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야 할 분은 목회자가 아니다
정말 내게 꼭 필요했던 말씀을, 깊은 울림과 터지는 유머로 전해주시던 목사님이 있었다. 물론 그분은 나를 알지 못했지만, 나는 그분이 설교하는 날이면 교회를 찾아가 말씀을 들었고, 팟캐스트로도 설교를 이어 들었다.
그분은 말 그대로 타고난 이야기꾼 같았다. “말씀을 전하는 분에게 감히 이야기꾼이라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설교를 잘한다는 것은 말씀의 내용뿐 아니라 그것을 전하는 방법까지 잘 아는 것이다. 그래서 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은 종종 아이디어 회의를 통해 설교 구조와 예화를 준비한다. 설교의 시작과 끝, 그리고 중간에 들어가는 예화까지도 전체 흐름(Flow)이 자연스러워야 하기 때문이다.
설교에는 전달력도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목소리의 톤과 강약이 맞지 않으면 듣는 이는 힘들다.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를 지르거나, 반대로 목소리가 너무 작아 잘 들리지 않거나, 발음이 부정확하면 집중력이 흐려진다. 긴장과 불편함이 말투에 배어 있으면 역시 방해가 된다. 그래서 말씀을 잘 전하는 목회자들은 전개뿐 아니라 제스처, 말투, 강약, 눈빛, 호흡, 그리고 중간의 쉼까지 신경 쓴다. 이는 목회자뿐 아니라 뛰어난 강연자들이 가진 공통된 재능이기도 하다.
그러나 때때로 그런 이야기꾼의 재능에만 눈과 귀가 빼앗겨, 정작 말씀의 본질에 닿지 못할 때가 있다. 너무 말을 잘하다 보니, 그 말발에 하나님이 가려지는 순간이 있는 것이다.
나는 중학교 시절, 충격적인 설교를 들은 적이 있다. 한 전도사가 “아내의 뺨을 때렸는데 고막이 터졌고, 그 고통을 보며 십자가의 아픔을 떠올렸다”는 식의 아무 말 잔치를 강대상에서 쏟아냈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신학교 출신이었지만, 해도 되는 말과 해서는 안 되는 말을 구분하지 못했다. 그러나 목회자이기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이유로 그의 설교를 공개적으로 비판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13살이었던 나는 그때 속으로 생각했다. “강대상에서 아무 말이나 늘어놓는 이들을 하나님은 어떻게 보실까?”
하나님은 말씀을 준비하는 과정, 그 마음가짐과 태도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계신다. 목사가 직분을 유지하기 위해 남의 설교를 베끼거나, 대충 아무 말을 붙여내는 모습은 언젠가 반드시 물으실 것이다.
“너는 나를 두려워했느냐? 나를 두려워했다면 어떻게 내 백성의 가슴에 상처를 내며 그런 말을 내뱉을 수 있었느냐?”
나는 설교자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다섯 가지 선이 있다고 믿는다.
1.설교는 정치평론이 되어선 안 된다.
정치적 성향을 성경 말씀처럼 꾸며서는 안 된다. 좌파와 우파를 초월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정치판에 끌어들이지 말라.
2. 재해나 사건을 하나님의 분노로 단정하지 말라.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오직 하나님만 아신다. 얄팍한 지식으로 추정하는 것은 오해와 억측과 불안만 낳는다. 하나님은 인간의 얄팍한 추정으로 판단받을 만큼 작지 않으신 분이다.
3. 설교는 하나님이 빛나야 한다.
목회자가 빛나서는 안 된다. 특별히 선택받았다며 자기 잘난맛에 사는 이라면, 그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가 아니라 자기 얼굴을 비출 거울일 뿐이다.
4. 성경을 벗어난 해석을 조심하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성경 한 권이다. 성경만으로도 충분하다. 성경과 무관한 해석을 말씀이라 부르는 것은 목회자의 주관일 뿐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원하지, 목회자의 사견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5. 설교는 신세한탄이나 공격의 도구가 아니다.
목회자의 개인적 하소연은 강단이 아닌 골방에서 하나님께 하라. 하나님이 더 잘 들어주실 것이다. 강단은 성도를 공격하거나 망신주기 위한 자리가 아니다. 하나님은 목회자의 직분을 성도를 공격하는 무기로 주신 적이 없다.
말씀을 잘 전한다는 것은 철저히 하나님만 보이게 하는 것이다. 그 말씀을 통해 성도가 하나님을 더 이해하게 되고, 그분을 더욱 갈망하게 만든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아무말 대잔치는 성경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