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지키지 못한 생명입니다.
말도 안 되는 업무를 하고 과로사로 죽은 직원을 향해 주님의 일을 하다가 목숨을 잃었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교회라는 특수한 장소이자 목적을 지닌 곳에서는 그런 프레임이 가능하다.
"당신은 주님의 일을 하다가 순교 (혹은 순직) 한 것입니다" 식으로 말이다.
교회에서 목회자 혹은 교회에 소속된 직원들은 사명이라는 크고 무거운 단어를 가슴에 안고 산다. 사명자는 아무리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을 하면 안 되는 것이며 힘들다고 말하면 시험 들은 것이며 교회를 떠나면 배신 혹은 믿음이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책임의 무게를 "사명"이라는 이유로 겨우 버티고 견디는 것이 믿음의 크기와 깊이를 보여주는 것이 된다. 이걸 폭력이라고 여기는 이는 없고 오직 사명자가 걸어야할 가시밭으로만 여기니 외롭고 괴롭기만 하다.
생활이 불가능한 사례비를 받아도 사명이라 버티고 담임 목사와 성도의 말도 안 되는 비상식적인 행동과 말 혹은 시비를 경험해도 사명이니까 버틴다. 원래 십자가는 무거운 것이고 내가 지고 가야 하는 것이기에 이런 어려움도 버텨내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노출된 목회자들은 때로 극심한 우울증과 분노장애를 앓는다. 하나님과 가까이 지내는 목회자가 어떻게 정신적으로 아플 수 있단 말인가? 자기 십자가도 제대로 견디지 못하는 못난 목회자로 보일까 봐 혹은 그렇게 표현하는 것 자체가 죄를 짓는 것 같아서 말하지 못하고 치료받지 못하고 끙끙 앓는다. 성도와 다른 목회자들에게 표현조차 할 수 없고 그들의 정신적인 아픔은 오직 그의 아내와 자녀들이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
이런 악순환은 유난히 한국 교회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사명이라는 거창한 표현아래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자에게 군림하는 것이고 이용해 먹는 것이 교회나 사회나 다를게 한 개도 없는 사회적인 구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 그리고 교회가 돌아가는 원동력은 사람을 아끼지 않고 마구 사용하는 데 있다.
You are always replaceable.
너는 언제나 대체 가능한 인력이다.
그러다 보니 대체 불가능한 일꾼이 되기 위해서 영혼마저 갈아 넣고 일을 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사람이 로봇도 아니고 그렇게 영혼까지 갈아 넣으면 체력도 인내도 건강도 신앙도 바닥을 칠 수밖에 없는 거다.
사람을 아끼지 않는 건 교회나 사회나 똑같다.
그렇게 버텨서 담임 목사 자리 얻으면 똑같이 밑에 사역자들에게 행동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나도 그렇게 겪어서 여기까지 왔으니 이건 당연한 "관행"이라고. 사람을 아끼지 않는 게 관행인데 그게 사명이라 불려진다니... 하나님은 이걸 보시고 뭐라 하실까?
진짜 목숨 잃을만한 가치 있는 일에 생명을 바쳤으면 모를까 기도회 방송실에서 과로사로 죽은 건 너무 무가치한 일에 너무 소중한 생명을 물 쓰듯이 마구 쓴 교회의 폭력이다. 그런 폭력을 가지고 순직 같은 소리나 하고 있는 장로의 말은 남은 가족에게 행하는 또 다른 폭력이다.
순직이 아닙니다.
순교도 아니고요...
기도회 방송실에서 과로로 쓰러져간 그의 죽음은 교회가 마구 사용한 의미 없이 소모된 생명, 그리고 교회가 지켜내지 못한 존엄한 죽음이었다는 걸 우린 모두 알지만 쉬쉬한다.
사역자는 그래야 하니까.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그래야 하니까 말이다.
#사역이폭력으로둔갑될때
#생명이중한가기도회가중한가
#사역자도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