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소중한 이유는 죽음 때문이다
시작은 직장 동료의 사촌이었다.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에서 사고사를 당했다고 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사고였고 죽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일주일 뒤 오후 늦은 시간 다급한 전화 한 통을 받은 다른 직장 동료는 서둘러 퇴근을 준비했다. 처남이 응급실에 있다는 소식이었다. 예전부터 안 좋았던 몸이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는지 응급실에서 콤마 상태라며 24시간을 넘기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그의 나이가 겨우 43였다. 다시 일주일 뒤 이제 겨우 24살이 되었던 녀석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내가 가르쳤던 학생의 가정이었다. 눈에 선한 그 가정의 소식은 매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아이의 장례식이 나흘이 지난 오늘 잘 아는 언니의 아버님 부고 소식을 접했다. 먼 나라에서 봉사활동 하시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였다. 내 주변 사람들도 너무 잘 아는 두 가정의 각각 다른 부고 소식은 마치 슬픔 위에 슬픔을 덧씌우는 것 같았다. 이제 막 장례식을 마쳤는데 또 다른 장례식을 치르고 참석해야 하는 이들은 무거운 공기에 숨이 턱 막힐 지경이다. 못된 장난 같은 타이밍이고 상상하지도 못한 일로 인한 사망이었다.
4주에 걸쳐 국적과 나이가 다 다른 4명의 부고 소식을 접하자 혼란스러웠다. 삶은 왜 이리 잔인하며 삶은 왜 이리 견고하지 못하며 삶은 왜 이리 쉽게 깨지는가... 죽음은 예상하지 못한 때를 노려 찾아왔고 아무도 그것을 준비할 수도 피할 수도 없었다. 뒤에서 아무도 모르게 갑자기 들이닥쳐 버리는 죽음은 살아있는 자들을 무방비 상태로 만들어 버리고 좌절하게 만든다. 죽음은... 그런 것이다.
강의를 하면서 꼭 한 번은 이야기하는 주제는 삶과 죽음이었다. 수많은 작가들은 죽음에 관해 깊은 명상을 했다. 그들에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 여겼기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 혹은 죽음으로 인한 슬픔에 관해 작품을 만들었다. 작품에 죽음이라는 주제를 넣자 하나의 알람이 되어 관객들을 만난다.
우린 언제가 모두 죽음을 마주 할 것입니다.
Gustav Klimt의 작품 Life and Death는 매우 흥미로운 visual weight 즉 시각적 무게를 만들어 낸다. 작품은 전반적으로 반대되는 색을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눴다. 죽음을 뜻하는 어둡고 차가운 색을 배치했고 오른쪽에는 삶을 나타내는 알록달록한 밝은 색을 배치했다. 삶을 뜻하는 쪽에는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하나의 덩어리처럼 모여있다. 살아있는 이들의 표정에는 평화로워 보인다.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의 모습과 아기와 얼굴을 맞댄 소녀의 모습은 앞으로 펼쳐질 핑크빛 미래에 부푼 기대감을 느끼게 한다. 덩어리를 이룬 그 누구도 왼쪽에 위치한 죽음을 바라보지 않는다. 두 눈을 감은체 꿈을 꾸거나 고개를 숙인 채 고뇌하는듯한 제스처를 취하거나 관객의 얼굴을 바라본다. 마치 영원히 살 것 같이 말이다.
하지만, 죽음의 시선은 오직 삶을 향해 있다.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언제 어떻게 어느 시기에 짠하고 나타나서 살아있는 자들을 어떻게 놀라게 할지 고민을 하는듯해 보인다. 앞으로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아무것도 모르는 삶의 덩어리는 알 수가 없다.
세상의 모든 생명은 늘 죽음과 함께 태어난다. 하루살이는 하루의 시간이 주어지고 인간에게는 몇십 년의 시간이 주어지고 거북이에게는 몇백 년의 시간이 주어진다. 그리고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는 순간 죽음으로 향한다. Klimt는 그것을 말하고 싶어 한 것 같다. 죽음을 피할 수 없고 늘 곁에 있으니 죽음을 의식하며 살라고 말이다.
출근길 유명 강사의 강의를 들으며 갔다. 마흔에 가져야 할 생각과 계획에 관한 강의 속에 씩씩함과 꺾이지 않는 마음이 마흔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 안에 죽음이 날리는 커브볼과 건강이 던지는 커브볼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에 대해선 없었다. 오직 삶만 존재하고 죽음은 없는 삶이 가능할까?
삶은 죽음을 인식할 때 priority 즉 우선순위가 바뀐다.
삶은 죽음을 마주할 때 그가 무엇을 이루었는지보다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가에 집중한다.
죽음은 삶을 깊이 있게 만든다.
놔야 할 것과 붙잡을 것을 알게 한다.
죽음이 생각보다 멀지 않다는 걸 알면 소중한 것을 곁에 둘 것이다.
그걸 알았던 Gustav Klimt는 죽음을 매우 가까이에 그려 넣었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