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향한 나의 애도 이후
20년 넘게 나의 선생이자 멘토였고, 가족과도 같았던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났을 때 내가 느낀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존경할 만한 어른이 많지 않았던 내 삶 속에서 당신은 몇 안 되는, 진짜 어른이었다.
나는 당신을 깊이 사랑했고 진심으로 존경했다.
당신과 주고받았던 수많은 이메일을 다시 읽고 당신이 남겨두었던 보이스메일을 들으며 나는 당신을 붙잡듯 기억했다.
당신을 보낸 지 일 년이 되는 날, 그때의 감정이 다시 한 번 소용돌이처럼 밀려왔다.
그날만큼은 당신의 아내 혼자 보내게 할 수 없어 우리 가족은 긴 시간을 운전해 그녀를 찾아갔다.
슬픔이 내 몸을 빌려 쓰면 이런 것일까.
당신의 집으로 가는 그 길에 나는 지쳐 있었고 불면은 지난 며칠 동안 나를 여러 조각으로 찢어놓은 것 같았다. 글을 쓰고 싶었지만 쓸 수 없었고 생각하고, 묵상하고, 정리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당신의 집은 더 이상 내가 알던 모습이 아니었다.
소파의 위치도, 작업실 테이블의 자리도 바뀌어 있었고 씨디와 오디오로 채워져 있던 벽은 이제 당신의 그림과 액자로 채워져 있었다.
늘 차를 마시던 그 테이블 위에는 맞추다 멈춘 퍼즐이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우리를 반기던 위니는 낯설어했고 당신의 아내는 일 년 전보다 더 늙어 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집을 바꾸어야만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퍼즐이라도 맞추지 않으면 그 시간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생각이 들자 내가 느끼는 슬픔은 그녀의 슬픔 앞에서 너무 작게 느껴졌다.
그녀는 당신이 우리에게 차를 내어주던 그때처럼 같은 컵에 차를 따르고 같은 방식으로 바나나 빵을 잘라주었다. 일 년 만에 다시 만난 우리는 울지도, 눈물을 그렁이지도 않았다.
마치 당신이 잠시 동네에 나간 것처럼 너무도 자연스럽게 다시 이어졌다.
우리는 지난 일 년을 어떻게 보냈는지 나누었다.
당신 없이도 시간은 흘렀고 많은 일이 있었지만 슬픔과 그리움은 여전히 일상 속에 조용히 묻어 있었다.
지하실로 내려가자 당신의 작품들이 너무도 정성스럽게 보관되어 있었다.
처음 당신의 작업실을 찾았던 그날부터 지금까지 나는 수없이 당신의 작품을 보아왔지만 그때는 당신이 살아 있었다.
이제는 당신은 없고 작품들만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울었다.
그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슬픔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숨을 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지는 느낌.
마치 슬픔이 안쪽에서 나를 조용히 조이고 있는 것 같았다.
당신의 아내는 가져가고 싶은 작품이 있으면 가져가라고 했다.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했던 우리 가족에게 남겨진 당신의 조각이라고 말했다.
나와 딸아이, 그리고 남편은 각자 마음에 와 닿는 작품을 골랐다.
나는 오래전부터 당신의 작업실에서 바라보던 그 작품을 골랐다.
작품 뒤에는 당신의 이름과 연도, 그리고 제목이 적혀 있었다.
Evidence, 2001
Joseph Bernard
그렇게 우리는 당신의 조각을 우리 집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나는 남편과 함께 당신의 이야기를 나눈다.
당신의 손길과 숨결이 남아 있는 작품이 내 공간을 차지하자 슬픔은 조금 다른 모양으로 변해갔다.
그것은 당신의 작품의 제목처럼 당신이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당신의 조각은 우리의 조각들 사이에 놓여 조용히 우리와 함께 살아가며 나를 위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