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잡러의 미술관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내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를 키우기 시작했다. 개는 잘 키울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원을 졸업한 해 10월 우연히 들어간 애견샵에서 녀석을 보았다. 치와와랑 닥스훈트가 섞여 치위니 혹은 멕시칸 핫도그라 불리는 녀석이었다. 몸매는 분명 닥스훈트인데 다리는 길었고 얼굴 모양은 닥스훈트 같지만 눈, 코, 입은 또 치와와 같았다. 무언가 애매하게 생겼는데 얼굴이 참 예뻤다. 그리고 그 애매한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그렇게 녀석은 내 가족이 되었다. 이제 막 12개월이 지난 녀석은 정말 에너지가 넘쳤다. 지칠 때까지 뛰어놀면 집어 들어도 모를 정도로 곤히 잠이 들었다. 눈이 오던 날 밖에 산책을 갔다. 평생 처음 보는 눈이 너무 신기하고 무서워서 나와 남편의 다리 사이로만 걷던 녀석이 이내 너무 신이 나서 눈 위를 뒹굴었다.
녀석은 순했다. 나와 남편만 있음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그렇게 평안하게 잠을 자고 놀았다. 잠을 자도 우리 곁에서 놀아도 우리 곁에서 있었던 녀석은 정말 사랑스러웠고 나에겐 정말 자식 같은 존재가 되었다.
결혼 10년 만에 아이가 생겼다. 집안에 아기가 생기자 녀석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질투의 존재로 여기지 않고 보살펴야 하는 존재로 느꼈던 것 같다. 아기가 울면 뾱뾱이 장난감을 물고 와서 울고 있는 아기 침대에 놔주곤 했다. 그럴 때면, 녀석이 고맙기도 했지만 짠하기도 했다. 아기가 걸음마를 하고 녀석을 만지려 들면 그걸 또 다 받아준다. 녀석에게 배를 내보이고 아이의 무릎을 베고 눕기도 했다. 그럼 아이는 녀석을 쓰다듬어주고 안아주곤 했다.
늘 사이가 좋았던 것은 아니다. 간식을 손에 쥐고 먹는 아이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빠른 속도로 아이의 손에서 간식을 낚아채 먹었고 아이는 그런 녀석의 털을 쥐어뜯고 화를 냈다. 매일 이런 일은 반복되었고 아이는 울고 녀석은 매번 승리했다. 녀석이 아이의 간식을 뺏어 먹으면 아이는 화가 나서 녀석의 밥통과 물통을 먹으려 했고 나는 그때마다 기겁을 하며 못하게 막아야 했다. 아이는 말을 배우기 시작했고 녀석이 간식을 노리거나 뺏으면 울면서 "나초 쓰레기통에 버려!" "나초 할아부지 집에 줘"라고 소리를 지르곤 했다. 하지만, 아이가 크면서 간식을 뺏어 먹을 기회는 점점 줄었고 아이는 더이상 쉽게 얕볼 수 없는 상대로 성장했고 녀석은 그만큼 늙어갔다.
녀석이 14살이 되던 봄날이었다.
밥그릇의 밥이 그대로 있던 날,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다.
왜... 밥을 안 먹지?
그때부터 녀석은 달라졌다.
더 이상 집에서 우리를 반기지 않았다.
우리가 집에 왔는지 나가는지도 몰랐다.
간식이 가득한 봉지를 뜯어도 달려오지 않았다.
"나초! 나초야! 나초!! 나초야~"
이름을 아주 크게 여러 번 부르지 않는 이상 못 들었다.
하루 23시간 하고 40분을 자는 것 같았다.
산책을 힘들어했다.
다리를 절뚝거리기도 했고 계단 앞에서는 망설였다.
녀석은 늙었고 그만큼 기력도 쇠하였고 기능도 예전 같지 않았고 그만큼 녀석이 우리 가족과 함께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예전에도 얘기했지만 현존하는 작가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David Hockeny다. 그가 선택한 색감, 그가 그리는 풍경화는 내게 위로가 된다. 하지만, 특히 개인적으로 그의 Dog Days 시리즈를 좋아하는데 이유는 나초와 작가가 기르던 닥스훈트 Stanley와 Boodgie의 모습이 너무나 비슷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사랑스러운 강아지들이 어떻게 자고 움직이고 활동하는지 유심히 바라보고 작품으로 남겼다.
도넛처럼 몸을 동글게 말고 잠든 모습, 배를 벌러덩 보이며 깊이 잠든 모습, 긴 몸과 배가 유난히 돋보이게 옆으로 누워 자는 모습을 보면 작가의 그림 속에 우리 집 나초가 보인다.
같아 보여도 다른 모습으로 달라 보이지만 참 비슷한 모습으로 잠든 녀석들의 모습 속에 평화로움이 느껴진다. 그리고 생명력 즉 살아 숨 쉬고 움직이고 활동하고 본능에 의해 감정에 의해 결정하는 모든 행위가 생동감 있게 표현되었다는 것이 좋았다. 작가는 녀석들과 함께하는 모든 순간들을 간직하고자 작품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매우 세심하게 바라보고 화폭에 옮겼다.
나초 역시 저렇게 잠을 잔다. 요즘은 도넛처럼 몸을 돌돌 말아서 잠들지만 정말 피곤한 날에는 누가 잡아가도 모를 모습으로 곤히 잠드는데 그때는 벌러덩 누워 배를 보인다. 가끔 꿈까지 꾸는데 그때는 네발을 움직이며 끙끙거리다가 짖기도 한다. David Hockney의 그림 속에서 보면 나초와 너무 비슷하니까 내게는 위로가 된다. 작가는 90년대 키웠던 애완견들을 따뜻하고 소중한 추억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작품으로 남겼다. 어쩌면 그건 작가가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방법으로 그들을 추억하는 일일 게다.
올 8월 나초는 15살이 되었고 나흘 전부터 소변을 참지 못하고 실수를 하기 시작했다. 매일 어딘가에서 실수를 하고 녀석은 민망한지 구석으로 피한다. 오늘도 딸아이의 방에 실수를 했지만 딸아이는 녀석에게 화를 내지도 않는다. 우린 모두 이 녀석이 우리와 함께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기에 그 누구도 화를 내거나 귀찮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날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다가오는 건 알지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런 날이 다가온다.
내 20대 30대 40대를 함께 보낸 녀석을 나는 글로 추억을 남겨본다.
아직 넌 살아있으니까 너무 슬프지 않게 하지만 많이 안타까운 맘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