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소비될때

복음은 웃음거리가 아니다.

by MamaZ

닌자 거북이는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천재 작가들의 이름을 가져다가 만든 캐릭터다. 여기서 도나텔로 는 가장 나이가 많은 작가로, 르네상스 초기의 대표적인 조각가이다. 그로부터 약 50~70년 뒤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그리고 라파엘로 산치오 같은 천재적인 작가들이 줄지어 등장하는데, 그중 막내가 바로 라파엘이다.


라파엘은 당시 빼어난 외모와 부드러운 성품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심지어 미술사 책을 처음 체계적으로 정리한 조르조 바사리는 라파엘에 대해 사람뿐 아니라 동물에게도 사랑받는 인물이었다고 표현했다. 그런 성품과 외모에 이끌린 여성들이 많았고, 그는 천재 화가로서 명성을 얻는 동시에 여러 연애 스캔들로도 자주 언급되었다.


그 많은 여성들 중 한 명이 바로 마르게리타 루티 이다. 라파엘과 루티는 깊은 관계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후대에 전해지는 이야기 중에는 두 사람이 관계를 가진 후 라파엘이 열병에 걸려 사망했다는 내용도 있다. 물론 이는 역사적으로 확정된 사실이라기보다는 당시 기록과 소문이 섞인 일종의 ‘그러카더라’ 이야기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라파엘은 겨우 3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지만, 그가 남긴 작품은 르네상스의 정점이라 불릴 만큼 완성도가 높다. 일부 학자들은 그의 죽음을 기점으로 르네상스가 저물고 매너리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그의 작품 중 생애 마지막 작품이자 미완성작인 Transfiguration, 한국어로 그리스도의 변용이라 불리는 작품이 있다.


예수는 모세와 엘리야 사이에서 하늘 위에 떠오른 채, 신적인 모습으로 변화된 상태를 드러낸다. 그 뒤로는 밝은 후광이 화면 상단을 비추며, 마치 천국의 문이 열린 듯 예수의 주변을 환하게 밝힌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다.

Transfiguration_Raphael.jpg

하지만 아래에서는 전혀 다른 장면이 펼쳐진다. 귀신 들린 어린아이를 두고 제자들은 어쩔 줄 몰라 당황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고 손짓하며 어떻게든 해결해 보라고 제자들을 다그치지만, 제자들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예수가 있을 때는 그에게 묻고 기대면 되었지만, 지금 그들 곁에는 예수가 보이지 않는다. 제자들의 어깨에는 무거움이 내려앉고, 그 무게는 곧 두려움으로 바뀌는 듯하다.


이 작품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세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완전하고 초월적인 예수의 세계,
그리고 혼란과 무기력 속에 있는 인간의 세계.

이 두 세계를 한 캔버스에 담아낸 라파엘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종교개혁의 시대, 유럽은 혼란 속에 있었고 교회는 철저히 나뉘어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누고 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던져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예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예수 없이 바로 설 수 있는가.”




얼마 전 한국에서 부활절 행사로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을 B급 감성으로 표현한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어울리지도 않는 갈색 가발을 쓴 배우가 크레인에 매달린 채 공중으로 떠오르는데, 처음에는 웃음이 터졌다. 제자들도 만나지 않고 바로 승천해버리는 설정도 웃겼고, 그 높은 곳에 매달린 배우는 고소공포증이 없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그 영상은 전 세계적으로 퍼지며 화제가 되었다. 그것이 목적이었다면 성공이다. 웃음을 주는 데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복음을 전하려 했다면, 그건 실패다. 그 장면을 보며 예수를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까.


며칠 뒤에는 미국 대통령이 예수와 유사한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장면을 소셜미디어에 올리기도 했다. 그는 그것이 의사의 모습이라고 설명했지만, 이미지보다 해석이 더 낯설고 기묘하게 느껴진다.


이런 장면들이 라파엘의 그림과 겹쳐 보였다.

예수가 없는 자리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제자들,
그리고 그 공백을 메우려는 과잉된 몸짓들.

질서는 사라지고,
혼란은 커지고,
사람들은 더 크게 외친다.


그리고 그 순간, 예수 없는 세상이 이런 모습이란걸 알게된다.


우리에겐 얼마나 절실하게 예수가 필요한가!


불안과 근심을 잠재워 줄 예수,
흐트러진 기준을 다시 세울 예수,
아픈 이들을 어루만질 예수,
그리고 복음을 가볍게 소비하지 않는 예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짜 예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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