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규어와 줴과~

더이상 시크릿이 아닌 친구에게 주는 선물

by MamaZ


딸아이가 시크릿 산타를 하는 모양이다.


랜덤으로 뽑은 친구에게 다음 주 5일 동안, 매일 작은 선물을 준비해야 한단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미리 적게 했고, 그걸 바탕으로 선물을 준비하는 방식이다. 물론 다섯 날 내내 무언가를 사서 줄 필요는 없다.


카드나 그림 같은 것으로 마음을 전하고, 마지막 날에만 5달러 미만의 작은 선물을 준비하면 된다.


딸아이는 클래스에서 자폐 스펙트럼에 속한 아이를 뽑았다.


그 아이는 잘 웃지 않고, 화를 잘 낸다. 게임처럼 경쟁의 요소가 있는 상황을 견디지 못해 화를 내거나 울곤 한다. 가끔 웃기는 하지만, 다른 아이들과는 웃음의 결이 다르다. 무엇이 이 아이를 웃게 하는지, 쉽게 알 수 없다.


비밀이어야 할 시크릿 산타는 이미 모두가 알게 되었다. 서로에게 말하지 말라며 떠벌리고 다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열한 살에게 비밀이란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


딸아이는 그 아이가 재규어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어제 재규어를 네댓 마리 그렸다. 그런데 문제는 재규어가 아니라 살찐 토끼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날렵함도, 날카로운 눈매도 사라지고 단 한 번도 사냥을 해본 적 없는,냉장고에서 야곰야곰 음식을 빼먹고 살았을 것 같은 통통한 토끼를 그려놓고그걸 재규어라고 했다.


참 웃기게도, 내 딸은 공부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는데 재규어는 못 그린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이게 바로 내 딸아이의 성격이다. 아이는 밝고, 귀엽고, 작고, 통통한 것들을 좋아한다. 그래서 아이가 그리면 무엇이든 귀엽고, 웃고 있고, 통통하고, 작아진다. 아마 아이에게 재규어도 그래야 했던 모양이다. 싸납지 않고, 풀만 먹어도 행복할 것 같은 그런 캐릭터 말이다.


어제 퇴근 후 아이의 재규어 그림을 보다가 꿈을 하나 꿨다.

남편이 어떤 상품으로 진짜 자동차 재규어를 받았다는 꿈이었다.

원어민 발음으로는 ‘줴과~’. 큰 트럭에 실려 온 줴과는 갈색 가죽 시트에, 끝내주는 인테리어와 익스테리어를 자랑했는데 한 사람만 탈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어린이용 줴과였다. 뒤에는 커다란 아이패드까지 달려 있었다.


딸의 재규어는 귀엽고 통통하고 싸납지 않은 토끼 같은데, 중년의 재규어는 갈색 가죽 시트의 진짜 자동차라니. 나는 너무 때가 탔구나 싶었다. 딸아이의 시크릿 산타가 혹시 이런 토끼 같은 그림을 좋아하지 않을지도 몰라

오늘은 아이와 함께 조금 더 ‘진짜처럼’ 재규어를 그려볼 생각이다.


마침 유니볼에서 나온 마이크로 에어라는 펜이 그림 그리기 좋다는 소문이 나서 하나 샀다. 그림도 안 그리면서 왜 펜은 그렇게 사대는가 싶지만, 아니다. 딸아이와 함께 재규어를 그릴 거니까 괜찮다.


그냥 그림이지만, 그 아이의 시크릿 산타가 이 마음을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

통통한 토끼 같은 재규어도, 오늘 나와 함께 그릴 재규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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