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짧다는 11살
“엄마, 난 인생이 너무 짧다고 생각해. 그래서 가치 있는 사람과 일에 내 시간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
당황스러웠다.
넌 이제 겨우 만 열한 살인데 왜 벌써 삶이 짧다고 느끼는 걸까.
설마 나초 이후로 그런 걸 느끼는 걸까 싶어 물었다.
“너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했는데?”
“일곱 살 때부터.”
기가 막혔다.
일곱 살에 이 아이에게 트라우마로 여겨질 만한 무언가가 있었을까. 왜 너는 일곱 살에 삶이 너무 짧다고 느낀 걸까.
아이는 말했다.
시계가 노래하는 애니메이션이었는데 째깍째깍 시간이 흐르면서 시계들이 노래하다가 노인 시계가 멈추는 장면이 있었다고. 그걸 보면서 삶에 주어진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그리고 녀석은 말했다.
내가 가치 있다고 느끼고 중요한 것이라 느끼는 일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지만 내가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일에 시간을 보내는 건 낭비라고. 교통사고가 나서 죽을 수도 있고 숨을 못 쉬어서 죽을 수도 있고 심장마비가 걸려서 죽을 수도 있는데 지금 이 순간 꽉 채워서 시간을 보내야 후회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엊그제 너와 C에게 자신의 어려움을 털어놨던 그 아이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했다.
너는 날 너무 많이 닮았다.
그래서 난 널 쉽게 파악할 수 있지만 동시에 그 칼같음에 적응이 안 된다. 누군가 날 보면 이렇겠구나 싶다.
나 역시도 시간 낭비하는 대화나 사람을 견디기 힘들어하지 않는가. 내게 사랑의 정의란 내 시간을 함께 공유하는 것, 내 시간을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나의 모습을 내 딸이 그대로 물려받아 칼같이 관계를 정립하고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있다고 생각하니 내심 아이가 차갑게 느껴진다.
엄마한테도 그럴까.
언젠가 엄마랑 시간을 보내는 게 낭비처럼 느껴질까.
아이는 말했다.
“엄마랑 나랑은 삶을 함께 보내는 거야. 내 시간을 할애하는 게 아니라.”
넌 참 군더더기 없는 삶을 살겠구나 싶다. 하고 싶은 게 원하는 게 명확한 너에게 난 무얼 더하거나 덜하지 못할 것이다. 아마 그냥 옆에서 널 가장 응원하는 치어리더가 되어 있겠지.
너는 오늘 열한 살 즈음 친하게 지냈던 친구는 누구냐고 물었다. 그리고 너와 C만큼 친했냐고.
친구는 있었지만 너희 둘만큼의 우정은 아니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난 너와 C의 우정이 아주 오래오래 가길 바라는데 그러기 위해선 서로에게 질투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 질투심이 우정을 변질시킬 테니.
그러자 너가 말했다.
“우린 그러지 않을 거야.”
나도 그러길 바란다.
사실 그러기 위해선 지금 네 삶이 충분히 좋아야 한다. 그게 바탕이 되어야 한다. 네 스스로를 아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한다면 누구와 비교하고 속상해하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 네 스스로가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고 사랑받고 있다는 걸 확신하면 잠깐의 질투와 속상함이 존재할지언정 그것이 너의 근간을 뒤흔들지는 않을 것이다.
엄마가 되기 위해서 난 민첩하게 하지만 섬세하게 내 인생을 뒤집고 먼지 털 듯이 터는 과정을 여러 번 거쳤다. 알곡을 빼듯이 내 삶의 에센스를 빼내고 무엇을 달래고 위로하고 버리고 잘라낼 것인지 내 영혼과 마음을 해부했다. 물론 그 과정은 말씀과 기도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렇게 현실적이고 칼같고 생각이 뚜렷한 너도 나가떨어질 만한 아픔도 슬픔도 겪을 것이다. 바닥을 뚫고 지하로 내던져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면 난 정신 바짝 차리고 너보다 더 바닥으로 내려가 널 받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내가 매일 하는 이 기도를 드릴 것이다.
이 아이는 지혜롭고 아름다운 아이니까 꽃처럼 다뤄달라고.
꽃처럼 아름다운 게 너라
너무 거칠게 흔들지 마시고
그러나 약해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훈련하시고 근력을 키워달라고.
애미의 기도를
하나님은 들어주시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