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방구석에서 아무도 모르게 혼자 어깨를 들썩이며 글을 쓸 뿐이다.
나는 몸치다.
신은 나에게 많은 걸 허락하셨지만 운동신경만큼은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렇다고 내가 몸치라서 피해를 보거나 서러운 일을 겪은 적은 없다. 그저 남들보다 좀 많이 못 뛰고 빠릿빠릿하지 못하며 유연성이 없을 뿐이다. 물론 의도치 않은 몸개그를 벌일 때도 있지만 주변인들에게 큰 웃음을 주니 그것 또한 나쁘지 않다. (초긍정의 마인드는 신이 준 나의 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나는 몸치이기에 춤도 당연히 못 춘다. 어쩜 그리도 뻣뻣한지 통나무가 바람에 흔들려도 나보다는 더 잘 흔들게다. 하지만, 댄스 보는 걸 좋아한다. 종종 짤로 올라오는 춤 잘 추는 아이돌 동영상을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본다. 부러움을 넘어선 동경의 대상이 되는 그들의 움직임,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신나는 음악 그리고 얼굴에 충만한 자신감이 모두 보기에 좋다.
얼마나 신이 나면 저렇게 온몸으로 표현을 할까?
그들의 움직임은 부드럽다가도 강렬하며 강렬하다가도 소심해진다. 소심해진 몸동작을 따라가 보면 어느새 몸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그들의 동작은 마치 Jackson Pollock의 그림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가 Mark Rothko의 그림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춤이 선사하는 즐거움과 흥을 가지고 그림으로 그린 작가 Pieter Bruegel은 북유럽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다. 그는 일상의 삶을 매우 현실적으로 때로는 유머 있게 그렸는데 개인적으로 당시 그 어떤 작가들보다 앞서는 색감과 구도를 잡아냈다고 생각한다.
미시간 디트로이트에 있는 Detroit Institute of Art라는 뮤지엄에는 Pieter Bruegel의 The Wedding Dance라는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북유럽에서는 유화 작품이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기에 프레스코나 에그 템프라를 주로 사용했던 이탈리아 르네상스 작품보다 색감이 화려할 수밖에 없으나 Pieter Bruegel은 몇 안 되는 색을 골라 반복적으로 사용하되 인물들과 배경이 조화를 이루게끔 만들었다. 그가 사용한 붉은색과 푸른색은 반대색이지만 너무 튀지 않고 서로를 보안해 주며 전반적인 화폭을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인물들 하나하나 각자의 포즈로 손을 맞잡고 춤을 추고 있다. 악기를 연주하는 이의 음악에 맞춰 발을 구르고 손을 잡고 춤을 추고 먹고 마시며 온 동네가 결혼을 축하한다. 오늘 만큼은 신나게 춤을 추고 즐겨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
Pieter Bruegel은 농민들의 삶을 그렸다. 화려한 드레스로 치장을 한 부유한 인물이 아니라 오늘 하루 먹고사는 일이 인생에서 가장 큰 도전인 사람들의 삶을 그렸다. 하지만, 그들의 가난함에 집중하지 않고 가난 속에서도 즐거운 순간을 만끽하는 이들을 그렸다.
당시 신체나 원근법에 관한 지식이 없었기에 어색하게 보이는 사람들과 크기의 부조화가 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음악이 있고 마실 술 한잔이 있고 흥에 겨워 함께 춤을 출 수 있는 이가 있는 기쁘기만 한 날에!
마흔이 훌쩍 넘어가자 나를 설레게 하는 작품들은 하나 같이 내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는 작품들이다.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고 미소 짓게 만드는 작품은 내 일상을 토닥여준다. 어쩌면, 소처럼 일하는 내게 필요한 건 토닥임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 춤 얘기를 꺼냈는지 나도 모르겠다.
아까 짤로 봤던 태양의 발재간 가득한 동영상이었는지 Michael Bublé 콘서트장에서 신나게 춤을 추던 그 청년의 영상 때문인지 모른다.
벅찬 일상에서 신나게 몸을 흔들 만큼 즐거울 일은 없지만, 그래도 가족이 있어서 음악이 있어서 수다 떨 친구가 있어서 커피가 있어서 애교 떨어주는 아이가 있어서 일할 수 있어서 가르칠 수 있어서 감사하고 기쁜 인생이다. 그 기쁨이 내게는 손가락을 놀리며 글로 표현된다. 약간의 그루브와 어깨 들썩임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