡고 그게 흐트러지지 않도록 온 힘과 정성을 다해서 지키는 것이다. 그것은 엄청난 근육과 에너지와 자제력과 훈련을 요구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유지가 되지 않는다. 유지한다는 것은 정말 너무나 힘든 일인 것이다. 집도 유지보수라는 게 있는데 하물며 인생에 유지보수라는 게 없겠나? 인생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려면 매번 모든 게 조화롭게 잘 돌아갈 수 있도록 확인하고 캐어하고 돌봐야 한다.


많은 목회자들을 경험하고 지켜보며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어서 빨리 전도사에서 목사가 되고 부목이 되고 중대형교회 담임이 되어서 그 교회에서 은퇴하는걸 인생의 가장 큰 목적으로 삼는 것이다. 마치 우리 어릴 적 대학 가고 직장 잡고 시집 장가가고 집사고 애 낳고 애 대학 보내고 죽는 게 인생의 가장 모범 답안지로 배우고 자란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말이다 삶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하나님이 인생을 그렇게 쉽게 절차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설계하셨음 예수님 안 보내셨을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목회자를 만난 적 있다.

자신의 목회 철학은 그저 지금 있는 이 교회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다음 사역자에게 넘기는 것이 목회의 목적이라 했다. 번아웃되고 지치고 아무 의욕이 없는 목회자가 더 이상 목회를 하면 안 되는데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목사직을 관두지도 못하고 붙잡고 가기 위해서 고안한 변명 같은 거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어떻게 현상태로 유지가 되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는데 하물며 그 살아있는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가 아무것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그 사역을 사약으로 변화시킬 수 있으신 분이다.


현상태로 유지만 하는 것도 영혼을 갈아 넣어야 가능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면 그는 너무 당당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으리라는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마치 연예인들이 20대 몸무게가 50이 되어서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말을 하는 건 타고나서가 아니라 매일매일 저울에 올라가고 먹는 거 조절하면서 운동하면서 피나는 노력으로 자신을 가꿨다는 뜻이라는 걸 우린 알지 않은가? 노력 없이 거저먹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특히 사역에서 나를 버리지 않는 사역이란 존재할 수 도 없고 존재할지라도 거기서 열매가 날 수 없다.


지금 너무 지치고 힘든데 먹고사는 일 때문에 사역을 그만둘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난 감히 말하고 싶다.

하나님의 사역은 교회 밖에서 더욱 많이 활발하게 강력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말이다.


나와 남편은 사역에 지쳐서 나가떨어질 때 교회를 떠났다. 20년 목회만 한 사람이 무얼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너무나 강력한 확신이 있었다. 그건 너무나 강력하고 확실해서 안된다고 할 수 있는 종류의 확신이 아니었다. 우린 떠나야 했고 그게 옳은 것임을 알았기에 떠났다.


하지만 막상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우리 뭘 할 수 있을까?

그렇게 교회를 떠나고 일반 직장인이 되어 일을 시작하자 더 큰 세상을 보게 하셨다. 교회 안에서 우린 우물 안의 개구리로 사역을 했다면 교회 밖으로 나오니 더 크고 거대한 사역들이 이뤄지고 있음을 온몸의 감각으로 다 느끼고 경험하게 하셨다. 사역지가 교회에서 세상으로 바뀐 것이다. 우리가 누비고 비비고 기도하고 찬양할 수 있는 공간과 기회가 더 거대해진 것이다.


너무 지치고 힘들고 더 이상 목회일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면 사역이 사약되기 전에 떠나야 한다. 교회가 생사의 수단으로 변하고 있다면, 사역이 먹고사는 일로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라면 빨리 나와야 한다. 평생 목회만 했기에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한우물 파던 인물들을 데려다가 다른 우물을 파게 하신 경우가 허다하게 많다는 사실 말이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모세가 그랬고 기드온이 그랬고 다윗이 그랬다.


교회를 떠난다고 해서 목회자의 본분을 저버리는 게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름으로 우릴 부르시지 우리의 직함으로 부르시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사역과 받을 수 있는 치유가 교회 밖이라면 나가도 된다는 것이다.


한 우물만 파지 않아도 다른 우물로 옮겨가도 생수는 나온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설교가 아무말 잔치가 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