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은 조용해졌고, 교회는 시끄러워졌다

우리는 지금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보고 있는가

by MamaZ

학기 중에 나는 학생들에게 꼭 미술관에 다녀오길 권한다.
직접 가서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을 눈으로 보고, 그 색감과 붓질이 만들어낸 거친 표면에서 느껴지는 생동감을 꼭 경험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평생 처음으로 내 수업을 듣고 미술관에 다녀왔다는 한 학생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마치 미술관은 교회 같았어요. 영적인 존재가 그곳에 있는 것처럼 사람들은 조용히, 아주 고요하게 작품을 감상하더군요. 미술관이 교회 같을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거든요.”


그의 말을 들으며, 정확히 누가 어디에 썼던 글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비슷한 문장을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요즘 미술관은 점점 교회 같아지고, 교회는 점점 콘서트장처럼 변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말에 깊이 공감했었다.


그렇다. 미술관은 교회 같다.

여기서 말하는 ‘교회 같다’는 것은 중세 시대 교회 내부에서 스테인드글라스와 성화들이 뿜어내던 아우라 앞에서 자연스럽게 고요해질 수밖에 없는 그 분위기를 말하는 것일 것이다. 조용하고, 고요하며, 낮은 웅성거림은 있지만 그 누구도 큰 소리로 떠들 수 없는 그 조심스러움이 미술관에도 존재한다. 다른 사람이 작품을 바라보고 있는 순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자연스럽게 몸을 낮추고, 목소리를 줄인다. 그래서 미술관이 교회 같다고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혹은, 미술이 본질적으로 영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 이 주제는 나중에 따로 더 깊이 쓰고 싶다 — 관객과 작품이 마주할 때 서로 주고받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있어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다.
나 역시 작품을 보다가 눈물을 흘린 적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정작 현대의 교회는, 오랜 시간 이어져 온 그 영적인 고요함을 버리고 왜 콘서트장과 같은 모습을 취하게 되었을까. 교회는 어쩌다 엔터테인먼트 방식의 예배를 드리게 되었을까. 관객이 객석에 앉아 쇼를 보듯 경험하는 이 ‘관람’의 방식이 과연 예배라고 할 수 있을까. 그 안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고조된 감정일까, 아니면 영성의 또 다른 형태일까.


처음 미국에서 초대형 교회를 방문했을 때 받았던 충격은 상당했다.

설교자가 서는 자리는 하나의 ‘무대’처럼 꾸며져 있었고, 성도들이 앉는 공간은 층층이 쌓인 ‘방청석’처럼 보였다. 그 구조는 마치 콜로세움을 연상시켰다. 멀리 앉은 사람들도 설교자의 얼굴을 볼 수 있도록 벽마다 커다란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었고, 예배가 시작되자 찬양 인도자는 전문 가수처럼 노래를 이끌었다. 프로페셔널한 연주와 화려한 조명은 콘서트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설교자는 단정한 옷차림으로 무대를 오가며, 마치 스탠드업 코미디처럼 매끄럽고 유려한 말솜씨로 메시지를 전했다. 적절한 타이밍에 웃음을 이끌고, 또 적절한 순간에 박수를 끌어내는 구성은 매우 완성도 높았다.


그 공간에서 나는 예배를 드리고 있다기보다 무언가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교회가 콘서트장처럼 변하고 있다는 말에 나는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화려한 조명과 악기,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는 찬양, 두 손을 들고 서서 부르는 노래 속에서 감정이 고조된 후 설교를 듣는 흐름은 오늘날 많은 교회의 전형적인 예배 형식이 되었다.


그러나 그 안에서 깊은 영적 경험을 하기는 오히려 더 어려워진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매우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나는 감정에 호소하는 찬양 예배를 좋아하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의도적으로 눈물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예배를 불편하게 느낀다. 그런 환경에서 감정적으로 반응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 목이 터져라 외쳐야만 할 것 같은 압박은 내 신앙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예배는 ‘드려져야 한다’고 믿는다.


몇만 명이 모이는 교회이든, 두세 사람이 모이는 자리이든 예배는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아들까지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떠올리고 그 앞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보며 지혜와 힘을 구하는 하나님과의 대화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순간이며, 교회는 그 개인적인 여정을 함께 감당해 가는 공동체라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예배를 공연처럼 만들고, 유명한 목사를 초청해 부흥회를 열고, 기독교 연예인을 초대해 간증 집회를 여는 방식에 대해 여전히 조심스럽고, 때로는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다.


나는 조용한 공간을 좋아한다.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고 감정을 끌어올리지 않아도 되며 오직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말과 침묵이 오가는 그런 자리. 어쩌면 미술관에서 작품 앞에 서 있을 때처럼, 아무 말 없이 오래 바라보는 그 순간처럼 예배는 그렇게 드려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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