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 잡러의 미술관
그날은 따뜻한 국물이 생각나는 날씨였다.
하루종일 병원에서 시달린 나는 점심시간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았기에 전화기를 엎어놓고 점심 식사를 하고 있었다. 식사를 다 마치고 병원문에 들어서자 병원 직원은 내게 도움의 눈길을 절실히 보내고 있었고 작은 목소리로 문자를 확인했냐고 묻는다.
아니...
내 앞에는 점잖아 보이는 백인 노인이 서있었고 안절부절못하는 직원은 내 옆에서 상황 설명을 하며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고 있지만, 노인은 도저히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으로 서있다. 마치 길을 잃은 아이 같은 순수함이 묻어있는 표정이지만 아이의 순수함이라고 하기엔 무언가 어눌했고 모자랐다.
직원을 보내고 그에게 다시 천천히 설명을 했다.
"지금 가지고 있는 보험은 저희가 받지 않아요. 이 보험은 다른 병원 가셔야 해요."
"하지만, 이 보험은 모든 곳에서 다 된다고 했어요"
"아니에요. 이 보험에 이렇게 쓰여있는 건 이걸 받는 보험만 가셔야 한다는 뜻이에요"
"그럼 이거는 받나요?"
그는 또다시 똑같은 보험카드를 꺼내 같은 말을 반복하고 나 역시도 반복을 한다.
도돌이표처럼 주고받는 똑같은 대화.
흐리멍덩한 눈빛.
대화의 이해를 모두 놓치는 그에게서 답답함 보다는 안쓰러움이 느껴졌다. 그는 대화 능력이 떨어졌고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해 보였다.
그렇게 그는 다시 돌아갔고 일주일 뒤 다시 병원을 찾았다.
"여기 제 보험을 받죠?"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가지고 계신 보험은 받지 않아요. 여기 번호로 연락하셔서 이 보험 받는 곳으로 가셔야 해요."
"이 보험은 다 받는 보험이에요. 이거 봐요"
나는 지난번 보다 더 친절하게 더 또박또박 설명을 하였지만 지난번처럼 똑같이 반복을 하고 또 반복을 하였다.
어쩌면 그는 치매를 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 그가 내게 물었다.
"여기 어디죠? 내가 어느 문으로 들어왔는지 기억하나요? 혹시 내가 차를 어디에 주차했는지 알아요?"
길을 잃은 어린아이 같은 노인이 내 앞에 서있었다.
왜 그는 혼자인가?
이가 듬성듬성 있던 76세의 노인은 혼자였고 헤매고 있었지만 어떻게든 스스로를 잘 건사하고 싶어 모든 노력을 다 쏟아부으며 병원을 찾아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다.
"주차는 어디다 하셨는지 제가 모르지만 여기 문으로 들어오셨어요. 그리고 여긴 치과예요"
그는 문을 나섰고 내 안쓰러운 마음도 그를 쫓는다.
Andrew Wyeth의 그림이 한참 나의 프로파일 사진이었다. 그의 작품은 색채가 화려하지 않다. 흙빛처럼 느껴질 정도로 earth tone의 색감이 많다. 빛이 바랜듯한 느낌, 외로움과 페인트를 함께 섞어 칠했을 것 같은 고독함이 작품 하나하나에 묻어 있다. 그 어떤 음악조차 뒷배경에 흐르면 안 될 것 같은 적막함을 그린 그는 Christina's world라는 작품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을 묘사하였다.
그가 그린 Christina는 다리를 쓸 수 없는 장애를 가지고 있었지만 휠체어를 거부했다.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아 팔로 자신의 몸을 질질 끓어가며 이동을 했는데 그 모습을 작가는 매우 독특한 상황을 집어넣어 묘사하였다.
Christina는 바닥에 주저앉아 멀리 위치한 집을 바라본다. 집은 너무 멀리 있고 몸은 불편하다. 그녀가 몸을 옮길 때마다 마찰로 인해 손과 다리는 돌과 흙에 짓무를 것이고 상처가 날 것이고 피가 날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그 집에 도착하는 순간 상처는 피나는 투쟁이자 승리의 흔적이 될 것이다. 이것은 그녀가 할 수 있다 없다의 문제가 아닌 그냥 해야 하는 주어진 투쟁의 삶이다.
매일 투쟁과 승리의 흔적을 몸에 새기는 그녀에게 박수와 격려를 보내야 하는 게 맞는데도 작품을 보는 이들은 그녀를 향한 안쓰러움을 숨길 수 없다.
왜 그런 걸까?
그것은 어쩌면, 그녀의 투쟁은 그 누구의 것 보다 고되고 어렵기 때문 일 것이다. 두 발로 걷고 뛸 수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 그녀에게는 전쟁이자 투쟁이자 외로운 싸움이 되기 때문이다.
Andrew Wyeth의 작품은 Christina의 안쓰러움을 그린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투쟁을 그린 것인지도 모른다. 요즘 말대로 꺾이지 않는 마음을 그린 작품일지도 모른다. 작가가 그린 그림처럼 우리 모두는 필사적으로 저 멀리 있는 집, Final destination 즉 종착점으로 향해간다. 나름의 어려움과 고통을 탑재한 체 가고 있다.
그 노인이 무사히 집에 갔을지 모를 일이고 그의 보험을 받는 병원을 찾았을지 모를 일이다.
빠른 시일 내 그는 아마도 운전대를 내려놓아야 할지도 모른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들고 정신이 흐릿해질 때마다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꼭 가야 하는 곳에 있어야 하는 곳에 도움 받아야 하는 곳에 있길 바라본다.
나도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있어야 하는 곳에, 해야 하는 일을 하며, 가야 하는 곳에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