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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은 문자로 전해지지 않는다.

Marina Abramovic 가 시도한 뜨거운 눈빛 한 잔

by MamaZ

버블티를 앞에 놓고 마주 앉은 두 소녀는 전화만 쳐다보고 있었다. 전화기와 한 몸이 되어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은 채 전화기 속 세상과 마주한다. 둘은 종종 웃으며 한 두 마디 주고받으며 서로의 전화기를 보여주지만 정작 "함께" "눈을 마주치며" "대화"를 이어가진 않는다. 카페에서 만난 Gen Z의 새로운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은 낯설기만 하고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저 상황을 매우 기이하고 이상하게 바라보는 나는 꼰대인가 아닌가!

시대의 흐름이라 생각하고 따르는 게 맞는 걸까? 아니면 흐름 틀어 다른 교류의 물꼬를 터야 하는 걸까?




2010년 뉴욕의 봄은 더웠고 모마는 Marina Abramovic의 퍼포먼스 때문에 뜨거웠다. 오랜만에 뉴욕에서 지내고 있는 대학원 동기들을 만나 먹고 마시고 놀았던 그 봄 날, 나는 Marina Abramovic의 퍼포먼스를 눈앞에서 보는 영광을 누렸다.

Maria Abramovic, The artist is present. MOMA 2010
Maria Abramovic, The artist is present. MOMA 2010

카리스마가 철철 넘쳐 도저히 가까이 갈 수 없을 것 같은 그녀가 빨간 드레스를 입고 앉아 있었다. 1층 한가운데 펼쳐진 어색함이 가득한 퍼포먼스는 그곳을 방문한 모든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있었다. 모마 미술관이 열고 닫는 그 모든 시간 단 한 번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화장실도 가지 않고 휴식도 취하지 않은 채 의자에 꼿꼿이 앉아있는 작가는 테이블을 앞에 두고 이름도 모르는 낯선 이와 마주 앉았다.


이름이 뭐예요?

전화번호 뭐예요?

몇 살이에요?

사는 곳 어디예요?

유행가사처럼 호구조사 한 번 이뤄지지 않고 서로 말 한번 주고받지도 않고 눈만 바라본다.


이 얼마나 미치게 어색한 순간인가.

너무 기가 막히고 어색해서 그 자리를 벗어나는 사람도 있었지만, 또 몇 시간이고 앉아 서로를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와중에 너무 신기하게도 눈물을 뚝뚝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 이름도 나이도 전화번호도 주소도 모르는 작가 앞에서 흘려야 했던 눈물은 어떤 것이었을까? 무슨 의미였을까?


Marina Abramovic, The artist is present. MOMA 2010


퍼포먼스가 한창이던 그 시기 작가는 관객과 자신을 나눴던 테이블마저 치워버리고 의자 두 개만 달랑 놓고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둘만의 그 친밀하고 사적인 순간을 테이블이 방해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 고된 퍼포먼스를 700시간 동안 진행했던 작가는 평생 그녀가 해왔던 퍼포먼스 즉 한계를 뛰어넘는 작업의 또 다른 버전을 이룬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작가 개인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보다 더 큰 일깨움이 있었으니 그것은 "교류" 즉 "커뮤니케이션"이었다.


언어가 없는 대화

소리가 없는 대화

표정이 없는 대화

바디 랭귀지가 없는 대화

오직 고요함과 눈빛만 존재하는 대화


그것은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관객들이 느껴볼 수 없는 것이었고 작가는 그 순간을 선물처럼 관객들에게 선사한 것이다. 그래서 눈물을 훔치는 관객들이 있었던 것이었다. 고요함 속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과 감정을 언어가 아닌 눈빛으로 전하는 과정 속에 관객은 과장을 하지 않아도 되었고 잘 보이려는 노력도 할 필요 없었으며 괜찮은척해야 연기도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고요함과 눈 마주침...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대화가 그곳에서 진행되었던 것이다. 눈을 조용히 마주치며 바라보는 그 행위가 영적이라고 느껴졌던 이유는 어쩌면 인간의 진정한 내적 대화는 언어가 아닌 눈빛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작가가 퍼포먼스를 The artist is present 즉 작가가 여기 참석 중이라는 뜻으로 지었지만 사실 작가의 퍼포먼스는 관객들에게 "선물 present" 같은 순간을 선사해 준 것 같다.


강의 시간 옆에 앉은 사람과 눈을 마주 보라 했다.

얼마나 어색한지 눈알 굴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이내 키득키득 웃는다.

나도 안다. 민망해 죽겠는 이 순간이 빨리 끝내길 바란다는 걸...




나는 그리운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낭만을 가진 사람이다. 예쁜 손글씨는 아니지만, 그래도 펜을 붙잡고 그리운 이들에게 짤막하게라도 편지를 쓰고 우표를 붙여서 보내곤 한다. 그것은 내게 매우 큰 기쁨이자 의미 있는 행위다. 또박또박 쓴 내 글씨 하나하나에 당신을 그리워하고 사랑한다는 마음을 담는다. 그래서 손 편지는 낭만이다.


그런 낭만적인 내가 전화기만 붙잡고 있는 십 대 소녀를 보니 속이 터질 것 같다.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웃어도 모자란 이 귀한 시간 전화기 속 세상에 빠져들고 있으니 둘은 정말 이 순간을 함께하고 있다고 느낄지 궁금하다.


함께한다는 것은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함께 한 공간에서 음료를 마시고 눈을 마주하며 목소리로 얼굴 표정으로 제스처로 이뤄지는 교류는 인간에게 너무나 절실한 사회적 경험이다. 하지만, 이 시대는 문자로 안부를 묻는 게 당연하고 전화통화를 하는 건 오버고 이메일은 귀찮고 손 편지는 구석기시대적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생각한다.


그중.. 문자는 참 묘한 대화 방법이다. 상대의 목소리로 읽히지 않고 나의 감정으로 읽히니 오해하기 참 쉽다. "좋냐?"라는 단어가 기쁘게 들리기도 하고 빈정상하게 들리게 하는 마법을 부리는 건 지금 내 마음 그 감정의 상태로 읽히기 때문이다. 문자는 오직 나의 짐작과 분석과 해석으로 읽힌다.


전화기는 내려놓고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앞에 두고 상대의 눈을 바라보며 뜨거운 눈빛 한 잔씩 주고받으며 영혼 깊숙한 곳에서 울려 나오는 그런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위로가 되겠는가. 그땐 서로에게 선물이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눈싸움으로 번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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