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노래

노동이 낭만스럽진 않다.

by MamaZ

글이 쓰고 싶어 죽을 맛이었고 돈을 버느라 죽을 맛이다. 정말 쉼 없이 달리고 있다. 먹고사는 일은 왜 이리 고달픈 걸까? 좋아하자는 일을 하자니 돈이 없고 잘하는 일을 하자니 좋아하는 일을 할 시간이 없다.


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가면 일주일이 후다닥 지나간다. 그 일주일이 다시 한 달이 되어 도망치듯 가버린다. 시간을 음미하고 싶은데 그냥 스치고 지나가버린다. 이건 마치 어린 시절 엄마가 마시다가 남겨준 바카스와도 같다. 박카스를 먹기 위해 눈을 크게 뜨고 기다리는데 막상 입에 넣으면 한 모금은커녕 몇 방울이 혀에 닿는다. 아무리 병을 물고 흔들어도 없다. 새콤한 맛만 느낄 뿐 채워짐이 없다. 그게 요즘의 나다. 모든 것이 스치듯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다.


고되게 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목 빼고 엄마를 기다린 아이가 나를 맞는다. 아이는 혼자였던 시간을 보상받아야 하기에 날 놓아주질 않는다. 얼마나 짠한가. 아이를 재우면 온전히 나의 시간인 것 같지만 내 몸은 제발 좀 쉬자고 잠을 좀 자라고 보챈다.


오늘만큼은 꼭 글을 쓰리라 마음을 먹자 작가 Jules Breton의 작품 The Song Of The Lark의 작품이 생각났다. 종달새의 노래라는 작품인데 꽤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준 작품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 작품을 본 작가 Wiler Cather는 작품의 제목으로 책을 썼고, 유명한 배우 Bill Murry는 이 작품을 보고 깊은 감동과 영감을 얻어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The Song of the Lark, Jules Breton

시카고 미술관에 갔을 때 사실 꽤 큰 기대를 하고 이 그림을 보았으나 이 그림을 칭송했던 이들과는 달리 큰 감동은 없었다. 나는 그냥 그녀가 너무 고되게만 보였다. 막 해가 뜨려는 새벽, 아무리 한 여름에도 선선한 공기가 느껴질 그 시간 종달새는 울고 여자는 떠오르는 해를 등지고 어딘가를 보고 있다. 신발도 없이 맨발로 흙을 밟고 입은 반쯤 벌린 채 손에는 낫을 들고... 그 어디에서도 나는 희망을 볼 수 없었는데 어떻게 다른 이들은 이 작품을 통해 힘을 얻고 영감을 얻었을까?


지독하게 일을 해야 겨우 먹고살 수 있는 현실에서, 배부르게 먹는 게 소박한 꿈이었을 그 현실에서 어떤 희망을 가져야 하루가 버텨졌을까?

낭만을 마음에 품은 이들에게 이 그림은 어쩌면, 점점 떠오르는 해에서 희망을 보고 종달새의 노래에서 희망을 보고 밝아지는 하늘을 보며 희망을 봤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낭만은 노동의 고됨을 달래주진 않는다.


The Stone Breaker, Gustav Courbet

Realism의 아버지, Courbet의 유명한 작품 The Stone Breaker는 노동에 관해 그 어떤 필터를 사용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였다. 허름한 옷을 걸쳐 입은 두 남자는 관객을 쳐다보지도 않고 일에만 집중하고 있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이는 좀 더 나이가 있어 보이고 왼쪽에 있는 이는 무거운 돌을 나른다. 좀 더 힘이 있는 인물이 무거운 돌을 들고 나르면 성치 않은 무릎을 꿇고 돌을 잘 개 잘 개 쪼갠다. 매일 반복되는 노동 그리고 대물림되는 가난에 대해 작가는 이야기한다. 그 어떤 낭만도 가슴 뭉클해지는 감동도 없다. 건조하기만 하다.


노동과 낭만이 만나면, 제삼자의 눈으로밖에 체험할 수 없다. 하지만, 노동 자체만을 이야기한다면, 그것만큼 정직한 것이 없다. 크고 작고 미세한 근육의 움직임과 빠른 두뇌 회전으로 일궈내는 성과, 그 안에서 느끼는 보람과 보상. 꿀잠과 꿀맛 식사. 물론 힘들지만, 일을 끝내면 오늘도 잘 버텼다, 잘했다 하며 스스로를 토닥일 수 있게 된다. 오늘 하루도 "참 잘했어요" 도장을 꾹 하고 받아내는 것으로 오늘 하루의 노동을 마감한다.


내 노동의 노래는 종달새의 울음이 아닌 이른 아침 알람 소리와 아이의 뒤척임과 낮게 들리는 남편의 숨소리다. 그 소리가 낭만스럽진 않지만, 그래도 나를 움직이게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싸구려의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