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센스 세상을 사는 방법
로마가 지배하던 거대한 제국에는 수많은 민족이 살고 있었고, 그들마다 믿는 신이 있었다. 그 모든 신을 한곳에 모실 수 있도록 지어진 신전이 바로 Pantheon이다. Pantheon이라는 이름은 말 그대로 Temple for all gods, 모든 신을 위한 신전이라는 뜻이다.
로마 제국이 붕괴되고 중세 시대에 기독교가 국교가 되자 Pantheon은 잡신의 신전에서 교회로 탈바꿈했다. 만약 그렇게 변화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Pantheon은 아마 옛날에 불타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시대에 맞춰 기어를 바꾸고, 사용되는 목적에 따라 재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에 그 건물은 살아남았다.
지금은 아무도 Pantheon을 향해 잡신을 숭배하던 신전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교회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그저 로마가 남긴 휘황찬란한 역사와 성취의 상징으로 남아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그럭저럭 착한 건물일 뿐이다.
요즘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정치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너무 많은 일들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고, 한 치 앞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조차 예상하기 어렵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 지금의 이 시기를 역사적으로 되짚어 보는 날이 온다 해도, 많은 역사학자들은 그저 넌센스였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이런 넌센스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는 어떤 기어를 넣고, 어디에 힘을 주고, 어디에서 힘을 빼야 하는지 늘 긴장하며 바라보고 있다. 세상의 흐름에 너무 뒤처져 꼰대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그렇다고 사람다움을 잃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나다움을 붙들고 가되, 내가 가진 신념과 고집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려 한다.
나는 요즘 그런 고집이 무섭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믿는 것이 너무 옳고 곧다고 생각한 나머지,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의견은 들을 가치조차 없다고 판단하는 그런 고집 말이다. 그런 사람들이 리더로 있는 집단은 더욱 무섭다. 그게 정치든 교회든 어디든, 그런 리더가 있는 곳에서는 독단적인 말과 행동으로 다양성 자체를 부정하고 결국 해체하려 들기 때문이다.
마흔을 넘기고 오십이라는 숫자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지금의 나 역시 그런 고집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을 것이다.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무언가가 분명 내 안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타협할 수 없는 기준이 사람을 살리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기를 바란다.
예수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두고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섰다. 어떤 사람에게는 어리석어 보일 수도 있는 행동이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예수가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보여 준다.
예수에게는 집단보다 한 사람의 관계가 더 중요했다.
그래서 나는 집단과 조직과 기관보다 한 사람을 더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쓸데없는 고집과 두려움 때문에 저지르는 실수들이 쌓여 스스로가 너무 못마땅해지지 않도록. 내 얇은 자존감은 지키면서도, 신앙의 자존심은 잃지 않도록. 넌센스가 아니라 상식이 반짝이는 인간으로 살아가도록.
그리고 내게 주어진 자리에서, 내게 오는 사람들에게 친절할 수 있도록.
이 미친 듯한 세상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아마 그것일 것이다.
머리를 들고 가슴을 펴고, 이 말도 안 되는 요즘을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