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ra Westover의 Educated를 권합니다.
Educated를 끝내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 책을 어떻게 다 설명할 수 있을까.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들을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글로 정리해야 할 것 같아 늦은 시간 노트북을 열었지만 감정도 이성도 뒤죽박죽이 되어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조차 모르겠다.
나는 이 책을 딸로서, 그리고 엄마로서 읽었다. 작가는 오직 자식의 시점으로밖에 볼 수 없었고
그 시점으로 경험하고 감당해야 했던 모든 순간을 나는 다시 엄마의 시점에서 Tara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다시 나의 어린 시절로, 남편의 어린 시절로, 또 불행한 유년 시절을 보냈던 수많은 사람들의 자리로 돌아갔다. 어린아이가 되었다가 어른이 되었다가 엄마가 되었다가를 반복하다 보니 내 영혼이 짓눌리는 느낌이 들었다.
부모가 자식에게 휘두를 수 있는 힘은 얼마나 막강한가.
그 힘에 아무런 보호도 없이 노출된 아이들에게 단 한 번도 숨 쉴 틈을 주지 않고 마구잡이로 휘두르기만 했던 아버지. 그리고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라 괴물처럼 변해버린 형제에게서 감당해야 했던 폭력.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끝내 아무 말하지 않았던 엄마. 이렇게 엉망진창인 가족 사이에서 어린 Tara는 자기혐오와 자기 의심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니까. 아버지고 엄마니까 그녀는 몇 번이고 돌아왔고 몇 번이고 손을 내밀었다.
이 책을 읽으며 공지영 작가의 한 문장이 떠올랐다.
부모에게 어린 시절 그토록 받고 싶었던 것을 이제는 스스로에게 주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어른이다.
Tara는 자신의 결핍을 스스로 채웠고 상처를 스스로 꿰매며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어린 시절 받을 수 없었던 것들을 이제는 스스로에게 주면서. 그렇다고 그녀가 과거의 모든 것을 완전히 잊고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었을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는 아마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마음속에서 수없이 되뇌며 자신의 상처들을 저편으로 밀어 두는 일을 여전히 반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족이란 그런 존재니까. 아무리 보지 않고 산다 해도 마음 한편을 저릿하게 만드는 존재니까.
엄마의 시점으로 Tara를 바라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딸에게 눈이 갔다.
우리는 부모의 자식 사랑은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여기면서 자식의 부모 사랑은 그보다 가벼운 것처럼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 딸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사랑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단단하며 뜨겁다는 것을 말이다.
그 사랑을 역으로 이용해 폭력으로 사용하는 부모들도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게 역으로 이용할 때 공포와 불안을 아이에게 꾸역꾸역 떠먹이는 것과도 같다. 그래야 말을 잘 듣고 고분고분해질 것도 안다.
그래서 더욱 내 입과 행동이 아이 앞에서 조심스러워진다.
나는 내가 사랑하고 싶은 방식이 아니라 내 아이가 사랑받고 싶어 하는 방식으로 사랑하고 싶다.
그래서 내 아이가 자라서 나의 사랑 때문에 결핍을 느끼지 않기를 바란다.
내 사랑이, 내 주장과 확신이, 혹시라도 내 딸에게 폭력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더 배우려고 한다.
내가 믿고 붙잡고 사는 것들을 계속해서 확인하려 한다.
이것이 정말 좋은 것인지 선한 것인지 옳은 것인지.
그리고 만약 그 어떤 것이든 누군가에게 생채기를 낼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이 폭력이 되고 아집이 되고 비상식이 되기 전에 과감히 잘라낼 수 있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