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은 무엇으로 지탱되고 있는가?
나는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는다.
지인들은 종종 묻는다.
왜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냐고 말이다.
시간이 없어서라고 대답을 한다.
하지만 속으로 말한다.
안쓰럽고 위태로워서라고 말이다.
여행을 간다는 글 귀 위에는 값비싼 명품백과 주얼리를 걸친 사진을 올린다.
여행보다 가방을 보여주고 싶었던 건데 대놓고 자랑하기에는 민망스러웠던 게다.
붕붕이라 소개한 차 사진에는 비싼 외제차 로고가 선명하다.
붕붕이라는 귀여운 이름아래 보여주고 싶었던 건 이 정도의 차를 몰고 다니는 나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 게다.
날이 너무 덥다는 글 위에는 유럽의 어느 도시 사진이다.
날씨 얘기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 게다.
내가 뭘 가지고 먹고 가고 타고 살고 있는지 보여주지 못해 안달 난 세상에 살고 있다.
그 세상 속에서 나는 행복을 보지 못하고 안쓰러움과 위태로움을 본다.
그래서 나는 인스타를 하지 않는다.
강의를 준비하다 나를 설레게 하는 작가를 마주한 순간 미친 사람처럼 실실 웃는다. 내 생각과 감정을 몰래 본 것처럼 작품을 만드는 작가를 알게 된다는 것은 나만의 비밀친구를 갖게 된 기분이다.
Vicki Ling 역시 그런 작가다. 그녀의 그림은 솔직히 나만 알고 싶은 비밀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작가와 그림을 소개하는 직업을 가졌으니 그렇게 이기적일 순 없다.
Vicki Ling은 하얀 종이 위에 색연필과 연필로 예쁘고 감성적인 물건들과 음식을 그려 넣는 작업을 한다. 꽃, 브리 치즈, 체리와 오렌지, 상그리아를 그려 넣은 종이에 얼굴 없는 두 여자는 누워있다. 모든 게 완벽하고 평화로운 순간을 벽에 뚫린 쥐구멍으로 누군가가 바라본다. 그녀의 두 눈은 자신과 다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누군가를 향해 있다. 무표정한 눈빛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바라봤을지 알 수 없지만 얼굴 없는 그녀들은 상관하지 않는다. 어차피 그들의 세상은 쥐구멍 안이지 밖이 아니기 때문이다.
Vicki Ling의 작품 속에는 위태로움이 존재한다. 언제 들킬지 모를, 언제 끊어질지 모를 순간을 잡아낸다.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순간에도 그녀의 주변에는 그녀를 지켜줄 만한 듬직하고 안정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다 한 순간이고 없어지고 썩어지고 사라질 것들로만 가득하다. 팔 위에 올려진 저 물건들은 겨우 저 끈 하나로 지탱되고 있지만, 저 끈이 끊어지는 순간 다 엎어질 것들이다. 빨간 끈은 단단히 조여지지도 않게 손목에 간당간당하게 묶인 모양새다. 차라리 저 끈을 잘라버리고 팔의 무게를 가볍게 하는 것이 그녀가 자유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지도 모를 일이다.
작가는 삶을 지탱하는 저 끈이 얼마나 초라하며 그 어떤 힘도 없음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도 모른다. 저 끈이 끊어지고 당겨지면 내가 소중하고 아름답고 좋다고 여기는 것들이 한없이 무너질 것임을 알고 있다.
저거라도 잡고 있는 게 내 삶을 지탱하는 것이라면, 내 삶은 얼마나 불안정한가? 차라리 좀 더 굵직한 것으로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들을 찾아 묶어 놓는다면 어떨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는 책의 제목처럼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삶은 절망이 있을 수가 없다. 남들에게 인정받아야 기능할 수 있는 삶을 산다면 나는 없는 삶이다.
인생에 절망의 순간은 존재 할 수 밖에 없는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리고 절망을 털고 일어날 수 있는 삶은 분명 존재한다.
나를 지탱하는 것이 쉽게 사라질 것들이 아니라면, 남들에게 보이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게 된다.
Vicki Ling의 그림에서 지혜를 얻고 하루를 시작한다.
자... 돈벌러 나가자.