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잡러의 미술관
예수를 죄인이라 여기는 자들과 예수를 구세주로 여기는 자들이 한 곳에 모였다.
예수는 죄인이고 그는 죽어야 마땅하다고 여기는 이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눕히고 못을 박아 언덕으로 옮기고 있다. 통나무로 만든 십자가는 매우 무거웠을 것이다. 게다가 33살의 성인 남성의 무게가 업혀 졌으니 그것을 옮긴다는 것은 꽤 많은 힘을 요구했을 것이다. 8명의 사내들은 온몸의 근육을 다 사용하여 십자가를 잡고 올리고 있다. 그들은 골고다 언덕의 가장 높은 곳으로 이동해 모든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볼 수 있게 하려 했다. 그의 죽음은 정치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옳은 것이었다. 예수의 존재와 가르침은 전통과 법규를 흩트리는 일이었고 권력을 쥐고 있던 자들의 자리를 불안케 하는 일이었다.
짐짝처럼 예수를 나르던 이들에게 예수의 안전은 관심 밖이다. 죄인을 안전히 모실 수 있겠는가. 그들은 온 힘을 다해 예수를 짐짝처럼 나른다. 예수는 어디로 어떻게 이끌려 가는지 두렵기만 하다. 그의 눈빛은 위로 향하고 있다. 그 눈빛은 어쩌면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왜 나를 이렇게 가만히 두십니까?"
그는 곧 자신에게 어떤 일이 닥쳐올지 안다. 울며 기도하며 이 잔을 치울 수 있음 치워 달라고 했지만 나중에 그는 내 뜻대로 하지 말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라고 한다. 하지만, 막상 죽음을 대면할 때 그가 느꼈단 두려움은 얼마나 컸을까? 루벤은 예수가 처형당하기 위해 옮겨지는 이 상황을 참으로 가혹하게 표현했다. 예수는 많이 외롭고 그 어떤 희망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 작품에는 양 옆에 작은 패널로 그를 추종하는 자들과 그를 죽이려 하는 자들이 그려져 있으나 철저히 예수는 혼자 가운데에 그려져 있다)
2년 뒤 루벤은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죽은 예수를 그린다.
어두 컴컴해진 저녁 예수는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그의 피부는 생기가 없다. 생명이 없어진 몸은 하얗고 딱딱하게 굳어가고 있다. 그를 사랑하고 따르던 자들은 그의 몸이 행여 다칠까 아주 조심스럽게 그를 잡아 내리고 있다. 이미 죽은 자이지만 그는 예수이고 신의 아들이며 구원자 아니던가. 그들은 상처 하나도 남기지 않으려고 얼마나 안간힘을 다해 예수의 시신을 무겁고 높은 십자가에서 내려놓고 있다.
이 두 그림은 예수를 저주하는 자들과 예수를 사랑하는 자들로 나뉜다. 그리고 이들의 행동과 표정에서 예수를 향한 마음들이 표현된다.
예수는 늘 적극적이지 않았던가.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에게 불같이 화를 내고, 아프고 병든 자를 고치고, 굶주린 자들을 먹이고, 지혜의 말들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자신의 하나님의 아들이고 길이고 진리임을 전하며 이웃을 사랑하라고 섬기라고 가르쳤다. 하지만 왜 죽음 앞에서는 왜 이리도 소극적이기만 했을까?
대조적으로 예수의 죽음을 향한 인간들의 행동은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이기만 하다. 적극적으로 온 힘을 다해 그를 죽이려 했고 적극적으로 온 힘과 정성을 다해 죽은 예수의 몸을 내려놓는 두 개의 다른 집단은 오늘도 똑같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